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을에 관한 의미있는 책 만들려
- 최기봉·최원준 씨가 의기투합
- ‘주민들이 직접 글을 쓰게 하자’
- 기사의 ‘ㄱ’도 몰랐던 지망생들
- 신문·잡지 만들기 노하우는 물론
- 인터뷰하는 법 등 속성으로 배워
- 20회·50시간 스파르타식 수련
- 사연 많은 주민들 직접 취재
- “관심 없던 마을에 애정이 생겨
- 자치행정 나아갈 방향 여기에”
만든 이의 사랑과 땀이 듬뿍 배인 책은 겉모습이 수수할지라도 속에는 ‘보석’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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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잡지 ‘만덕사람들’을 만든 마을기자들. 왼쪽부터 이정임 만덕2동 총괄사무장, 김성연, 김후분, 최기봉 부산 북구평생학습사업소장, 민득분(마을기자단장), 문난이, 이은숙, 서승주, 이삼하 씨. 박종운 만덕2동장.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
“마을기자단 교육을 2016년 12월부터 이듬해 1월, 2017년 6월부터 7월, 이렇게 모두 20회·50시간 받았어요. 교육을 맡아주신 시인이자 음식문화 칼럼니스트 최원준(동의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선생님이 부드러운 분인데 마을기자 교육은 스파르타식으로 하셨어요. 정말이지 만만치 않았어요.”(민득분 ‘만덕사람들’ 마을기자단장·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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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기자들이 글쓰기 수업을 받는 모습. ‘만덕사람들’ 제공 |
이런 일이 있었다. 민득분 단장의 마을기자 교육 체험담이다. “인터뷰를 직접 해오라는 숙제가 나왔어요. 만덕동에서 주민을 위해 오랜 기간 기체조를 가르쳐주는 분이 계셔서, 이 분을 인터뷰해야겠다 싶었죠. 기체조 강습이 새벽 5시에 있으니, 현장에 가 보려면 새벽 4시에 일어나 준비해야 했어요. 그런데 이 분이 쉽게 인터뷰를 안 해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새벽 5시 기체조 수업을 세 번 함께 받은 뒤 네 번째에야 인터뷰할 수 있었죠. 그렇게 숙제를 해서 발표했어요.”
이삼하(60) 마을기자는 이렇게 떠올렸다. “만덕2동 주민센터에서 마을문고 봉사 활동을 2000년에 시작했습니다. 마을 어르신들께 공연 봉사 활동을 하는 어울림봉사단 회장도 맡고 있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마을기자 교육을 받게 됐는데, 우리 집에 가면 지금도 그 교육 받을 때 나온 원고며 교정지가 잔뜩 쌓여있습니다. 그걸 한 장도 안 버렸어요. 다 간직하고 있죠. 마을기자 교육이 주 2회 꼴로 저녁 시간대에 있었으니 저녁을 제대로 못 먹고 올 때도 많았어요. 그래서 강의실에 김밥 같은 간식을 가져다 놓고 먹어가며 수업을 받고는 했죠. ‘아이고, 최원준 교수님요! 우리 나이에는 당 떨어지면 공부가 안 돼예’ 하면서요.”
이삼하 마을기자는 “만덕에 시집 온 지 수십 년 됐고, 만덕에서 봉사활동 한 지도 20년 가까이 되는데, 마을기자가 되어 글을 쓰면서 더 많이 돌아보게 됐다. 남편과 그 시절 만덕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도 재미가 있었다. 마을기자 활동의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 난관의 연속, 그러나 길은 있다
‘만덕사람들’은 소박해 보이는 마을 잡지다. 첫 호가 ‘2017년 창간호’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것은 지난 3월이 되어서였다. 원래 지난해 연말까지 내려 했지만 발간이 늦어진 것인데, 이 사실 자체가 잡지를 펴내기까지 지극히 어려운 과정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지금은 부산 북구 평생학습사업소장으로 일하는 최기봉 당시 만덕2동장과 시인이며 음식문화 칼럼니스트인 최원준 씨의 의기투합이 중요한 계기가 됐다. 최기봉 소장은 출발 당시를 이렇게 떠올렸다. “2016년 부산 북구청이 마을자치 활동 공모사업을 했는데 여기에 만덕 마을에 관한 책을 내는 계획을 응모해 예산 500만 원을 확보했지요. 솜씨 좋은 외부 전문가들을 위촉해 ‘근사한’ 책을 내는 방법도 있었습니다. 그 또한 의미는 있겠지만 책 한 권 내는 일회성 사업에 그치고 우리 마을에는 오래 남고 지속되는 그 무엇이 없겠다는 데 생각이 미쳤지요. 평소 교류하던 최원준 시인과 상의했더니 같은 생각이더군요. 뜻이 잘 맞았죠.”
