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개막작 리뷰] 작고 연약한 마녀가 사는 숲…감각적 미장센·대중적 서사 돋보여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7-10-12 20:40:15
  •  |   본지 4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올해 부산국제영화제가 선택한 개막작 ‘유리정원’은 독특하다. 잠시 한눈을 팔다가 영화의 낯설고 몽환적인 이미지에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 현혹되지 않으려면 잘 보아야 한다. 숲속 유리정원에 살고 있는 재연(문근영)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말이다. 병든 나무를 돌보고, 새의 죽음을 애도하는 그녀는, 거대한 숲에서 생명을 일구며 홀로 산다. 숲을 이루는 근원을 탐구하고, 생명의 근거를 찾는 그녀의 행동은 그 어떤 종교와 과학보다 위대해 보인다.

재연은 재능 있는 과학도지만 장애를 가진 몸 때문에 세상에 인정받는 것도, 타인과 관계를 맺는 것도 녹록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재연은 운명처럼 한 남자(서태화)와 사랑에 빠지지만, 그녀는 이용당하고 버림받는다. 사랑과 더불어 연구 프로젝트마저 동료에게 빼앗기면서 재연은 절망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훔쳐가고 이용한 동료보다 제 것을 지키지 못한 재연에게 더 혹독하다.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한 시대가 오늘이 아니던가.

직장도 사랑도 잃은 불행한 여자가 갈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외지고 사람들이 오지 않는 숲. 그런데 숲에 은신한 재연은 마치 ‘마녀’처럼 보인다. 마녀들의 삶이 그러했듯 공동체(연구실)를 지키기 위해 권력은 가장 연약한 재연을 희생양으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재연은 아랑곳 하지 않고 마법(엽록체를 이용해 인공혈액을 만드는 실험)의 성공을 위해 연구에 매진한다. 그 연구가 마녀의 마법처럼 공포와 멸시를 불러올 거라고 차마 상상하지 못한 채 말이다.

사건은 소설가 지훈(김태훈)이 숲으로 오면서 발생한다. 대화조차 나누려 하지 않는 비밀스런 재연에게 흥미를 느낀 지훈은 그녀를 훔쳐보며 그녀를 주인공으로 소설을 쓴다. 소설이 결말로 향해갈수록 두 사람은 무엇이 소설의 세계이고 진실인지 헷갈린다. 그리고 숲에 가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밝혀지면서 소설가는 글을 쓰기 두려워하고, 과학자는 자신의 연구에 의문이 든다. 이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진실이 드러난다.

숲이 요동친다. 지금껏 숲은 재연을 지키고 있었다는 듯 진실 앞에서 그제야 제 얼굴을 드러낸다. 믿을 수 없는 장면들이 펼쳐진다. 인간의 이성이 도저히 닿을 수 없는 영역, 현실과 환상을 잇는 곳이 마치 숲이라도 되는 듯, 카메라는 숲의 전신을 훑는다. 숲도, 유리정원도, 재연이 숨기고 있던 비밀도 모두 발각당했다. 마녀가 인간들의 세상에서 살 수 없었듯 재연은 다시 사라져야 한다. 그리고 살피고, 돌보고, 살리는데 애썼던 재연의 행위는 미친 여자의 광기로 치부 당한다.

한동안 부침을 겪었던 부산국제영화제가 개막작으로 ‘유리정원’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미스터리한 서사는 대중성을, 신비한 숲은 감각적인 미장센을 보여주며 영화의 재미와 예술 그 어느 쪽도 간과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가을밤, 한적한 숲속의 유리정원. 그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몽환적인 불빛을 보는 것, 우리는 그것만으로도 만날지 모른다. 현실의 불평등함을, 혹은 외면당한 그 마녀들의 세계를.

