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범한 회사원의 ‘멋진 변신’
- 쉬는날 무료한 생활 접고
- 연극무대 서고 목공수업 수강
- 예술가와 어울리고 동인지 활동
- 미술작품 집안에 걸면서 새 삶
# 영화도시 주역 부상한 ‘비프 키드’
- 예술영화 감상·전문가 강연 듣는
- ‘팝콤톡톡 플러스’ 행사 북적
- 작품에 반대의견 가감 없이 표현
- 영화학교 정원의 5배 지원 열성
생활비를 아껴 그림을 한 점 사고, 시간을 쪼개 문화예술 강좌를 듣고, 짬이 난다 싶으면 ‘마실 가듯’ 공연장을 찾는, 보통사람들의 뜨거운 문화예술 사랑 현장을 들여다봤다. 그 현장에서 ‘문화생활은 결국 여유의 산물’이라는 고정관념은 철 지난 선입견일 뿐이었다. 문화생활은 결국 ‘선택’이었다. 팍팍한 우리 삶을 윤기 있게 가꿀 대안은 막연히 ‘인생 리셋(reset)’을 꿈꾸는 데 있지 않고 우리 곁의 크고 작은 선택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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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시민 배우 장현수(맨 오른쪽) 씨가 참여한 연극 공연 모습, 부산아시아영화학교 시민 강좌, 팝콤톡톡 플러스 현장. |
■평범한 회사원, ‘반쯤 예술가’로
부산 문화계에서 장현수(47) 씨는 특별한 존재다. 평범한 아빠, 평범한 회사원이던 그는 7년 만에 문화판을 종횡무진 활약하는 ‘반쯤 예술가’가 됐다. 일 년에 연극 서너 편 보는 정도로 문화예술에 대한 갈증을 달랬던 그에게 2010년은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
“서른 살에 결혼해 10년간 일하고, 아이 셋 키우느라 정신없이 살았어요. 우연히 ‘쌈수다’에 참석한 뒤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죠.” ‘쌈수다’는 도시철도 2호선 수영역 지하상가 한 켠에 자리한 문화매개공간 ‘쌈’에서 매주 열린다. 이 공간을 운영하는 단체 ‘노는 사람’이 연극인, 영화인, 미술인, 춤꾼 등 다양한 예술가를 초청해 시민과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마련한다. “문화예술인이 특별한 사람인 줄로만 알았는데, ‘쌈수다’에서 이야기 나누고 뒤풀이에서 친해지면서 편견이 깨졌습니다.”
‘쌈수다’에서 만난 연극배우 변지연 씨 지도로 시민극단 ‘쌈’이 결성됐다. 극단에 들어간 장 씨는 관객에서 배우로 거듭났다. 2011년 극단 사계와 함께한 공연 ‘섬이 거기에 있었네’로 생애 처음 무대에 섰고, 2012년 ‘보이첵’, 올해 3월·5월 ‘그 여자들 다시 통닭을 먹다’에 출연했다. 9월부터 극단 ‘아트플레이’의 학생·직장인 아마추어 연극모임에 참여해 배우로서 새롭게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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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공수업을 듣는 장현수 씨. |
그의 예술 사랑은 연극에 그치지 않는다. 자동차 세일즈맨이라 상대적으로 시간 사용에 여유가 있다는 점을 활용해 퇴근 후와 주말을 보낸다. 월요일엔 지인들과 고전강독 모임을 하고, 수요일엔 딸과 함께 부산자원순환협력센터에서 목공 수업을 듣는다. 목요일엔 고은사진미술관에서 사진기초반 수업을 듣다가 최근 수료했다. 금요일 오전에는 4년째 인문학 공간 백년어서원에서 스페인어를 공부한다. 고교 문예부 출신이 모인 ‘전원문학회’에서 30년간 활동하며 5권의 시집에 작품을 실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미술작품을 사서 집안 곳곳에 걸어놓기도 했다. 재테크 수단이 아니라, 신인 작가와 지역 작가의 작품이 정말 좋아서 산 것이어서 가격은 대부분 100만 원이 넘지 않는다.
