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불교학자 강경구의 어디로 갑니까 <17> 최상급의 독서

우리는 왜 글자에 얽매이고 나의 것을 집착할까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7-12-08 19:17:05
  •  |   본지 11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전에는 불경을 읽으면 눈이 환해지고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이 있었는데 요즘에는 모든 것이 영 심심합니다.” 한 교수님이 말했다. 열심히 경전을 읽은 결과 깨달음 대신 심심함을 얻었다는 것이다. 참 괜찮은 독서체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삼장 법사 일행의 모험을 다룬 중국 영화 ‘몽키킹 2’의 한 장면. THE 픽쳐스 제공
원래 불경 읽기는 부처의 깨달음을 만나는 효과적인 길 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경전을 제대로 읽게 되면 반짝이는 지성 대신 평범함에 도달하게 된다. 왜일까? 불경 읽기는 여느 독서와 달리 분별적 앎을 내려놓는 차원으로 우리를 이끌기 때문이다. 앎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알아야 할 진리와 아는 나가 성립하지 않는 자리로 옮겨가는 차원 전이가 일어난다는 뜻이다. 그래서 불경 읽기에도 등급이 있다.

독서를 통해 ‘나’가 강화되고 지키고자 하는 진리가 있다는 생각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하급의 독서’이다. 불교적 차원에서 보자면 백해무익의 독서이다. 읽을수록 나와 나의 것을 최고로 생각하여 집착과 번뇌가 강화되기 때문이다. 독서를 통해 견고했던 앎의 차원이 흔들리는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중급의 독서이다. 법계에 가득한 부처의 빛을 생각의 구름이 가리고 있다. 그 생각의 구름에 균열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에 비해 독서를 통해 순간순간 나와 나의 것에 집착하던 세계가 무너지고 있다면 그것은 ‘상급의 독서’이다. 이 때 팔만대장경의 모든 구절들이 나와 나의 것을 지키고자 하는 자아의 전략들을 용서 없이 부수는 금강저가 된다.

가장 멋지기로는 ‘최상급의 독서’이다. 무엇이 최상급의 독서인가? 경전뿐만 아니라 모든 현장에서 부처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 최상급의 독서이다.

여기 서천 여행을 마친 삼장 일행의 이야기가 있다. 삼장 일행은 영취산의 부처님을 친견하고 훌륭한 경전들을 받아 돌아오게 된다. 그 때 한 천신의 장난으로 이 경전 보따리들이 바람에 흩어지게 된다. 사오정이 흩어진 경전을 수습하다가 우연히 책을 펼쳐보는데, 아뿔싸! 모든 경전이 글자가 하나도 없는 백지가 아닌가? 손오공이 아난·가섭을 원망한다. 그들이 뇌물을 받지 못해 글자 없는 경전을 내어 준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부처님에게 돌아가 이 일을 고발한다. 부처님이 웃으며 말한다. “글자가 없는 이 경전이 진짜 경전이건만 사바 세계의 백성들이 미혹하여 이것을 읽을 복이 없구나.”

그렇다. 불법은 글자에 구속됨이 없어 모든 현장을 설법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 그러니까 모든 현상이 경전이고 그 실상을 바로 보는 것이 최상급의 독서이다. 모든 행위에 항상 부처님이 함께 하고 있고, 이 부처님을 바로 확인하는 것이 최상급의 독서이다. 그렇다고 글자가 쓰인 경전을 폐기하지도 않는다. 책을 펴고, 책을 읽고, 책을 덮는 모든 일들조차 경전 읽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독서뿐만 아니라 움직이고, 멈추고, 앉고, 눕는 모든 동작이 경전 읽기의 현장이 되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도대체 비범하거나 성스러운 경전이라는 것이 따로 있을 여지가 없다. 오히려 그런 것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관념의 때이다. 우리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지성은 불법의 차원에서 보면 영혼의 소화불량을 유발하는 불량식품이다. 독서를 통해 머리가 울리는 충격과 속이 시원해지는 해방감 대신 심심함을 얻었다면 그 심심함에 눈 뜨는 것, 그것이 바로 최상급의 독서이다.