김필남 영화평론가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다 쓰지도 못하는데…어르신 품위유지비 늘린 중구
  2. 2기장군수실 1층 이전 놓고 직원 반대 우세
  3. 3양산 구불구불 새미기고개 대체길 뚫리나
  4. 4부산 아파트 매매 침체일로…해운대·수영·동래만 웃었다
  5. 5“정체성 부재” 비판 많은 ‘부산이즈굿(Busan is Good)’ 손본다
  6. 6연일 노무현 때리는 한동훈, 박정희 띄우는 주진우…檢 출신들 속내는
  7. 7가을은 놓쳤지만…거인 ‘레·황(레이예스·황성빈)’ 도전은 계속된다
  8. 86일 부산국제영화제 팡파르…사상 첫 화요일 개막
  9. 9“내가 국회의원 당선시켜” 사하구체육회장 정치개입 정조준
  10. 103년 표류 창원 제2국가산단…LH 사업비 낮추나
  1. 1연일 노무현 때리는 한동훈, 박정희 띄우는 주진우…檢 출신들 속내는
  2. 2‘맹탕 청문’ 의식 부산시의회, 교통·시설公 송곳검증 벼른다
  3. 3[속보]조희대 작심 발언 “국회·대통령은 대법원장 제청에 관여 못 해”
  4. 4부울경 펀드인데 절반가량은 수도권 투자…제도취지 무색
  5. 5장동혁, 육영수 생가 방문…‘암살자(들)’로 진보 맹공
  6. 6軍 “北 지뢰 터져 장병 부상” 결론…군사분계선 이남 제거작전 돌입(종합)
  7. 7강신철 “DMZ 北지뢰제거작전은 역사상 처음…단호한 대응이라고 본다”
  8. 8부산 영도 출신 이언주 의원, 부산·울산서 '공짜 질서는 끝났다' 북콘서트 개최
  9. 9"'국가전산망 먹통' 국정자원 화재로 소실된 데이터 완전복구 안돼"
  10. 10조희대 “재제청 요구 헌법적 근거 없어" 거부 입장 재확인
  1. 1부산 아파트 매매 침체일로…해운대·수영·동래만 웃었다
  2. 2지역상품 우선구매 ‘부산이 삽니다’ 민간 확산 드라이브
  3. 3해킹 피해 신한은행 2만5727건 vs 우리·농협 0건…금융기관 ‘보안 체력’이 갈랐다
  4. 4누리호 7일 발사 앞두고 6일 기립(종합)
  5. 5증권·산업계도 AI 해킹 포비아…휴일 반납 하고 긴급 점검
  6. 6기업 보유 토지 공시지가 공시 의무화…‘땅부자’ 상장사 수면 위로
  7. 7“북항 더 핫하게” 시민과 명소화 모색
  8. 8[한 손 뉴스] 양양 송이 ㎏당 171만 원…생산량 줄어 역대 최고가
  9. 9SNS레시피가 제품으로…농심 스낵 ‘너구링’ 선봬
  10. 10어선원 직불금, 60일 승선하면 받는다
  1. 1다 쓰지도 못하는데…어르신 품위유지비 늘린 중구
  2. 2기장군수실 1층 이전 놓고 직원 반대 우세
  3. 3양산 구불구불 새미기고개 대체길 뚫리나
  4. 4“정체성 부재” 비판 많은 ‘부산이즈굿(Busan is Good)’ 손본다
  5. 5“내가 국회의원 당선시켜” 사하구체육회장 정치개입 정조준
  6. 63년 표류 창원 제2국가산단…LH 사업비 낮추나
  7. 7오늘의 날씨- 2026년 10월 6일
  8. 8김해시의원 활동비는 1만 원 깎였다
  9. 9출소 한 달 만에 또…유치장 난동 40대 징역형
  10. 10“디지털농업·특화브랜드로 청년농부 유입 이끌 것”
  1. 1가을은 놓쳤지만…거인 ‘레·황(레이예스·황성빈)’ 도전은 계속된다
  2. 2“감독님이 먹으라고” 정수진, 내막 폭로…유도회 “선수관리·운영체계 점검” 사과
  3. 3불안한 모레노호 우즈벡전 반등할까
  4. 4아시안게임 폐막…한국 金 39개, 44년 만에 최소
  5. 5공은 웃었고 활은 울었다…경기운영·숙소는 빵점 대회
  6. 6작은 체격·부상 딛고 金 “LA올림픽서 그랜드슬램 이룰 것”
  7. 7“의도한 거라면 안 좋다” 축구 금메달 시상식서 제때 오르지 못한 태극기
  8. 8AG 4연패 위업 축구 대표팀, 병역 관련 언행 논란
  9. 9스포츠클라이밍 서채현, 한국 선수단 폐회식 기수
  10. 10‘단체전 대역전극’ 펜싱 2관왕 오상욱, 한국선수단 MVP
우리은행
미리보는 제31회 BIFF
스타 만나려면 첫 3일·여유롭게 영화 즐기려면 둘째주 공략
얼굴에 담긴 이야기
코 성형과 마음 성형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노동 운동부터 계엄까지…예술로 사회문제 비추다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김민우의 인서트 [전체보기]
사랑이 불가능한 시대의 가능한 사랑
환상이 불러일으킨 파국
문화레시피 [전체보기]
‘부산 발레’ 낙동강 타고 새 물길 열다
붉은 빛 조명, 배우·합창단의 호연…눈앞에 다가온 부산오페라하우스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약학박사 연륜이 깃든 시조집 外
익숙한 물건에 깃든 삶의 온기 外
박현주의 책 이야기 [전체보기]
노력과 성공은 비례하는가…현대사회 씁쓸한 이면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참사…더 심각해진 기후 재난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박세연-Find Your Brave
박자현-꾸지 않는 꿈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기다림의 미학 /윤종순
빨래 /심여혜
주말 영화 박스오피스 [전체보기]
역사 왜곡 논란에도 ‘암살자(들)’ 정상…애니 ‘극장판 치이카와’ 예매 1위
추석 연휴 ‘암살자(들)’ 정상…2위 ‘타짜: 벨제붑의 노래’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6일 (음 8월 26일)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5일 (음 8월 25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조선 중기 문신 택당 이식이 가을의 찬 기운을 읊은 시
할아버지·아버지·본인·아들까지 정쟁으로 죽은 김제겸의 글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