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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문화현장 <51> 시사만화 ‘전설’ 안기태 화백, 돌아온 주점 ‘강나루’ 전시회 여는 사연

원로 시사만화가, 점점 잊히는 문화사랑방 위해 붓과 펜을 들다

  •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
  •  |   입력 : 2018-07-26 19:47:52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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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법을 약간 쓰면, 이렇다. 풍류(風流)는 우리 인생의 ‘목적’이다. 수단이나 장식이 아니라, 그 자체가 삶의 내면을 윤택하고 그윽하게 해주는 하나의 경지라는 뜻이다.

안기태 화백
여기, 풍류의 그림이 있다. 76세 현역 시사만화가이자 한국 시사만화계의 ‘전설’로 꼽히는 안기태 화백이 그렸다. 오래 사귄 가까운 벗이 소박한 술상을 가운데 놓고 편안한 얼굴로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한 남성은 저고리를 벗어 ‘옷걸이’에 걸어놨다. 그 옷걸이가 풍류의 걸작을 완성한다. 옷걸이는 밤하늘에 뜬 한가한 초승달이다. “나는 달이 좋아요. 내가 그린 카툰에는 ‘달 카툰’이 많죠. 한 40~40점 될 거라. 달 카툰만 갖고 전시회를 열 수 있을 정도지요.”(안기태 화백) 풍류를 그윽하고 재치있게 표현한 이라면 그의 삶 또한 부드럽고 여유가 만만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안기태 화백의 45년 시사만화 인생은 치열했다.


# “일인오역으로 준비한 전시입니다”

그를 만난 곳은 지난 10일 부산 중구 동광동 부산영화체험박물관 앞 골목에 있는 유서 깊은 작은 주점 강나루였다. 그는 탁자 네댓 개뿐인 작은 주점 강나루에서 이달 초부터 작은 전시회를 시작했다. 전시회 제목은 ‘시(詩)도 아닌 것이 전(展)’. 안 화백이 손수 그린 간결한 그림에 직접 쓴 짤막한 글귀를 적은 작품 29점을 주점의 벽에 내걸었다. 노화백의 시화전인 셈이다. “액자도 내가 직접 사다가, 접착제 발라, 벽에 붙이고…. 이 전시 하느라 일인오역을 했네요.” 그는 기획부터 실행까지 스스로 모두 맡은 이번 전시를 “강나루가 다시 문을 연 것을 조금이라도 더 알리고 싶은 마음, 이 골목이 장사가 조금이나마 더 잘 됐으면 하는 바람”에 마련했다고 말했다. 취재를 간 날, 마침 안 화백의 마산고 동기 10여 명이 전시를 축하하러 강나루로 몰려와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

이 독특한 작은 전시를 설명하려면 ‘돌아온 강나루’ 이야기를 해야 한다. 이는 실은 부산의 문화계 소식이자 예술계에 소문 난 ‘오래 사귄 가까운 벗’끼리의 도타운 우정을 보여주는 한 장면이기 때문이다. 강나루는 부산 시단의 원로 이상개 시인과 아내 목경희 여사(부산 문단에서는 목 여사님으로 널리 통한다)가 1996년 7월에 문을 열었다.


# 강나루 주점 새로 문 연 사연

이 골목의 주점 계림과 양산박,근처의 부산포와 다락방 등과 함께 강나루는 중앙동·동광동, 뭉뚱그려서 부산의 원도심에 자리한 부산 문화예술계 사랑방 구실을 톡톡히 했다. 그러다 강나루가 세 들어 있던 건물이 철거되고, 새로운 건물을 올린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그때 많은 문화인의 가슴이 또 철렁했다. “아! 강나루마저 없어지는구나…” 하는 생각을 다들 문득 했던 것이다.

그런데 강나루의 사연과 가치를 알던 건물주의 배려 등으로 ‘새 건물이 완공되면 강나루는 새 건물에 입주해 계속 장사를 할 수 있게 됐다더라’는 소식이 이어 날아들었다. 많은 문화인이 이번에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는데, 대신 강나루는 1년 넘은 공사 기간 휴업해야 했다.

드디어 새 건물이 서고 지난달 문을 열었는데, 이번엔 ‘잊혀짐’이라는 장벽이 나타났다. 그 사이 문화인들의 생활과 음주와 풍류의 양상도 완연히 달라져 술자리 모임 자체가 줄고, 그나마 1년 넘게 쉰 강나루의 존재감은 미약해졌다.


