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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문화현장 <39> 지리학자 손일 전 교수, 그리고 에노모토 다케아키

부산의 지리학자, 日 막부말기의 풍운아 통해 메이지유신 말하다

  •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
  •  |   입력 : 2017-12-25 18:54:59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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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세기 네덜란드 지도 연구
- 일본의 근대화 출발점 조망
- 에도막부 ‘1609년 체제’ 이어
- 낯선 인물 ‘에노모토’ 발굴해

- 전쟁 일으키고 패배했지만
- 메이지 초기 최고관료로 활약
- 그의 삶 촘촘하게 쫓는 과정서
- 정치사 지리학 해양사 바탕
- 격동의 시기 새로운 시선 제시

일본을 수많은 ‘수수께끼’로 첩첩이 둘러싸인 퍼즐판이라고 가정해보자. 한국인에게 가장 먼저 풀고 싶은 수수께끼는 무엇일까? 사람에 따라 그것은 ‘스시 맛의 비결’부터 ‘군국주의 멘털리티의 뿌리’까지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천차만별’에서 벗어나 논의를 진전시키기 위해 이번엔 좀 거시적인 또는 정치·사회적인 주제로 초점을 좁혀보자. 그러면 앞자리에 무엇이 올까?
일본 홋카이도 에사시 앞바다에 복원한 군함 가이요마루가 떠 있다. 에노모토 다케아키가 메이지 유신을 일으킨 신정부군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을 때 이 배도 한몫했으나, 배는 이내 좌초된다.
■일본이라는 퍼즐판과 메이지 유신

손일(61) 전 부산대 지리교육과 교수는 지난 9월 역저 ‘ 에노모토 다케아키와 메이지 유신’(푸른길)을 펴냈다. 이 책은 일단 손 전 교수가 풀고자 했던 일본이라는 퍼즐판의 첫 번째 수수께끼가 다름 아닌 ‘메이지 유신’이었음을 알려준다. 한국의 많은 지식인이나 장년층 이상의 독자는 이를 수긍할 것이다.

일본은 1868년 메이지 유신을 단행해 밀려오는 외세를 미끄러뜨리면서 ‘독립’을 유지하고, 안으로는 부국강병을 이뤄 일거에 근대적 국가로 탈바꿈했다고 이해된다. 한·중·일뿐 아니라 아시아 판도에서 자체 힘으로 이런 전환에 성공한 나라는 일본뿐이었다. 자연스럽게 ‘어떻게 일본은 메이지 유신에 성공했나’ 하는 주제는 우리나라에서도 중요한 연구 대상이 됐다. 다만,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군국주의라는 길을 갔고, 우리나라와 아시아에 엄청난 재앙을 안긴 명백한 역사는 여기서는 일단 논외로 한다.

손 전 교수는 ‘에노모토 다케아키와 메이지 유신’을 지금까지의 정치사 중심 메이지 유신 분석과는 완연히 다른 성격의, 유례를 찾기 힘든 책으로 만들어냈다. 한국 독자에게 낯설 에노모토 다케아키라는 인물을 ‘발견’하고 책 후반부의 중심에 놓음으로써 그는 이 일을 해낸다.

■지리학자의 도전과 공부

가이요마루를 그린 그림.
“저는 지리학자입니다. 산지 지형에 관한 논문을 주로 쓰는 지형학자이죠. 16세기 네덜란드 지도 제작자 메르카토르를 연구(그는 2007년 ‘메르카토르의 세계’를 번역했고, 2014년 ‘네모에 담은 지구-메르카토르 1569년 세계지도의 인문학’을 썼다)한 것이 중요한 계기가 됐어요. ‘16세기 네덜란드’를 알게 됐죠. 16세기 네덜란드라는 키는 일본 근대화의 출발점을 조망하고 조명하는 데 지극히 중요한 요소이자 배경입니다.” 그는 “그 덕분에 ‘에노모토 다케아키와 메이지 유신’의 앞부분을 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저자 인터뷰는 아차 하면 흐름을 놓치고 말 것 같은 긴장감 속에 이뤄졌다. 불꽃이 튀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그만큼 저자는 이 책을 간절한 마음으로 썼다.

대한지리학회 회장을 지낸 손 전 교수는 많은 책을 짓거나 우리말로 옮겼다(공저와 공역 포함). 대표적인 번역서를 꼽아보면 ‘일본 지질학의 아버지’ 고토 분지로의 ‘조선기행록’과 ‘한반도 지형론’, 마리우슨 잰슨의 ‘사카모토 료마와 메이지 유신’, 마크 몬모니어의 ‘지도전쟁’, 앤드루 가우디의 ‘휴먼 임팩트’(3명 공역) 등이 있다. 주요한 단독 저서로는 ‘앵글 지리학 상·하’와 ‘에노모토 다케아키와 메이지 유신’을 꼽을 수 있다.