동의대 교양대학 학장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기장군수실 1층 이전 놓고 직원 반대 우세
  2. 2다 쓰지도 못하는데…어르신 품위유지비 늘린 중구
  3. 3“정체성 부재” 비판 많은 ‘부산이즈굿(Busan is Good)’ 손본다
  4. 4양산 구불구불 새미기고개 대체길 뚫리나
  5. 5부산 아파트 매매 침체일로…해운대·수영·동래만 웃었다
  6. 66일 부산국제영화제 팡파르…사상 첫 화요일 개막
  7. 7연일 노무현 때리는 한동훈, 박정희 띄우는 주진우…檢 출신들 속내는
  8. 8가을은 놓쳤지만…거인 ‘레·황(레이예스·황성빈)’ 도전은 계속된다
  9. 9해킹 피해 신한은행 2만5727건 vs 우리·농협 0건…금융기관 ‘보안 체력’이 갈랐다
  10. 10“감독님이 먹으라고” 정수진, 내막 폭로…유도회 “선수관리·운영체계 점검” 사과
  1. 1연일 노무현 때리는 한동훈, 박정희 띄우는 주진우…檢 출신들 속내는
  2. 2‘맹탕 청문’ 의식 부산시의회, 교통·시설公 송곳검증 벼른다
  3. 3부울경 펀드인데 절반가량은 수도권 투자…제도취지 무색
  4. 4軍 “北 지뢰 터져 장병 부상” 결론…군사분계선 이남 제거작전 돌입(종합)
  5. 5장동혁, 육영수 생가 방문…‘암살자(들)’로 진보 맹공
  6. 6부산·울산 국감 쟁점 된 전재수·김상욱…野 파상공세 태세
  7. 7부산시의회 찾은 4선 김도읍, 생곡 소각장 반대 논리 읍소
  8. 8[속보] 李 대통령 지지율 37.4%.. 민주 42.5%, 국힘 38.4%
  9. 9[속보] ‘실탄 없이 경계 근무’ 사례 추가 확인, 국방부 기관 경고 방침
  10. 10‘盧 수사’ 與-한동훈 논쟁 확전…“석고대죄하라”-“성역화 말라”
  1. 1부산 아파트 매매 침체일로…해운대·수영·동래만 웃었다
  2. 2해킹 피해 신한은행 2만5727건 vs 우리·농협 0건…금융기관 ‘보안 체력’이 갈랐다
  3. 3지역상품 우선구매 ‘부산이 삽니다’ 민간 확산 드라이브
  4. 4증권·산업계도 AI 해킹 포비아…휴일 반납 하고 긴급 점검
  5. 5누리호 7일 발사 앞두고 6일 기립(종합)
  6. 6SNS레시피가 제품으로…농심 스낵 ‘너구링’ 선봬
  7. 7[한 손 뉴스] 양양 송이 ㎏당 171만 원…생산량 줄어 역대 최고가
  8. 8“북항 더 핫하게” 시민과 명소화 모색
  9. 9주민번호 대량 유출 빈번, 최근 6년 505만 건 털려…‘온라인 번호’는 278만 건
  10. 10어선원 직불금, 60일 승선하면 받는다
  1. 1기장군수실 1층 이전 놓고 직원 반대 우세
  2. 2다 쓰지도 못하는데…어르신 품위유지비 늘린 중구
  3. 3“정체성 부재” 비판 많은 ‘부산이즈굿(Busan is Good)’ 손본다
  4. 4양산 구불구불 새미기고개 대체길 뚫리나
  5. 5“내가 국회의원 당선시켜” 사하구체육회장 정치개입 정조준
  6. 6오늘의 날씨- 2026년 10월 6일
  7. 7김해시의원 활동비는 1만 원 깎였다
  8. 83년 표류 창원 제2국가산단…LH 사업비 낮추나
  9. 9출소 한 달 만에 또…유치장 난동 40대 징역형
  10. 10“디지털농업·특화브랜드로 청년농부 유입 이끌 것”
  1. 1가을은 놓쳤지만…거인 ‘레·황(레이예스·황성빈)’ 도전은 계속된다
  2. 2“감독님이 먹으라고” 정수진, 내막 폭로…유도회 “선수관리·운영체계 점검” 사과
  3. 3불안한 모레노호 우즈벡전 반등할까
  4. 4아시안게임 폐막…한국 金 39개, 44년 만에 최소
  5. 5공은 웃었고 활은 울었다…경기운영·숙소는 빵점 대회
  6. 6작은 체격·부상 딛고 金 “LA올림픽서 그랜드슬램 이룰 것”
  7. 7“의도한 거라면 안 좋다” 축구 금메달 시상식서 제때 오르지 못한 태극기
  8. 8AG 4연패 위업 축구 대표팀, 병역 관련 언행 논란
  9. 9스포츠클라이밍 서채현, 한국 선수단 폐회식 기수
  10. 10‘단체전 대역전극’ 펜싱 2관왕 오상욱, 한국선수단 MVP
우리은행
미리보는 제31회 BIFF
스타 만나려면 첫 3일·여유롭게 영화 즐기려면 둘째주 공략
얼굴에 담긴 이야기
코 성형과 마음 성형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노동 운동부터 계엄까지…예술로 사회문제 비추다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김민우의 인서트 [전체보기]
사랑이 불가능한 시대의 가능한 사랑
환상이 불러일으킨 파국
문화레시피 [전체보기]
‘부산 발레’ 낙동강 타고 새 물길 열다
붉은 빛 조명, 배우·합창단의 호연…눈앞에 다가온 부산오페라하우스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약학박사 연륜이 깃든 시조집 外
익숙한 물건에 깃든 삶의 온기 外
박현주의 책 이야기 [전체보기]
노력과 성공은 비례하는가…현대사회 씁쓸한 이면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참사…더 심각해진 기후 재난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박세연-Find Your Brave
박자현-꾸지 않는 꿈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기다림의 미학 /윤종순
빨래 /심여혜
주말 영화 박스오피스 [전체보기]
역사 왜곡 논란에도 ‘암살자(들)’ 정상…애니 ‘극장판 치이카와’ 예매 1위
추석 연휴 ‘암살자(들)’ 정상…2위 ‘타짜: 벨제붑의 노래’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6일 (음 8월 26일)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5일 (음 8월 25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조선 중기 문신 택당 이식이 가을의 찬 기운을 읊은 시
할아버지·아버지·본인·아들까지 정쟁으로 죽은 김제겸의 글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