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를 하면서 참으로 많이 접하게 되는 것이 결혼식과 장례식이다. 결혼식 주례는 언제 해도 마음이 기쁘다. 생애 최고의 날이지 않은가! 주례를 하고 돌아서면 곧 기쁜 소식이 들려온다. 천하보다 귀한 최고의 가치,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 것이다. 이 역시 얼마나 기쁘고 가슴 떨리는 일인가! 아이가 어른이 되고 그 어른이 다시 아이를 출산하는 이러한 순환을 통해 역사는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그런데 아무리 많이 경험해도 익숙해지지 않고 언제나 생경한 것이 죽음의 현장이다. 다양한 죽음 앞에서 감당해야 할 표정과 전달해야 할 말은 항상 고민거리다. 장례식 현장에는 다양한 아픔과 사연이 있다. 자칫 잘못하면 실수하게 되고 그것은 또 다른 아픔을 만들게 된다. 그래서 장례식에서 모든 언행은 참으로 조심스럽다. 유족에게 호상이라고 불러도 되는 장례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누군가 말했지 않는가.
기억에 아픔으로 남아 있는 죽음이 몇 있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온갖 어려움과 고난을 다 감당한 55세 중년 여인이 태어나 처음으로 구입한 집에 입주하기 15일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시골서 태어나 청소년 시기를 보내고 서울로 상경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열심히 살던 남매 중 여동생이 아르바이트하던 식당에서 음주운전자의 차에 치어 사망했다. 네 식구가 함께 계곡에 물놀이 갔다가 세 명이 한 장소에서 거의 같은 시간에 익사했다. 많은 죽음과 임종을 경험했지만 현장에서 할 말을 잃었다. 세 번의 장례식을 다 집례했다. 정말 어렵고 고통스러웠지만 장례식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세상 삶이 끝이 아니라는 신앙의 힘이었다. 죽음의 시간을 지나야만 영생이라는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는 믿음의 위로였다.
아직도 기억에 또렷이 남아있는 아름다운 임종의 모습도 있다. 말문을 닫은 지 일주일 되신 90세 어르신께서 손에 꼭 쥐고 있던 쪽지 하나를 주셨다. 평소에 고마웠던 사람들과 미안했던 사람들에게 감사와 용서를 전해달라는 내용과 함께 “마지막 순간, 의식이 없을 때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도록 기도해 달라”는 편지였다. 말문이 닫힐 것을 알고 자신의 마지막 시간을 미리 준비한 것이다.
치매로 투병하셨던 97세 어르신이 모든 재산을 교회와 사회에 기부하고 처음 이 세상에 왔던 빈손의 모습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삶의 기억을 거의 다 잊어버렸음에도 신앙과 나눔의 자세는 끝까지 잊지 않으셨다. 참으로 아름다운 소멸됨의 흔적을 남기셨다. 두 분 모두 필자가 기도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천국으로 가셨다. 의식 중에는 말할 것도 없고 무의식중에도 순전한 믿음과 정결했던 삶의 자세를 간직하고자 소망하셨다.
우리도 언젠가는 세상을 떠날 것이다. 인정과 부정에 관계없이 유한의 삶은 반드시 끝이 난다. 자신이 떠난 뒤의 아름다운 흔적을 위해, 현재 삶의 현장에서 언젠가는 찾아올 소중한 이별을 준비하는 지혜와 여유를 가져야 한다.
가야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