■정치사 벗어나 다양한 영역 수렴

에노모토의 동상 앞에 선 손일 전 교수.
그리고 그는 부산대 지리교육과 대학원에서 가르칠 때 매주 1권씩 책을 읽히는 수업을 했는데 이때 집중해서 읽은 책들이 중요한 계기가 됐다. 그는 “19세기 제국주의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고, 학생들과의 토론 초점이 동아시아로 옮아갔다. 이런 독서를 통해 19세기 말 일본의 다이내믹을 깊이 느꼈다”고 말했다. 그리고 답사와 연구로 “일본 규슈는 나의 여행 파트너이자 맹렬한 독서가인 신라대 김성환 교수와 함께 갔다 온 것만 30번, 홋카이도는 4번”이다.

이 일련의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메이지 유신이 궁금한 독자에게 700쪽 짜리 ‘에노모토 다케아키와 메이지 유신’은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이 책은 ‘다르기’ 때문인데, 저자는 정치사 중심으로 사건·인물·상황을 정밀하게 정리했을 뿐 아니라 지리학, 지도학, 천문학, 해양사, 난학 등 과학에 바탕을 둔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총동원한다. 저자는 책의 전반부에서 그렇게 총동원한 지식으로 우직하게 탄탄한 ‘기초공사’를 하는 데 집중한다. 이는 책 후반부에서 일본 에도 막부 말기의 풍운아 에노모토의 삶과 메이지 유신 사이의 ‘다이내믹’을 보여주기 위함인데, 바로 그 기초공사 자체가 이 책의 엄청난 매력이자 정체성이 되었다.

■극적인 삶을 살았던 인물 에노모토

에노모토 다케아키
‘1609년 체제’ 같은 독창적인 표현을 그런 특징의 예로 들 수 있다. 이 책의 집필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고 응원한 신라대 김성환 교수와 탁한명 박사는 “일본의 근세인 에도 막부는 세 번의 등성이(발전기·팽창기)를 겪고 세 번의 골짜기(침체기·위기)를 겪는데, 골짜기에 처하면 스스로 개혁을 했다. 그 과정이 잘 정리돼 있고 특히 1609년 체제라는 인식은 독창적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손 전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1609년 에도 막부는 조선과 기유조약을 맺으면서 관계를 개선하고, 류큐(오키나와)를 점령해 대중국 관계의 틀을 재설정하죠. 또 기존의 스페인과 포르투갈 대신 새롭고 강력한 세력인 네덜란드와 처음으로 통상 관계를 맺는 것도 1609년입니다. 이를 저는 ‘1609년 체제’로 표현했는데, 일본 근세와 근대 그리고 메이지 유신을 이해하는데서 이는 중요하다고 봅니다. ” 그렇다면 저자가 온 힘을 다해 이 책을 쓰게 한 에노모토 다케아키는 누구인가?

■손 전 교수의 다음 작업은?

홋카이도 오타루의 미야코도리에 에노모토를 기념하는 걸개그림이 걸려 있다. 그는 오타루를 개척해 국가에 헌납했다.
에노모토는19세에 에도 막부의 홋카이도·사할린 현지 조사에 참여했고, 막부 최초의 근대식 군사학교인 나가사키 해군전습소에서 배웠으며,네덜란드에 유학을 다녀온 엘리트였다. 메이지 유신이 성공하고 신정부가 들어서자 에노모토는 패배한 막부 세력을 군함 8척에 싣고 홋카이도로 탈주한 뒤 하코타테 전쟁을 일으킨다. 그는 이 전쟁에서 패배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신정부는 반역자인 그를 죽이지 않는다. 2년만에 풀려난 그는 홋카이도를 개척하고, 초대 러시아 주재 특병전권공사를 맡으며 뒤에는 ‘직업이 장관’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체신대신, 문부대신, 외무대신, 농상무대신으로 일한다. 당시 최고의 테크노크라트(기술 관료)로 활약한 뒤 조용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손 전 교수는 이 인물을 중심에 놓고 메이지 유신의 역사와 성격을 자신의 관점에서 정리했다. 이 책은 일본 근세·근대에 관한 한국 독자의 인식 지평을 넓혀줄 것이다.

손 전 교수는 정년이 5년이나 남아 있던 올해 2월 부산대에서 명예퇴직했다. 이유를 묻자 “메이지 유신을 이해하는 데서 중요한 인물인 사이고 다카모리의 평전에 도전해볼까 깊이 생각 중이다. 좋은 평전을 써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자꾸만 하게 된다”고 둘러서 답했다. 맹렬하게 읽고 공부하면서 ‘하고 싶었던’ 일에 매진하는 즐거움 누리는 그의 다음 작업이 기대된다.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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