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들어버린 꽃·버려진 물건
- 죽음 상징하는 간접적 사물부터
- 판잣집 옆 봉분까지 렌즈에 담아
-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 찾았으면”

“연초부터 죽는 이야기 하느냐고요? 예순 살이 되니 삶과 죽음이 공존할 수 있겠구나 싶어요.”

	문진우 사진가의 ‘메멘토 모리’ 전에서 선보이는 작품으로 남구 문현동 무덤마을의 모습이다. 갤러리수정 제공

부산의 중견 사진가 문진우(59)가 15번째 개인전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삶과 죽음, 빛과 어둠, 나와 나 아닌 것의 공존’을 열고 있다. 메멘토 모리는 ‘죽음을 기억하라’ ‘네가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뜻의 라틴어다. 전시 제목처럼 문진우는 죽음을 기억하게 하는 장소를 사진에 담았다. 부산 남구 문현동 ‘무덤마을’을 촬영한 작품들이다.

한때 알록달록한 벽화로 ‘인증샷’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몰렸던 무덤마을. ‘돌산마을’로도 불리는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공동묘지 위에 6·25전쟁 피란민들이 판잣집을 지어 살면서 형성됐다. 서구 아미동 비석마을의 유래와 흡사하다. 이 마을 곳곳에는 아직도 묘지 80여 기가 남아있다. 길가에 묘지가 있고, 묘지 사이에 집이 있고, 집 한 켠에도 봉분이 야트막한 무덤이 있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매우 독특한 장소다.

이번에 전시하는 사진은 7, 8년 전까지 기록한 무덤마을의 모습이다. 10년 전 무덤마을을 촬영하기 시작해 2~3년 정도 집중적으로 작업했으나, 쉬이 공개하지 못했다. “죽음을 가볍게 다룰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식 나이로 예순을 맞은 올해 드디어 무덤마을 사진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제 죽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 ‘내공’이 쌓인 것일까.

그는 “아주 오래전 부산진구 당감동에 화장장이 있을 때다.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 살다가 힘이 들고, 누군가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질 때 화장장에 가보라고 했다. 사람이 죽어서 불태워지는 걸 보면 ‘삶이 별 것 아니구나’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알 것 같다”며 “무덤마을에 지천인 봉분 사이를 걸었을 때 처음에는 두려움을 느꼈지만, 몇 번 가보니 두려움보다는 삶 앞에서 겸손해지는 마음이 들었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죽음을 보며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찾을 수 있겠구나 싶어 사진을 공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마을이 조만간 재개발된다는 소식을 듣고 “현재의 마을 모습이 남아있을 때 사진을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도 있다.

사진전에는 죽음을 간접으로 상징하는 시든 꽃과 버려진 물건, 죽음을 직접 연상시키는 무덤과 까마귀, 무덤마을 주민을 담은 사진 등이 선보인다. 모두 ‘희망’을 이야기하는 연초에 ‘죽음’을 내세운 기획전을 여는 데 대한 걱정은 없었을까. 이는 사진전이 열리는 장소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전시는 동구 수정동 산복마을의 50년 된 수정아파트 4층에 들어선 ‘갤러리수정’(본지 지난해 6월 16일 자 8면 보도)에서 열린다.

갤러리수정 윤창수 대표는 “아파트 주민과 인근 주민은 대부분 예순을 넘긴 나이다. 다들 영정 사진을 준비하는 마을에서 죽음은 금기가 아니다. 동네 분들이 죽음을 이야기하는 사진을 허심탄회하게 감상하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다음 달 6일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 입장료 1000원 자율 납부. (051)464-6333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