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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남자] 실패한 ‘적색 개발주의’로 쓸쓸히 끝난 러시아혁명 /정광모

러시아 혁명사 강의- 박노자 지음 /나무연필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5-18 19:05:58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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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상교육 등 친민중적 시스템 불구
- 내부 모순과 지도층의 욕망 뒤섞여
- 야만적 자본주의로 변질되며 추락
- 변화 모색하는 北의 개발은 어떠할까

18세기가 프랑스 대혁명의 시대라면 20세기는 러시아혁명의 시대다. 서양과 동양, 제국주의 국가와 침략당한 국가 모두 러시아혁명의 강력한 자장에 붙잡혔다. 한쪽은 러시아 혁명이 자국에서 일어날까 두려워했고 다른 한쪽은 응용할 방법이 없을까 모색했다. 일제강점기의의 한국 독립운동 역시 러시아 혁명에 떼놓을 수 없는 빚을 졌다. 러시아혁명 100년이 지난 오늘에 되돌아보면 초라하다 못해 배신감을 느낀다. 혁명가가 내건 ‘정의’와 ‘평등’과 ‘프롤레타리아의 삶’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현실사회주의의 몰락’으로 일컫는 말도 우습기 짝이 없다. 사회주의는 ‘현실’에서 존재하지 못하고 ‘공상’에서만 숨 쉬는 존재란 말인가. 러시아혁명은 처음부터 실패가 예정된 혁명이었던가? 혁명의 이상은 고고했으나 레닌과 스탈린을 비롯한 혁명가 잘못으로 망쳐버린 걸까?
   
1990년 러시아 모스크바에 최초로 생긴 맥도날드 앞에 사람들이 끝없이 줄을 서 있다. 나무연필 제공
소련의 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한국학을 전공한 저자는 소련은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라고 말한다. 국민 모두가 정치 주체가 되어 자유롭게 활동하며 민주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사회주의인데, 소련에선 사라졌고 지하서클 정도만 남았다. 저자는 문서보관소의 비밀경찰 자료를 인용해 1937, 38년에 사상범으로 수감된 사람은 134만4922명이었고, 이중 68만1692명이 총살되었다고 밝힌다. 1934년에 피선된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과 후보위원이 130명이었는데 이중 사형당해 죽은 사람이 98명일 정도다.

   
정권을 잡은 러시아 혁명 세력은 ‘적색 개발주의’에 관심을 집중한다. 스탈린은 소련의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선진국에 비해 60~100년 뒤떨어져 있다. 우리가 10~15년 사이에 선진국 수준을 따라잡지 않으면 저들이 우리를 소멸시킬 것이다.” 그래도 혁명을 거쳤기에 개발과정에서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노후 연금제도를 마련했다. 노동자, 농민과 그 자녀의 신분 상승 기회를 보장하는 친민중적인 시스템을 그나마 만들어놓았다.

그래선지 스탈린은 서구 자본주의 국가의 근대보다 소련의 근대가 훨씬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민중들 입장에선 소련이 살 만한 세상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래로부터 민주적인 관리와 통제를 받지 못하는 사회주의는 허약하다. 소련 내부에 쌓이고 쌓인 모순을 일본 작가 요네하라 마리는 이렇게 표현했다.

“실업자는 없지만 아무도 일하지 않는다. 아무도 일하지 않지만 모두 급료를 받는다. 모두 급료를 받지만 아무것도 살 물건이 없다. 아무것도 살 것이 없지만 어떻게든 먹고 산다. 어떻게든 먹고 살지만 모두가 불만을 갖는다. 모두가 불만을 갖지만 전원이 ‘찬성’이라고 투표한다.”

‘적색 개발주의’는 공산당 간부들의 공장 사유화 욕망이 불거지면서 오늘 러시아에서 보는 ‘야만적 자본주의’로 변질되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이행하면 반드시 따라오는 자본의 원시적 축적이 소련에서도 예외 없이 진행된다. 알짜 국유기업을 모리배와 정치꾼들이 불하받고, 모스크바의 공공용지가 헐값에 팔리고, 국민은 가난해지고 일부 정상배들만 배를 불리는 시대가 온 것이다. 중국도 비슷하다. 덩샤오핑은 개혁개방을 하면서 중국인민에게 ‘먼저 부자가 되라’고 역설했다. 그럼 부자 대열에서 뒤처진 농민공 등은 국가가 삶을 보장할 수 있는 걸까? 현대화를 이룬 강력한 국가가 되겠다는 중국의 꿈은 무르익어가지만 빈부격차가 심한 어둠 또한 짙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판문점 회담 이후 북한에 엄청난 광물자원이 있고 도로 항만 철도 등 건설할 인프라가 무진장이라는 보도가 넘쳐난다. ‘북한 투자’는 뜨거운 화제다. 곳곳에서 북한 경제를 자신에게 ‘돈이 되는’ 방식으로 바라보고 있다. 북한이 경제개혁을 하더라도 무상교육과 인민에게 필요한 기본을 지키면서 할 수 있을까? 조선 특색의 실패한 사회주의는 조선 특색의 성공한 자본주의로 변신할 수 있을까? 북한에서 인민을 위한, 인간의 얼굴을 한 건강한 개발주의는 가능할까? 실패한 ‘적색 개발주의’로 끝난 러시아 혁명사를 되새기며 북한이 야만이 아닌, 제대로 된 ‘적색 개발주의’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나 혼자뿐일까.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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