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리뷰] 시한부 소녀와 벚꽃 같은 사랑…한편의 아름다운 ‘철학적 우화’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7-10-16 19:38:38
  •  |   본지 19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친구 유산 간직하고 살아가는
- 문학교사의 고교시절 성장담
- 스미노 요루 동명소설 영상화
- 청춘의 가슴 시린 사랑 그려내
- 벚꽃·도서관 중심 모티브 활용

영화 제목이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고 하면 얼핏 공포물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 영화의 실상은 청춘의 가슴 시린 사랑 이야기이다. 스미노 요루의 동명 소설을 영상화한 이 작품은 췌장의 병으로 인해 삶의 나날이 얼마 남지 않은 고등학생 소녀 야마우치 사쿠라(하마베 미나미)와 우연한 일로 병원에서 그녀의 일기를 줍고 시한부 인생임을 알게 된 동급생 시가 하루키(키타무라 타쿠미) 간의 짧은 만남과 이별을 그린다. 불치병에 걸린 여학생을 사랑하는 남학생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언뜻 ‘태양의 노래’(2006)와 같은 유사한 모티브의 작품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영화의 감성은 평범한 첫사랑 이야기와 사뭇 다른 곳을 향한다.
영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의 한 장면. 이 영화는 청춘의 가슴 아픈 사랑을 그리며 존재와 시간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BIFF 제공
고등학교 문학 교사로 사는 시가(오구리 슌)의 현재를 비추는 것으로 막을 연 영화는 그가 학교 도서위원을 하던 10여 년 전의 추억을 회상하면서 과거의 시제로 넘어간다.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독서에 몰두한 채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던 시가는 그런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다가오는 사쿠라를 통해 서서히 닫혀있던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나중에 학생들을 만나고 가르치는 교사의 길을 걷게 된 것도 스스로 “사람 보는 눈은 있다”던 그녀의 권유에 의한 것이었음이 드러난다.

그리고 연인 비슷한 관계로 감정이 무르익어가는 사쿠라와 시가 사이에 그녀의 오랜 동성 친구 쿄코가 배치된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두 청춘 남녀의 사랑 이야기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과거의 친구가 남긴 유산을 품고 현재를 살게 될 두 사람의 성장담이기도 하다. 시가에게 ‘공병(共病)문고’라는 제목이 붙은 일기, 결혼을 앞둔 쿄코에게 유품인 사진과 벚꽃 귀걸이가 오브제로 남아 그녀의 존재를 환기하게 한다.

시가와 쿄코는 사쿠라를 만나 받았던 영향을 바탕으로 성장할 수 있었으며, 따라서 두 사람의 삶은 이제 죽고 없는 사쿠라의 존재에 대한 증거가 된다. 철학자 하이데거(M. Heidegger1889~1976)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가와 쿄코라는 ‘존재자(das Seiende)’를 통해 사쿠라의 ‘존재(Seins)’는 두고두고 이어지며 ‘상기(aletheia)’될 수 있다.

벚꽃(일본어로 벚꽃을 뜻하는 사쿠라와 주인공 이름 사쿠라는 발음이 같다)과 도서관은 영화의 중심 모티브로 활용된다. 봄에 화사하게 피었다가, 만개하는 정점에 금세 사그라드는 벚꽃의 이미지는 비록 찰나이지만, 시가와 쿄코에겐 생애 마지막까지 기억될 사쿠라의 모습 자체에 대한 은유이며, 철거될 예정인 낡은 도서관과 장서들은 오랜 세월의 층위가 겹겹이 포개진 시간성의 장소, 기억의 환유로 등장한다.

이 영화는 연애물의 표면을 쓰고 있지만, 존재와 시간에 관한 한 편의 아름다운 우화이다. 유쾌하고 발랄하며 친절했던 소녀의 모습은 연인과 친구의 인생을 바꿔놓고 영원으로 남았다.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일찍이 노래했다.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려거든 그대의 손바닥에 무한을 붙들고, 한 시간 속에 영원을 간직하라.’(‘순수의 전조’)

