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양 북소리와 서양 클라리넷 생생
- 전통 춤과 현대무용의 어울림 폭발
- 윤이상 음악·삶, 몸짓과 소리로 합일
한국 출신의 세계적 작곡가 윤이상(1917~1995) 선생. 1967년 동백림(동베를린)사건에 연루되면서 생전에 고향인 통영 땅을 밟지 못한 채 머나먼 이국땅 독일에서 눈을 감았다. 그는 천재와 비운의 작곡가, 민족주의자와 친북주의자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아 왔다. 이러한 윤이상의 아픈 삶과 예술 세계를 담은 춤사위가 부산에서 펼쳐졌다. 독일로 망명한 두 작곡가 윤이상과 피에르 불레즈의 음악이 함께하고, 한국의 전통 춤사위와 유럽의 현대무용이 어우러졌다. 자연인으로는 남과 북, 음악인으로는 동양과 서양 사이의 경계인이었던 그의 삶을 떠올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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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곡가 윤이상의 삶을 테마로 한 춤 작품 ‘망명’의 한 장면. 최은희 무용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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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부산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춤 작품 ‘망명’(Ex.iL)은 커다란 북을 두들기는 소리와 몸짓으로 시작된다. 무대 한가운데 옷이 벗겨지고 온몸과 입에 검은 테이프가 붙여진 춤꾼이 온몸을 꿈틀거리며 서 있다. 행동과 말이 금지당한 듯하다. 춤꾼 4명이 자아내는 동작은 윤이상 선생이 살아생전 겪은 온갖 고통과 차별을 표현한다. 공간에서 벗어나려는 춤꾼과 이를 막아서는 춤꾼들이 쉼 없이 동작을 만들어갔다. 이들의 끈질긴 뒤엉킴이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윤이상의 운명을 드러냈다. 보는 내내 긴장하며 윤이상의 삶이 무대에 오버랩되는 것을 느꼈다. 그의 삶과 음악적 고뇌가 몸짓과 소리로 전해지는 공연이었다.
공연이 절정에 다다르자 춤꾼들은 과감히 옷을 벗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자 한다. 조명이 든 막대를 휘두르며 춤을 추는 장면에선 춤과 음악, 빛이 하나 됨을 느낄 수 있다. 참신한 무대연출이 돋보였다. 프랑스 클라리넷리스트 노르베르트 젠블린의 라이브 연주가 주는 시너지도 상당했다. 동양의 북소리에 이어 서양의 베이스클라리넷이 춤꾼들의 격렬한 동작에 속도감을 붙였다. 평소 듣기 어려웠던 윤이상의 대표곡인 ‘모놀로그’, ‘살로모’, ‘피리’를 비롯해 프랑스 작곡가인 피에르 불레즈의 음악이 안무와 함께 울려 퍼진다. 처음 열광적인 몸짓에 낯섦을 느끼던 관객들은 시간이 갈수록 인간미가 묻어나는 무대에 감동하며 환호했다.
망명은 부산 무용계를 대표하는 최은희 교수와 프랑스 무용가 헤수스 히달고의 명성과 개성을 확인하는 무대였다. 2년 전 첫발을 뗀 최은희 무용단의 한불합작 무용프로젝트가 해를 거듭하면서 확장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최 교수는 “독일이라는 먼 땅에서 세계적인 작곡가로 살다간 윤이상의 음악과 삶, 고뇌를 몸짓에 담고 싶었다.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의 융합을 통해 합일(合一)의 쾌감과 함께 윤이상의 경계적 삶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은 부산 초연에 이어 내년 3월 프랑스 노르망디 캉 무대에도 오를 예정이다. 올해는 한번만 부산에서 공연을 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정홍주 기자 hjeye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