# 현역 시사만화가로서 긍지

안기태 화백(오른쪽)이 지난 10일 강나루를 찾은 고교 친구들에게 전시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서정빈 기자 photobin@kookje.co.kr
한국 시사만화계의 거장이자 이상개 시인의 마산중·마산고 동창이며 평생 지기이며 강나루가 1996년 문을 연 때부터 오랜 인연을 가꾼 안기태 화백이 나설 차례가 왔다. 안 화백은 “1년 만에 새로 문을 열었는데, 와서 보니 손님도 너무 안 보이고 분위기도 예전 같지 못해 도움이 될 길을 궁리하다 내 작품이라도 벽에 붙여 보자 생각했다”며 ‘시도 아닌 것이 전’ 배경을 밝혔다. 어찌 보면 작은 일이다. 하지만 문화와 예술이 ‘작은 기미’ 속에 담긴 의미를 잡아채는 일이라 할 때, 노예술가들의 우정이 빛나는 반짝반짝 문화현장이 아닐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렇게 마련된 ‘안기태 화백-시도 아닌 것이 전’ 취재에서 한국 시사만화의 산 증인이자 한국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찾기 힘들 ‘76세 현역 시사만화가’의 최근 이야기와 생각도 들어야 했다.


# “자꾸 그리는 수밖에 없지요”

안 화백은 1973년 11월 7일부터 국제신문(당시 국제신보)에 시사만화 ‘피라미(사진)’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의 시사만화는 날카로운데 정감 있고, 만화답게 엉뚱하고, 시사만화답게 비판적이며, 해학과 유머가 있다. 하지만 그에게는 하루하루 마감 앞에서 피 말리는 긴장의 연속. “군부독재정권이 국제신문을 폐간한 뒤 부산일보로 옮겨 ‘어리벙씨’를 그리다(‘어리벙씨’ 인기도 대단했다)가 국제신문 복간 후 돌아와 1990년 9월 1일 ‘피라미 선생’ 연재를 재개했죠. 시사만화가 방을 따로 마련해주겠다고 했는데, 제가 거절했어요. 기자들이 뛰어다니는 편집국에 있어야 감각을 유지하고 생생한 정보와 자료를 얻을 수 있으니까.”

가시밭길도 맨발로 통과해야 했다. 1980년 8월 16일 군부독재정권은 그를 정권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강제로 해직했다. 그때 해직된 전국 언론인 800여 명 가운데 시사만화가는 그가 유일했다고. 노태우 정권 초기에는 정권에 비판적인 시사만화를 그렸다가 한 밤에 테러를 당해 한 달 넘게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2003년 4월 30일 자 국제신문에 ‘피라미 선생’ 연재를 9201회로 끝낸 뒤로도 그는 후진을 양성하고 시사만화를 발표하며 시화를 그리는 일을 꾸준히 한다. 부산 만화 역사 정리 등에도 관심이 높은 그는 “부산 출신 만화가 박봉성을 기념하는 일 등을 생각한다”며 문화자산으로서 만화의 가치를 강조했다. 후진을 위해서는 이렇게 강조했다. “자꾸 그리는 수밖에 없어요. 끝없는 노력!” 전시는 다음 달 말까지.

>> 안기태 화백은

-1942년 경남 마산 출생. 마산고. 1973년 11월부터 국제신문에 시사만화 ‘피라미’ 연재. 1980년 8월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국제신문 시사만화가에서 강제 해직당함. 1981년 3월부터 부산일보에 시사만화 ‘어리벙씨’ 연재 시작. 1990년 10월 국제신문 시사만화가로 복직. ‘피라미 선생’ 연재 시작. 2002년 퇴임 후에도 계속 연재. 2003년 4월 30일 9201회를 끝으로 연재를 마침.

-그간 대동일보 경북일보 등 일간지 주간지 월간지 등 30여 곳에 만화 연재함. 현재 일간 리더스경제 등 일간지, 주간지, 월간지 등 6, 7곳에 만화 연재 중.

-부산예술대 겸임교수, 동아대 출강 등으로 후진 양성.

-현 부산카툰클럽 회장·한국시사만화가회 부회장, 전 영남언론예술기자회장.

-봉생문화상 수상.

-부산카툰클럽 전시회, 부산 APEC 참가 각국 정상 캐리커처전, 한·일 공동 월드컵 개최 기념 카툰전, 해양수산부 부활전 등 20여 차례 전시. 안기태 카툰 초대전, ‘시도 아닌 것이’ 전시 등 시화전, 단체전 등 참가 다수.

-저서 ‘시사만화 모음집 피라미 선생 ’ ‘부산 만화 65년사’.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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