조재휘 영화평론가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다 쓰지도 못하는데…어르신 품위유지비 늘린 중구
  2. 2기장군수실 1층 이전 놓고 직원 반대 우세
  3. 3양산 구불구불 새미기고개 대체길 뚫리나
  4. 4“정체성 부재” 비판 많은 ‘부산이즈굿(Busan is Good)’ 손본다
  5. 5부산 아파트 매매 침체일로…해운대·수영·동래만 웃었다
  6. 6연일 노무현 때리는 한동훈, 박정희 띄우는 주진우…檢 출신들 속내는
  7. 76일 부산국제영화제 팡파르…사상 첫 화요일 개막
  8. 8“내가 국회의원 당선시켜” 사하구체육회장 정치개입 정조준
  9. 9가을은 놓쳤지만…거인 ‘레·황(레이예스·황성빈)’ 도전은 계속된다
  10. 10오늘의 날씨- 2026년 10월 6일
  1. 1연일 노무현 때리는 한동훈, 박정희 띄우는 주진우…檢 출신들 속내는
  2. 2‘맹탕 청문’ 의식 부산시의회, 교통·시설公 송곳검증 벼른다
  3. 3부울경 펀드인데 절반가량은 수도권 투자…제도취지 무색
  4. 4軍 “北 지뢰 터져 장병 부상” 결론…군사분계선 이남 제거작전 돌입(종합)
  5. 5장동혁, 육영수 생가 방문…‘암살자(들)’로 진보 맹공
  6. 6"'국가전산망 먹통' 국정자원 화재로 소실된 데이터 완전복구 안돼"
  7. 7부산 영도 출신 이언주 의원, 부산·울산서 '공짜 질서는 끝났다' 북콘서트 개최
  8. 8부산·울산 국감 쟁점 된 전재수·김상욱…野 파상공세 태세
  9. 9부산시의회 찾은 4선 김도읍, 생곡 소각장 반대 논리 읍소
  10. 10[속보] 李 대통령 지지율 37.4%.. 민주 42.5%, 국힘 38.4%
  1. 1부산 아파트 매매 침체일로…해운대·수영·동래만 웃었다
  2. 2지역상품 우선구매 ‘부산이 삽니다’ 민간 확산 드라이브
  3. 3해킹 피해 신한은행 2만5727건 vs 우리·농협 0건…금융기관 ‘보안 체력’이 갈랐다
  4. 4증권·산업계도 AI 해킹 포비아…휴일 반납 하고 긴급 점검
  5. 5누리호 7일 발사 앞두고 6일 기립(종합)
  6. 6“북항 더 핫하게” 시민과 명소화 모색
  7. 7기업 보유 토지 공시지가 공시 의무화…‘땅부자’ 상장사 수면 위로
  8. 8[한 손 뉴스] 양양 송이 ㎏당 171만 원…생산량 줄어 역대 최고가
  9. 9SNS레시피가 제품으로…농심 스낵 ‘너구링’ 선봬
  10. 10어선원 직불금, 60일 승선하면 받는다
  1. 1다 쓰지도 못하는데…어르신 품위유지비 늘린 중구
  2. 2기장군수실 1층 이전 놓고 직원 반대 우세
  3. 3양산 구불구불 새미기고개 대체길 뚫리나
  4. 4“정체성 부재” 비판 많은 ‘부산이즈굿(Busan is Good)’ 손본다
  5. 5“내가 국회의원 당선시켜” 사하구체육회장 정치개입 정조준
  6. 6오늘의 날씨- 2026년 10월 6일
  7. 73년 표류 창원 제2국가산단…LH 사업비 낮추나
  8. 8김해시의원 활동비는 1만 원 깎였다
  9. 9출소 한 달 만에 또…유치장 난동 40대 징역형
  10. 10“디지털농업·특화브랜드로 청년농부 유입 이끌 것”
  1. 1가을은 놓쳤지만…거인 ‘레·황(레이예스·황성빈)’ 도전은 계속된다
  2. 2“감독님이 먹으라고” 정수진, 내막 폭로…유도회 “선수관리·운영체계 점검” 사과
  3. 3불안한 모레노호 우즈벡전 반등할까
  4. 4아시안게임 폐막…한국 金 39개, 44년 만에 최소
  5. 5공은 웃었고 활은 울었다…경기운영·숙소는 빵점 대회
  6. 6작은 체격·부상 딛고 金 “LA올림픽서 그랜드슬램 이룰 것”
  7. 7“의도한 거라면 안 좋다” 축구 금메달 시상식서 제때 오르지 못한 태극기
  8. 8AG 4연패 위업 축구 대표팀, 병역 관련 언행 논란
  9. 9스포츠클라이밍 서채현, 한국 선수단 폐회식 기수
  10. 10‘단체전 대역전극’ 펜싱 2관왕 오상욱, 한국선수단 MVP
우리은행
미리보는 제31회 BIFF
스타 만나려면 첫 3일·여유롭게 영화 즐기려면 둘째주 공략
얼굴에 담긴 이야기
코 성형과 마음 성형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노동 운동부터 계엄까지…예술로 사회문제 비추다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김민우의 인서트 [전체보기]
사랑이 불가능한 시대의 가능한 사랑
환상이 불러일으킨 파국
문화레시피 [전체보기]
‘부산 발레’ 낙동강 타고 새 물길 열다
붉은 빛 조명, 배우·합창단의 호연…눈앞에 다가온 부산오페라하우스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약학박사 연륜이 깃든 시조집 外
익숙한 물건에 깃든 삶의 온기 外
박현주의 책 이야기 [전체보기]
노력과 성공은 비례하는가…현대사회 씁쓸한 이면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참사…더 심각해진 기후 재난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박세연-Find Your Brave
박자현-꾸지 않는 꿈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기다림의 미학 /윤종순
빨래 /심여혜
주말 영화 박스오피스 [전체보기]
역사 왜곡 논란에도 ‘암살자(들)’ 정상…애니 ‘극장판 치이카와’ 예매 1위
추석 연휴 ‘암살자(들)’ 정상…2위 ‘타짜: 벨제붑의 노래’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6일 (음 8월 26일)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5일 (음 8월 25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조선 중기 문신 택당 이식이 가을의 찬 기운을 읊은 시
할아버지·아버지·본인·아들까지 정쟁으로 죽은 김제겸의 글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