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부산국제영화제가 선택한 개막작 ‘유리정원’은 독특하다. 잠시 한눈을 팔다가 영화의 낯설고 몽환적인 이미지에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 현혹되지 않으려면 잘 보아야 한다. 숲속 유리정원에 살고 있는 재연(문근영)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말이다. 병든 나무를 돌보고, 새의 죽음을 애도하는 그녀는, 거대한 숲에서 생명을 일구며 홀로 산다. 숲을 이루는 근원을 탐구하고, 생명의 근거를 찾는 그녀의 행동은 그 어떤 종교와 과학보다 위대해 보인다.
재연은 재능 있는 과학도지만 장애를 가진 몸 때문에 세상에 인정받는 것도, 타인과 관계를 맺는 것도 녹록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재연은 운명처럼 한 남자(서태화)와 사랑에 빠지지만, 그녀는 이용당하고 버림받는다. 사랑과 더불어 연구 프로젝트마저 동료에게 빼앗기면서 재연은 절망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훔쳐가고 이용한 동료보다 제 것을 지키지 못한 재연에게 더 혹독하다.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한 시대가 오늘이 아니던가.
직장도 사랑도 잃은 불행한 여자가 갈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외지고 사람들이 오지 않는 숲. 그런데 숲에 은신한 재연은 마치 ‘마녀’처럼 보인다. 마녀들의 삶이 그러했듯 공동체(연구실)를 지키기 위해 권력은 가장 연약한 재연을 희생양으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재연은 아랑곳 하지 않고 마법(엽록체를 이용해 인공혈액을 만드는 실험)의 성공을 위해 연구에 매진한다. 그 연구가 마녀의 마법처럼 공포와 멸시를 불러올 거라고 차마 상상하지 못한 채 말이다.
사건은 소설가 지훈(김태훈)이 숲으로 오면서 발생한다. 대화조차 나누려 하지 않는 비밀스런 재연에게 흥미를 느낀 지훈은 그녀를 훔쳐보며 그녀를 주인공으로 소설을 쓴다. 소설이 결말로 향해갈수록 두 사람은 무엇이 소설의 세계이고 진실인지 헷갈린다. 그리고 숲에 가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밝혀지면서 소설가는 글을 쓰기 두려워하고, 과학자는 자신의 연구에 의문이 든다. 이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진실이 드러난다.
숲이 요동친다. 지금껏 숲은 재연을 지키고 있었다는 듯 진실 앞에서 그제야 제 얼굴을 드러낸다. 믿을 수 없는 장면들이 펼쳐진다. 인간의 이성이 도저히 닿을 수 없는 영역, 현실과 환상을 잇는 곳이 마치 숲이라도 되는 듯, 카메라는 숲의 전신을 훑는다. 숲도, 유리정원도, 재연이 숨기고 있던 비밀도 모두 발각당했다. 마녀가 인간들의 세상에서 살 수 없었듯 재연은 다시 사라져야 한다. 그리고 살피고, 돌보고, 살리는데 애썼던 재연의 행위는 미친 여자의 광기로 치부 당한다.
한동안 부침을 겪었던 부산국제영화제가 개막작으로 ‘유리정원’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미스터리한 서사는 대중성을, 신비한 숲은 감각적인 미장센을 보여주며 영화의 재미와 예술 그 어느 쪽도 간과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가을밤, 한적한 숲속의 유리정원. 그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몽환적인 불빛을 보는 것, 우리는 그것만으로도 만날지 모른다. 현실의 불평등함을, 혹은 외면당한 그 마녀들의 세계를.
김필남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