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분투를 통해 초라한 이 현실을 벗어나 빛나는 존재로 성공할 수 있도록 우리를 격려해주는 그런 강의를 듣고 싶습니다.” 한 단체의 불교 특강 중에 수강생이 이런 요구를 하였다. 강의에 불만이 있다는 말이다. 그때 무슨 강의를 하고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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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홍법사의 삼천불. 우리 각 개인은 부처의 다양한 표현이며 중생 이대로 부처이다.
국제신문 DB |
“태양빛은 물방울의 프리즘을 통해 빨주노초파남보의 무지개로 나타납니다. 우리 각 개인은 빨주노초파남보의 하나입니다. 그 각각은 태양빛을 증명합니다. 그러므로 빨강이 자주가 되고 싶어 할 필요가 없습니다. 노랑이 왜 자기는 초록이 아니냐고 자책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그 자체로 완전히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태양빛이라는 점에서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우주를 공기처럼 가득 채우고 있는 부처는 만사만물의 모양과 사건으로 나타납니다. 우리 각 개인은 부처의 다양한 표현입니다. 중생 이대로 부처입니다. 그러므로 중생을 버리고 부처가 되고자 할 일이 없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지금 이것에 부처가 드러나 있다는 것을 밝게 확인하고 수용하는 일이 있을 뿐입니다.”
확실히 수강자의 요구와 많은 거리가 있는 강의였다. 생각해보면 가슴 벅찬 성공담은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실패→재기→분투→성공의 기승전결을 그림처럼 보여주는 사례라면 더욱 그러하다. 이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용기백배 분투하도록 격려한다.
불교 역시 세간의 삶이나 출세간적 수행과 관련하여 이러한 격려에 인색하지 않다. 그래서 이런저런 성공담이 차고 넘친다. 그럼에도 우리 주위에는 실패와 절망이 차고 넘친다. 성공이 하나라면 실패는 아홉이다. 성공의 모델이 확고할수록 이 비율은 더 악화될 뿐 뒤집힐 가능성이 없다. 그래서 그림 같은 성공담은 오히려 많은 사람을 열패감의 늪으로 빠뜨리는 역기능을 하기도 한다.
불교에서는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느냐는 이 질문에 한결같은 대답을 내놓는다. 성공과 마찬가지로 실패 역시 일어난 이대로 부처의 현신이다. 성공을 구가하는 저들이나 실패하여 좌절하는 당신이나 있는 이대로 부처이다. 비유하자면 부처는 광대한 바다이고 우리는 다양한 모양의 파도이다. 다양한 모양의 파도는 있는 그대로 바다이다. 각각의 파도가 이것을 버리고 저것을 희망할 일이 없다. 한결같이 바다일 뿐이기 때문이다.
결국 매 순간, 매 찰나의 우리 삶은 성공이나 실패에 상관없이 한결같은 부처의 춤이며 부처의 노래이다. 자기 몫의 삶을 유감없이 받아들여 뜨겁게 분투해야 하는 이유이다. 설사 눈에 띄지 않는 조연에 불과한 배역이라도 각자의 입장에서는 최고의 주역이다. 스스로를 불사르듯 전 존재를 던져야 하는 이유이다.
그런데 지금 당장 나에게 일어난 이 일이 부처의 현신임을 알면 더 이상 나 아닌 무엇이 되기 위해 헐떡거리지 않게 된다. 스스로 부처와 하나임을 확인하고 안심하는 이 휴식은 초연하며 성스럽다. 재미있게도 이 초연한 휴식은 뜨거운 분투와 둘이 아니다. 헐떡이지 않고 안심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휴식이고, 지금 이것에 전 존재를 던진다는 점에서는 뜨거운 분투이다.
지금 이 순간 뜨거운 분투와 초연한 휴식이 함께 하고 있다면 그 자체로 우리는 이미 성공해 있다. 더 이상 특별한 존재가 되기 위해 밖을 헤맬 필요가 없는 것이다.
동의대 교양대학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