의기투합 뒤로 일사천리로 진행됐을 법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최원준 시인의 회고다. “마을기자 지망생을 모아 보니 신문을 만들거나 매체에 글을 써 본 경험이 없는, 말 그대로 ‘평범한’ 분들이었습니다. 이 분들을 위해 신문·잡지는 어떻게 만들며, 주제·소재는 어떻게 잡고, 인터뷰와 기사는 어떻게 쓰는지 ‘속성’으로 교육해야만 했지요.” ‘만덕사람들 마을기자 글쓰기 강의’가 시작됐다. 강의는 난관의 연속이었다. 발간 날짜는 다가오고 있었다.
만덕동은 마을잡지를 만들 필요성과 이를 추진할 좋은 환경이 있었다. 최원준 시인과 최기봉 소장의 설명이다. “만덕동은 만덕사지와 집성촌을 비롯해 오랜 역사를 잘 간직한 동네이면서 동시에 개발시대 정책이주민이 급속히 유입됐고, 1990년대 주택 200만 호 건립사업을 시작으로 신도시가 형성되면서 급변을 겪은 마을입니다. 그리고 2003년부터 해마다 주민들이 관의 지원 없이 ‘만덕사람들의 가을은행잎축제’를 큰 규모로 여는 등 자치 기반이 잘 형성돼 있습니다.”
역사가 길고, 생활문화 자산이 많으며, 외지에서 들어온 주민이 어우러져 사는 데다, 자치 기반도 있다? 이 모두가 마을잡지의 풍성한 취재 대상이었다.
■ “마을을 알고, 사랑하게 됐어요”
지난 4일 만덕2동 주민센터에서 ‘만덕사람들‘ 창간호를 만든 마을기자들을 만났다. 이 자리에는 민득분 단장과 이삼하 씨를 비롯해 김성연(31·광고업계 종사·사진 담당) 문난이(50·만덕고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주부) 서승주(44·만덕동 사회복지 공무원) 김후분(49·청록노인복지센터장) 이은숙(63·북구통장협의회장) 마을기자가 참석했다. 창간호에 기사를 쓴 류미진 박춘자 기자 그리고 후원한 신용우 주민자치위원장은 나오지 못했다. 책 발간에 이바지한 최원준 시인, 최기봉 소장, 이정임 만덕2동 총괄사무장, 박종운 만덕2동장도 자리를 함께했다.
‘기자들’이 모이자 이야기꽃이 폈다. “동네 호프집에서 최기봉 당시 동장님이 앉아 골똘히 고민하고 계시더라고요. 인사를 드렸더니 ‘마을잡지 만들려고 만덕동 사진을 찾는데 구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그래서 광고 사진도 찍고 사진 작업도 하는 제가 몇 장 보여드렸더니 ‘좋다’면서 마을기자 활동을 하자시는 겁니다. 그래서 덜컥.”(김성연) “학부모로서 만덕고 매점을 더 바람직하게 꾸리자는 취지의 만덕고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어요. 다른 활동에도 관심이 생기던 차에 마을기자가 됐습니다. 마을 일에는 큰 관심이 없었는데 기사를 쓰면서 ‘녹원집’이 만덕동 오리마을 원조인지도 처음 알았고, 천사 같은 동네 사람들이 많구나 느끼면서 애정이 생겼죠”(문난이) “사회복지 일을 하는 터라 마을기자가 되면 도움이 되겠지 싶어 동참했는데 정말로 그랬어요. 보람도 컸고요.”(김후분 서승주) “만덕동에 28년째 살고 있고 통장도 오래 했지요. 만덕동에 45년 살면서 장아찌를 만들어 파는 정양자 씨 인터뷰를 ‘내 인생 장아찌’라는 제목으로 실었습니다. 책이 나오니 정말 뿌듯하더군요.”(이은숙)
최기봉 소장과 최원준 시인은 “마을잡지나 마을신문이 꽤 있지만, ‘만덕사람들’처럼 주민이 직접 기자가 되어 기획하고 취재하고 기사 쓰고 출판 작업까지 함께하는 사례는 드물다”고 했다. 부산 문화정책의 틀은 앞으로 ‘주민이 주체가 되는 문화 활동’ ‘생활문화 활동 활성화’로 가야 한다. 그 길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만덕사람들’의 마을기자들 활약은 좋은 사례를 보여준다.
듣고 있던 박종운 동장이 말했다. “오늘 이렇게 마을기자분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오일장에 온 듯 흥미롭고 친근합니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자치행정의 한 방향이란 생각이 듭니다. ‘만덕사람들’이 꾸준히 잘 나오도록 도울 방법을 찾아야겠군요.”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