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갓 한글 뗀 할머니들의 인생 시
- 김용택 시인 시선으로 바라봐

평생을 글 모르고 산, 까막눈으로 산 할머니들이 뒤늦게 글을 배웠다. 글자만 읽을 줄 아는 게 소원이었는데 이제 시도 쓴다. 시가 별것인가, 별것이라 봤자 사람 한 평생보다 별 것인가. 내가 이렇게 살았노라고 털어놓은 심정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시가 됐다.

	‘엄마의 꽃시’를 엮은 김용택 시인의 짧은 시평이 인상적이다. “보아라! 이것이 인생이다.” 마음서재 제공

엄마의 꽃시에는 한글을 갓 뗀 100명의 할머니가 쓴 시와 시인 김용택의 시평이 담겼다. 먹고 살기 힘들 때 태어나 ‘계집애 재수없다’고 구박만 안 받아도 다행, 언감생심 공부한다 소리 했다가는 눈물이 찔끔 나도록 혼이나 났을 것이다. 잘난 남자 형제 뒷바라지 한다고, 자식들 먹이고 공부시킨다고 글 배울 시간도 엄두도 안 났을 것이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손주가 태어나 제법 한다는 말이 “할머니는 글도 몰라?” 이제는 정말 글을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릴 적/할머니 다리에 누워/옛날 얘기를 들으며 잠이 들곤 했었는데/우리 손주는/책을 가져와/읽어달라고 하니/무서워 죽겠다/말로 하는 이야기라면/손으로 하는 음식이라면/손주놈이 해달라는 대로/해줄 수 있으련만/달려가 보듬어 안고파도/손주놈 손에 들린/동화책이 무서워/부엌에서 나가질 못한다(강춘자 ‘무서운 손자’)

할머니들의 시에는 형용사가 거의 없는데도, 꾸밈 말을 잔뜩 얹은 글귀보다 풍성하다. 아들이/손자가/웃고 있다/크게 입 벌리고/웃고 있다//어떤 소리일까/산보다 큰 소리일까/꽃보다 예쁜 소리일까/듣고 싶다/웃음 소리(배정동 ‘듣고 싶다’)

한껏 웃고 있는 손자는 할머니와 좀 떨어져 있을까. 할머니의 귀가 어두운 걸까. 아니면 할머니는 활짝 웃는 손자의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을까. 김용택 시인은 이 시를 두고 말한다. ‘마음이 티 하나 없는 가을 하늘 같아요. 소리란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주기도 하네요.’

우리 영감한테 받은 설움/지금도 잊지 못하네//내가 못 배운 것을 알고는/성질만 나면 날보고 은행에 가서/돈 찾어오라고 시켰지/그러면 나는 은행에 가서 땀을 쩔쩔 흘리며/2시간 동안 시간을 보내다가 집에 오곤 했지//글 모르는 죄로 남편에게 대들지도 못하고/울기만 하며 평생 살았네//하얀 종이에 글씨 써보는게 소원이었는데/이제는 글을 배워 은행가는 것은/일도 아니라네(김금준 ‘영감 보고 있소?’중)

온갖 욕망이 들끓는 세상에, 흰 종이에 검은 글을 쓰는 것만이 소원이다. 김용택 시인은 말한다. “이 시집을 읽으며 저는 내내 제가 사는 것이, 글을 쓰는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너무 한갓진 글을 쓰고 있구나. 너무 같잖은 소리를 하고 있구나. 살려면 멀었다.”

학교는 아들만 다니는 거라고/그때는 그게 좋았지/동생은 학교 가구/난 집에서 놀아쓰니까//언젠가 동생이 책을 보며 공부를 하네/까만 글씨 먼지 몰라도/하나씩 읽고 있으니 엄마는 동생 보며 웃네/나는 엄마 보며 웃는대 엄마는 동생만 보네(고예순 ‘엄마의 웃음’ 중)

시집 한 권 다 읽고 난 소감은, 그저 눈물이 난다. 이런 것이 본래 시인가 한다. 시란 본래 삶인가 한다.

신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