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지금 심각한 ‘갑질 중병’을 앓고 있고, 다양한 진단과 처방이 내려지고 있다. 그럼에도 그것이 쉽게 치유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사실 우리는 이렇게 이슈화된 문제만을 다스리는 대증요법이 임시처방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허다한 예를 통해 확인되는 것처럼 수면 위로 떠오른 사회문제는 항상 구조적 문제, 인간 본질적 문제에 뿌리를 두기 때문이다. 병은 모름지기 뿌리를 다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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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8일 검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갑질’이 발단이 돼 조 회장 일가 4명이 수사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
불교에서는 갑질의 뿌리를 탐욕과 오만과 어리석음으로 본다. 그리고 그것을 더 깊이 파고들어가 보면 무명이라는 본래 뿌리가 발견될 것이라 예고한다. 이 뿌리의 핵심은 자아의 실체성에 대한 근거 없는 확신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우리가 자아의 진지로 삼는 이 몸과 마음과 환경은 얼마나 부실하기 짝이 없는 건축물인가. 그것은 훅 불면 날아가 버리는 ‘돼지 삼형제’의 풀집이다. 몸과 마음의 부실성은 순간순간 죽음을 대면하고 살아가는 험악한 이 시대에 논증의 필요조차 없는 진실이다. 재물과 권세 또한 그렇다. 3대 가는 부자 없고, 10년 가는 권력 없다.
불교적 문제의식은 더 심각하다. 튼튼한 몸과 아름다운 용모와 총명한 머리, 넘치는 재물과 권세는 누구나 소망하는 바이다. 그런데 이것은 영혼적 대자유로 나아가는 길에 장애가 된다. 그에 근거하여 자아와 대상에 대한 집착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옛날 이야기가 하나 있다. 세상과 인연이 다한 수행자에게 저승사자가 찾아왔다. 수행자는 수행이 깊어 자아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은 지 오래였다. 저승사자는 공기처럼 가벼워진 수행자의 영혼을 찾을 수 없었다. 그 때 저승사자의 눈에 반지르르하게 잘 닦인 발우가 들어왔다. 수행자가 생전에 아끼던 물건이었다. 저승사자는 기지를 발휘해 그것을 발로 찼다. 발우가 댕그렁! 소리를 내며 굴러 떨어지는 순간, 수행자에게 발우를 아끼는 생각이 일어났다. 공기처럼 가볍던 수행자의 영혼에 자아의 무게가 더해지고 ‘나’의 모양이 드러났다. 저승사자는 수행자를 잡아 버렸다. 수행자는 저승사자와 거래한다. ‘잠깐만 시간을 달라, 해결 못한 일이 남아 있는데 그 일만 처리하고 순순히 따라가겠다.’ 풀려난 수행자는 자신이 아끼던 발우를 조각내 버렸다. 그리하여 수행자는 자아의 마지막 남은 집착을 박살 내고 만사만물에 녹아들어 모든 현장에서 부처의 춤을 추는 자리로 돌아갔다. 저승사자는 빈손이었다.
세상과 개인의 제반 문제와 구속은 나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겨자씨만큼의 마지막 집착조차 내려놓는 철저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다만 이 시점에서 얼마간 타협적인 생각이 허용될 수 있다. 자아에 대한 집착을 철저히 박살 내는 일은 차치하고라도 우리에게 길은 여럿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 각자 타인을 의지하여 서 있다는 사실, 각자 가진 지금 이만큼만이라도 남과 함께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기도와 선행의 끝에 모두와 함께하기를 기원하는 회향을 한다. 내가 얻은 이 공덕을 모두에게 돌려, 나와 모든 이가 행복한 대자유의 국토에 들어가기를, 깨달음의 빛을 함께 보고 그 자체가 되기를.
동의대 교양대학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