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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40> 김용권 시인의 시집 ‘무척’

세상을 본다는 건, 그속에 살아가는 사람을 보는 거죠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8-06 19:00:45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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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팔소리가 들리던 산동네 마을
- 현실의 무게를 버티던 주민들
- 아버지를 따라간 청과 경매시장
- 손짓에 결정되던 노동과 땀의 값

- 그때의 기억이 사람을 향하게 해
- 어떤 일을 하는지 어디에 있는지
- 별처럼 빛나는 삶을 먼저 생각해

새벽 여명이 밝을 무렵이면 기상나팔소리에 잠을 깨고 취침나팔에 잘 준비를 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홀로 고향을 떠나와 남구 문현동 산동네 마을에서 자취를 하면서 살았던 김용권 시인에게는 그 나팔소리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부산조병창의 나팔 소리가 산동네까지 들려왔어요. 나팔소리가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해주었습니다. 제게는 사람들을 일으키고, 일터로 학교로 보내고, 잠재우는 삶의 신호처럼 들렸지요. 어떤 사람에게는 그 나팔소리가 삶의 전선으로 내모는 소리도 들리기도 했겠죠. 지금은 부산조병창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지만, 산동네 사람들은 삶의 애환을 그 나팔소리에 실어 보내며 살았습니다. 하루를 전 생애처럼 열심히 살아야 가족을 건사할 수 있었던 엄중한 삶의 현실, 그 무거운 시간들을 버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지요. 제게는 조병창 나팔소리가 그렇게 들렸습니다. ‘사람의 소리’였습니다.” 취침나팔 소리가 들려 올 때는 고향의 어머니와 어린 동생들을 생각하며 혼자서 시를 썼던 그는 훗날 시인이 되었다. 그는 나팔소리를 잊지 않았다. 인터넷 닉네임을 ‘문현동 나팔꽃’으로 사용하고 있다. ‘나팔꽃’은 식물의 꽃이 아니라, 새벽부터 피어나는 ‘소리의 꽃’이고 ‘사람의 꽃’이었다. 김용권 시인을 김해천문대에서 만났다.
김해천문대에서 만난 김용권 시인. 그는 최근 펴낸 시집 ‘무척’에 20년째 살고 있는 경남 김해의 모습을 많이 담았다.
■별 보러 가는 길, 사람 보러 가는 길

김용권 시인은 1962년 경남 창녕군 남지읍에서 태어났다. 2009년 ‘서정과 현실’로 등단했다. 들불문학제 대상, 제2회 박재삼 사천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 ‘수지도를 읽다’ ‘무척’을 펴냈다. ‘시산맥 영남시’ ‘석필’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그는 인터뷰를 약속하며, 김해천문대에서 만나자고 했다. 별을 보러 가는 길이 사람을 만나러 가는 것이라 했다. “천문대는 천체와 외계를 보려는 사람의 눈이 모이는 곳이죠. 달리 보면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사람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김해천문대는 분산 정상에 있다. 김해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김용권 시인은 별을 보는 천문대에서 김해를 바라보며,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생각한다고 했다. 폭염 속에서도 땀 흘리며 등산로를 따라 천문대까지 올라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김해 시내를 내려 보았다. 한낮이지만, 거기에도 수많은 사람의 별들이 있었다. 그가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저곳에 있습니다.”

그는 고등학교 때 공부를 위해 혼자 부산에서 살았다. “그 전에도 아버지를 따라 부산에 여러 번 갔습니다. 아버지가 농사지은 수박을 트럭에 가득 싣고 청과 경매시장에 갔어요. 같은 상품이 많이 들어오면 최상품의 수박이라도 생각했던 가격에 미치지 못하는 일을 겪고 탄식하시던 아버지를 바로 옆에서 지켜봐야 했습니다. 그래서 경매 중 사람들의 손짓이 얼마나 두려웠는지 몰라요. 저 재빠른 손짓으로 땅을 일구며 살아 온 아버지의 노동 값, 사람들의 땀의 값이 결정되는구나, 저 손짓이 삶의 길이고 지도구나 생각했지요. 값을 결정짓는 손가락이 칼이구나 하고 느낀 그 때의 기억이 담긴 것이 첫 시집 ‘수지도를 읽다’입니다.”

경매시장과 나팔소리의 기억은 그에게 어떤 순간에도 항상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을 가지게 했다. 어떤 일을 하고 있나, 어떤 삶을 살고 있나, 사람은 그 안에서 어디에 있나, 늘 생각하게 했다. “산다는 건 그 사람이 일을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 생각으로 세상을 봤던 것 같아요. 2004년에 마산창원노동연합회가 주관하는 들불문학제에서 대상을 받았어요. 노동자의 삶과 현실에 대한 시였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제가 어떤 시를 써나갈 것인지 방향을 잡아주었던 것 같아요.” 그의 시가 처음에는 서정시로 읽히지만, 곱씹어 읽었을 때 그 안에 사람이, 저항이 느껴지는 까닭이 여기에 있었다.
■사진을 찍는 눈, 시를 쓰는 마음

무척 - 김용권·2017·천년의 시작
그가 고등학교 때부터 줄곧 시를 써온 것은 아니었다. 20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그는 사진을 찍고 있다. 그림을 그리는 아내와 결혼을 할 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자’는 약속을 했던 그는 전국을 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다. “정식으로 사진을 공부한 건 아니지만, 사진작가와 공동작업도 했어요. 고 최민식 선생님과 함께 전시회를 한 적도 있어요. 재미있게, 열심히 작업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턴가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낀 이미지를 사진이 다 담아내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왜곡된 이미지가 보였어요. 그 이미지를 다시 살려 내는 것이 시를 쓰는 일이었습니다. 사진을 찍었던 경험과 기억이 시 쓰기의 바탕이 되었고, 지금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무언가를 포착하고 부각하는 것, 처음 와 닿았던 이미지를 시로 형상화하는 것은 연결되어 있어요.”

20년째 김해에서 살고 있는 그는 시집 ‘무척’에 김해의 모습을 많이 담았다. “시집 제목에 무척산의 ‘무척’을 붙였어요. 제가 아는 김해를 쓴 시들도 있습니다.” ‘한림정역’ ‘김해천문대’ ‘못안마을’ ‘무척’ ‘유공정’, ‘연화사 미륵불’ 등은 김해를 사랑하는 그의 마음을 담고 있다.

‘비는 칼국수 집으로 내린다’는 김해 사람들에게는 고향의 맛이 된 동상동 칼국수 이야기를 담았다. “동상동 칼국수 집으로 비는 내리네/ (중략) 젓가락에 감기는 빛나는 노동// 일 없는 사람들이 비의 등을 두드리네/ 쉬는 날, 영락없이 비는 내리고// 비의 걸음은 나보다 빨라서/칼국수 집을 서명 없이 떠나가네” 비 오는 날 동상동 칼국수로 몸도 마음도 든든히 채우고, ‘빛나는 노동’으로 다시 들어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 속에 우리가 있다.

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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