그를 보고 몇몇은 의구심을 가진다. “걱정 없이 살 만큼 수입이 많은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는 “아니다”고 말했다. “수입이 많아야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다는 건 편견입니다. 예술인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지만, 그 액수가 부유층만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크지 않아요. 찾아보면 무료나 큰 돈 들이지 않고 참여할 행사와 강좌가 많습니다. 매일 지역신문을 읽으며 정보를 얻죠. 다만, 저축은 별로 하지 않고 아이들이 원치 않아 사교육을 거의 시키지 않습니다. 인생의 가치는 사람마다 다른 것 아니겠어요.”
■영화도시 주인공은 “나야, 나”
부산은 ‘영화의 도시’라 불린다. 영화제가 열리고 영화를 많이 찍으면 영화의 도시일까? 영화를 사랑하는 시민이 많아야 영화 도시다. 부산국제영화제(BIFF)와 청춘을 보내고, 영화제와 함께 자란 ‘비프 키드’가 부산엔 흔하다. BIFF가 아니라도 일 년 내내 예술영화를 즐기기 위해 독특한 전문강좌를 듣는 현장을 찾았다.
“그건 아니에요. 토니와 베로니카가….”(관객) “그건 아닐 수 있는데, 나중에 기회를 드릴게요. 또 이야기합시다. 오늘 분위기가 과열되고 있네요. 하하”(필로아트랩 이지훈 대표) 지난달 10일 밤 9시30분 영화의전당 소극장. 매달 한 번 예술영화를 감상한 뒤 전문가 강연과 관객과의 대화가 이어지는 ‘팝콤톡톡 플러스’ 자리였다.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리테쉬 바트라 감독)를 보고 김참 시인과 관객이 ‘기억의 고집’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사회를 맡은 이지훈 대표가 영화에서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대목을 나름대로 분석하자 한 관객이 손을 번쩍 들고 “그건 아니다”며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사회자도 관객도 웃음을 터뜨렸다. 이 대표는 “시네필은 다른 예술 분야 애호가보다 조용하고 내성적인 편이다. 팝콤톡톡 초반에는 관객 반응이 약해 강연자가 긴장할 정도였는데 회가 거듭할수록 관객이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해 열기가 뜨겁다”고 말했다.
팝콤톡톡은 BIFF와 영화의전당이 주최하고 필로아트랩이 주관한다. 2013년 BIFF 대중화 사업으로 시작했다. 이 대표는 “고 김지석 수석프로그래머의 의지가 강했다. BIFF가 열흘 내내 관객의 열기로 가득 차려면 예술영화 저변이 확대돼야 한다고 판단하셨다”고 회고했다. 2014년은 쉬고 2015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팝콤톡톡에는 평균 100~150명이 참석한다. 영화의전당 예술영화 한 회 상영에 평균 60~70명의 관객이 드는 것과 비교하면 확실히 마니아층이 형성됐다. 음악 미술 문학 등 예술을 다룬 영화와 강연에 더 많은 관객이 몰린다.
부산영상위원회가 주최하는 부산아시아영화학교의 첫 시민 강좌에서도 영화 사랑은 확인됐다. 아시아영화학교 방학 기간인 6, 7, 8월 3차(각 8회)에 걸쳐 강좌가 열렸다. ‘영화로 만나는 예술과 대중문화’ ‘영화로 보는 현대사의 결정적 순간들’ 등 쉽지 않은 내용에 황금 같은 금, 토요일 저녁 2시간을 빼야 하는 일정이었음에도 3차례 모두 20명 모집에 80~100명이 몰렸다. 주최 측이 깜짝 놀랐다. 영상위 양영주 차장은 “내년에는 강좌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