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현대미술 흐름부터 음악 목록·복장·요리까지…중요한 영역이된 큐레이팅

캐나다에서 활동하는 예술 저널리스트이자 비평가, 소설가인 데이비드 볼저의 큐레이셔니즘은 미술계의 중요한 존재인 큐레이터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228쪽의 길지 않은 분량 안에서 큐레이터의 세계를 펼쳐 보인 볼저의 역량은 매우 인상 깊다. 이 책은 단순히 ‘직업으로서 큐레이터의 세계’나 ‘호기심 천국, 큐레이터는 어떤 일을 할까요’ 같은 정보 전달에 머무르는 책이 아니다.

	‘큐레이셔니즘’은 미술 현장의 큐레이터에 관해 깊이 분석하고 사유한다. 사진은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젊은 시각 새로운 시선’ 전.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볼저의 ‘큐레이셔니즘’은 큐레이터를 중심에 놓고 탐구한 예술사(특히 현대미술)이며, 예술의 본질을 구현하는 일에서 큐레이터의 위상과 기능을 묻고 모색하는 흔치 않은 영역의 예술서이자, 불꽃 튀는 경쟁과 새로운 시도가 폭죽처럼 명멸하는 세계 현대미술계(미술시장)의 현장과 흐름을 느끼고 읽게 해주는 따끈따끈한 보고서이다.

이 책이 다루는 미술 큐레이터의 세계란, 예술과 미술에 관심이 높은 독자만의 눈길을 끄는 데 그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결론은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오늘날에는 음악 재생 목록, 복장, 심지어 전채 요리에 대해서도 큐레이팅한다는 표현을 쓰지 않는가.”(6쪽) 큐레이터, 큐레이팅, 큐레이션, 큐레이셔니즘은 어느새 현대인의 문화생활 곳곳에 들어와 있다. 그러니 이 책을 통해 그 본질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모색해보고 나면, 예상보다 얻는 게 많을 것이라 확신한다. 이 책을 읽으면 꽤 도움을 받을 것이 분명한 독자층이 또 있다. 문화기획, 예술기획, 공연기획, 행사기획, 마이스기획, 무슨무슨 기획 등등등 문화예술에 바탕을 둔 ‘기획’ 또는 ‘기획자’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다. 볼저가 안내하는 큐레이터의 세계는 한국에서 ‘문화기획자’가 맡는 일과 상당히 밀접하고, 넓게 겹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볼저는 마술이라도 살짝 부린 것처럼 독자가 큐레이션과 현대미술 사이에서 철학적·예술적 고민을 하도록 이끌다가도 어느새 ‘큐레이터는 실제로 현실에서 어떤 일을 할까요’ ‘큐레이터를 양성하는 교육 체계는?’ ‘현대미술의 흐름과 관련한 큐레이터의 전망은?’ 같은 영역까지 넘나든다. 그러면서도 책의 주제의식을 구현하는 데서 일관성을 잃지 않는다. 이는 저널리스트라는 볼저의 직업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 현장과 근거를 중시하되, 이론과 학술에 과도하게 질질 끌려다니지 않는 것이다.

이 책의 중심 낱말이며 가장 중요한 개념인 큐레이팅(curating)의 뜻에 관해 볼저는 이렇게 밝힌다. “이 책에서는 ‘옥스포드 영어사전’에 등재되어 있는 큐레이팅의 뜻을 그대로 수용하고자 한다. 독자도 알고 있겠지만, 그것은 박물관과 미술관에 소속된 중재자 겸 편집자 직위의 인물이 수행하는 전시물의 선정, 분류, 전시행위를 뜻한다.”(8쪽)

책을 펼치면, 큐레이터계의 초거물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UO)가 잠을 자지 않으려 분투하는 이유, 1909년 미래파 선언이 박물관과 큐레이터에 끼친 영향, 가치 공여자로서 큐레이터가 가진 본질적 중요성, 1990년대 현대적 큐레이터의 급부상과 안착, 가수 마돈나가 큐레이터인 이유, 미술계 핫플레이스인 일본 나오시마가 큐레이터 없이 조성됐다는 것의 의미, 볼저가 ‘큐레이팅에 대한 집착이 비록 속도는 느리지만 끝나가고 있다는 확신’을 갖는 이유 등이 펼쳐진다.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