배우들의 몸짓에선 강한 리듬이 전해졌다. 최소한의 무대배경이었지만, 뚜렷한 효과음과 조명이 분위기를 증폭시켰다. 배우들의 대사라곤 ‘하일 히틀러’ 정도가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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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6~30일 부산 연제구 거제동 한결아트홀에서 공연한 극단 배관공의 무언극 ‘안네의 일기’ 한 장면. 극단 배관공 제공 |
널리 알려진 ‘안네의 일기’를 무언극으로 재구성한 연극 ‘안네의 일기’는 70분 동안 언어를 덜어내고도 메시지를 전하는 데 성공했다. 나치 지배 속에서도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소녀 안네가 은신처로 몸을 숨긴 후 억눌려 숨죽여 지낸 시간, 전쟁이 끝나감에 기뻐했으나 결국 급습한 나치에 의해 체포되는 모습 등 굵직한 이야기 전개가 말 없이 표현됐다.
가스실에서 죽어가는 유태인들의 모습은 전쟁의 참혹함을 또렷하게 표현된 장면. 연극에서 필수라 생각되는 ‘언어’가 배제되고, 침묵을 부각시킨 작품은 무언극의 가능성을 새삼 확인하게 했다. 연극 ‘안네의 일기’(극단 배관공)는 지난 26일부터 30일까지 한결아트홀(연제구 거제동)에서 선보였다. 이 작품은 지난 5월 ‘제14회 부산국제연극제’에서 자막과 음성 해설을 넣은 ‘배리어프리’로도 제작돼 큰 호응을 얻었다. 배리어프리는 시각·청각 장애인 관객을 위한 공연으로, 무언극이라는 형태 덕분에 재구성이 한결 수월했다.
극단 배관공의 또 다른 무언극 ‘마이 디어 헬렌’은 다음 달 콜롬비아에서 열리는 페스티벌에도 참가한다. 언어 장벽도 가뿐히 넘을 수 있는 형태인 무언극의 힘이 한껏 발휘되는 셈이다. 헬렌 켈러 이야기를 그린 ‘마이 디어 헬렌’은 지난해 미국 뉴욕에서 현지 극단과 함께 공연되기도 했다. 무언극이 다양하게 변주되면서 관객층을 넓혀가고 있다.
연출을 맡은 주혜자 씨는 “연극은 희곡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하지만, 언어를 배제한 연기와 침묵을 부각해 연극의 또 다른 힘을 표현하고 있다. ‘벙어리 삼룡이’ ‘마이 디어 헬렌’ ‘안네의 일기’가 우리 극단의 무언극 시리즈이다. 억눌린 표현을 몸짓으로 풀어내고자 한다”고 기획의도를 전했다. 무언극으로 더욱 다채로운 변신과 확장을 꾀하는 극단 배관공의 시도가 지역 연극계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안세희 기자 ahnsh@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