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가한 왕자들 그리워하며
- 왕이 만들었다는 연못 ‘영지’
- 허황후 머물다 간 대비마을
- 화려한 창건설화 뒷받침

- 신비의 참선 온돌방 ‘아자방’
- 한번 불 때면 100일간 온기

경남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에 있는 칠불사는 태백산맥의 기운이 뭉쳐있는 지리산 반야봉 남쪽에 있는 사찰로 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에서 북쪽으로 30리에 있다.

만학천봉(萬壑千峰)의 지리산 깊숙이 자리 잡은 칠불사는 창건설화도 화려하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왔다는 기록이 있기 전인 가야 시대 때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암자를 짓고 수도하다가 성불했다는 전설이 있어 가야불교의 발상지로 꼽힌다. 이 왕자들은 처음에 김해 장유에서 수도를 했으나 이후 가야산과 창녕 화왕산, 사천 와룡산 등지로 옮겨 다니다가 마지막에는 터의 기운이 좋은 이곳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이다. 아들을 만나보기 위해 김수로왕이 절 근처에 머물렀다는 범왕리(梵王里)와 어머니인 허왕후가 머물렀다는 대비(大妃)마을이 있어 그럴듯하다.

지리산 최고의 심산유곡에 자리 잡은 칠불사는 오랜 설화만큼 수많은 고승을 배출했다고 하는데 한국전쟁 당시 사찰 대부분이 소실되는 아픔을 겪어 수많은 자료와 문헌들이 소실돼 흔적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창건설화와 영지, 거문고에 얽힌 이야기, 다도의 중흥지, 세계 건축사에서도 보기 힘든 아자방(亞字房) 등에 대해서는 스님들 사이에 입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지리산 해발 700ｍ 고지에 자리하고 있는 칠불사 전경.

■가야불교의 발상지

칠불사는 1세기경 가락국 시조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외숙인 장유보옥(長遊寶玉)선사를 따라와 이곳에서 성불하자 수로왕이 국력을 모아 창건한 사찰로 가야불교의 발상지다. 삼국유사의 가락국기에는 수로왕이 남해를 통해 온 인도 아유타국의 허황옥 공주를 왕비로 맞아 10남 2녀를 뒀다. 장남은 왕위를 계승하고 둘째와 셋째 왕자는 어머니의 성을 이어받아 김해 허 씨(許氏)의 시조가 되었으며 그 나머지 일곱 왕자는 외숙인 장유화상을 따라 출가했다.

그들은 가야산에서 3년간 수도하다가 창녕 화왕산과 사천 와룡산 등을 거쳐 서기 101년에 이곳 지리산 반야봉 아래에 운상원(雲上院)을 짓고 정진한 지 2년 만에 모두 성불했다고 한다. 일곱 왕자의 성불로 사찰의 이름을 칠불사라 했다.

	김수로왕이 아들의 모습을 그림자로라도 보기 위해 만들었다는 연못. 칠불사 제공

출가한 왕자들을 만나기 위해 애를 태우던 수로왕은 물속에 비친 모습이라도 보기 위해 연못을 만들었다가 일곱 왕자가 그림자로 나타났다 하여 연못의 이름을 ‘영지’라 불렀다. 또 칠불사 인근의 범왕(凡王)마을은 수로왕이 칠왕자를 만나기 위해 임시 궁궐을 짓고 머물렀다 해서 붙여졌고 화개면 정금리의 대비마을(大妃洞)은 허왕후가 아들을 만나기 위해 머물렀다 해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신라 때 사찬 공영의 아들 옥보고(玉寶高)가 지리산 운상원에 들어가 50년 동안 거문고를 연구해 30곡을 지어 세상에 전했다고 한다. 삼국사기에는 칠불사가 위치한 화개면에 정금(井琴)이라 불리는 마을이 있는데 옥보고 선생이 칠불사 운상원에서 거문고를 연주하면 이 마을의 우물에서도 거문고 소리가 들렸다 하여 우물 정(井) 자, 거문고 금(琴) 자를 사용해 정금이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동국제일선원

	세계 유일의 온돌구조로 만들어진 아자방.

칠불사는 아자방으로 유명한 벽안당과 운상선원이 있어 많은 선승을 배출한 동국제일선원이다. 아자방은 신라 효공왕 때 구들도사라 불렀다는 담공(曇空)선사가 축조한 선원으로, 방이 버금 아(亞)자 모양이다. 방안 네 귀퉁이에는 70㎝ 높이의 좌선처가 있고 가운데 십자 모양의 낮은 곳은 경행처다. 축조 당시에는 일곱 짐이나 되는 나무를 세 개의 아궁이에 넣어 한꺼번에 때도 화도(火道)가 막히지 않고 높고 낮은 곳이 100일간 고루 따뜻했으므로 신비한 온돌방이라 하여 세계 건축사에 등재될 정도다.

부엌 벽 중앙부에 큰 아궁이를 두어 불길이 부챗살 방향으로 들어가 남북으로 놓인 줄고래를 통해 북벽 밖 중앙에 있는 굴뚝 쪽으로 나가게 되어 있고, 부엌과 방의 높이차가 1.8m나 돼 불길이 잘 들도록 설계돼 있다. 한국전쟁 때 불에 타 소실된 뒤 그 터만 함석으로 덮어 보호해 오다가 1982년에 복원했다. 현재는 경남유형문화재 제144호로 지정돼 있다.

운상선원은 옥보대라고도 하는데 장유보옥선사의 이름을 따서 옥보대라고 한다는 설과 거문고 전승자인 옥보고의 이름을 따랐다는 설이 있다. 현재는 선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조선 시대의 서산대사, 부휴대사, 초의선사가, 현대에는 용성선사, 금오선사, 서암선사 등의 큰스님들이 안거했다. 경내에는 임진왜란으로 퇴락한 전각을 중수한 부휴대사와 1960년대부터 중창불사를 추진한 통광선사의 부도탑비가 있다.

■다도의 중흥지

신라 흥덕왕 3년(828)에 사신으로 당나라에 간 대렴공(大廉公)이 차 종자를 가져와 왕명으로 지리산 화개동에 처음으로 심었다. 조선 순조 28년(1828)에 초의선사가 차 시배지인 화개동 칠불사의 아자방에서 참선하면서 청나라의 모환문(毛煥文)이 지은 만보전서(萬寶全書)의 다경채요(茶經採要)를 읽고 다신전(茶神傳)을 초록했다. 초의선사는 이 다신전을 기초로 동다송(東茶頌)을 저술했다. 동다송은 4구를 1송(頌)으로 모두 17송이고 백파거사가 초의선사를 찬탄한 1송을 더해 모두 18송이다.

이완용 기자 wyle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