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함께-죄와 벌’이라는 영화가 보기 드문 흥행기록을 써가고 있다고 한다. 영화는 지옥이라는 장치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험하게 살고 있는지, 왜 죄를 짓고 살면 안 되는지를 그림처럼 보여준다. 알고 보면 뻔한 인과응보, 권선징악 영화다. 그럼에도 이 뻔한 영화의 바닥을 흐르는 못난 자, 없는 자에 대한 위로의 메시지와 그에 대한 반응은 간단치 않아 보인다. 이만한 것에도 눈물을 흘릴 만큼 우리는 위로에 목마르다. 많은 사람이 영화에 몰리는 하나의 이유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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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시안의 당나라 역사테마파크 대당부용원에 조성된 서유기 조형물. |
살아생전의 죄업이 무거우면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다는 내세관은 불교에서 비롯된다. ‘지옥경’으로 불리는 경전에 의하면 지옥에서 받는 벌은 하룻낮, 하룻밤 동안만 해도 만 번 죽고 만 번 되살아나기를 거듭하며 끊어지는 일이 없다. 지옥의 벌은 정해진 기한이 없어 영원히 지속되기도 하고 일순간에 종료되기도 한다. 그것은 죄인의 마음에 달려 있다. 얼마나 진정한 참회가 이루어졌는가가 그 기준이 되는 것이다. 어떻게 참회할 것인가? 죄를 반성하고 착한 일을 하면 되는가? 그렇기는 하지만 불교에서는 더욱 본질적인 길을 제시한다.
‘서유기’에 3년 동안의 가뭄에 시달리는 한 고을 얘기가 있다. 이곳 태수는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간절한 사람으로 가뭄 해소를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손오공이 이를 돕기 위해 팔을 걷고 나선다. 가뭄은 태수의 죄로 인한 것이었다. 태수가 고을의 안녕을 비는 기도를 하던 중 부인과 다툼이 일어 홧김에 제사상을 엎어버리는 일이 일어났다. 이 일로 가뭄이 들어 세 개의 조건이 해결될 때까지 인과응보가 계속 일어나게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세 개의 조건이란 무엇일까? 손오공이 가 보니 한 곳에 높은 쌀의 산이 세워져 있는데 조막만 한 병아리가 가끔 쌀을 쪼아 먹고 있었다. 그 옆에는 밀가루 산이 세워져 있고 발바리 개 한 마리가 가끔씩 그것을 핥고 있었다. 다시 그 옆에는 굵은 황금사슬이 묶여 있고 그 밑에 등잔불이 놓여 있었다. 태수의 선행이 있을 때마다 병아리가 쌀을 한 번 쪼아 먹고, 발바리가 밀가루를 한 번 핥고, 촛불이 황금사슬을 한 번 데우는 중이었다. 얼마나 많은 참회와 선행이 있어야 이 쌀 산과 밀가루 산과 황금사슬이 없어질 것인가? 이미 일어난 죄업을 반성과 선행으로 녹이려면 이처럼 기약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부인에게 화 한 번 내고 제사상 한 번 엎은 것에 대한 벌로 너무 과한 것이 아닐까?
불교에서는 자아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되는 모든 행위가 죄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자아의 집착을 뿌리로 하여 남을 해치는 죄가 잎처럼 돋아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사소해도 자아에 대한 집착은 지옥행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자아에 집착하여 세속적 명예를 즐기던 스님들이 철상(鐵床) 지옥에서 벌을 받게 되었다는 얘기도 경전에 전한다. 그래서 진정한 참회는 나와 남이 둘 아닌 이치에 밝게 눈뜨는 일, 자아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일이 아니면 안 된다. 손오공을 만난 태수가 그랬다. 그는 자아를 내려놓고 부처에 귀의하여 오로지 맡겨두는 마음으로 돌아가 참회를 완성한다. 나의 내려놓음 하나로 온 누리의 가뭄이 해소되고 감로의 비가 내린다.
동의대 교양대학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