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 열이 나 조퇴했다는 소식듣고
- 부랴부랴 돌봐줄 사람 찾다 연락닿아
- 서툴지만 최선 다하는 모습에 공감
- 조건따른 지원보다 육아 공공성 필요
아내의 표현을 빌리면 그나마 6대4 정도로 육아를 하는 남편인데 그중에서도 책을 읽어주거나 아이에 대해 기록하는 일은 나의 몫이다. SNS에 종종 아이의 성장 에피소드를 적어 올리다 보니 “육아맘끼리 소통하자”며 친구를 맺자는 사람도 종종 있다. 아내가 이런 댓글을 보았다면 또 밖에서 혼자 아이 다 키우는 척하고 다닌다며 욕을 한 바가지 쏟았을 테다. 에피소드의 제목은 “#딸아이의언어생활탐구”이다. 두 달 지나면 1㎝씩 자라있는 육체적 성장만큼이나 만 48개월 동안 옹알이에서 시작해 이제는 아빠를 들었다 놓는 지경에 이른 언어적 성장 또한 경이롭고 재밌어서 계속 기록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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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책 작가 백희나의 작품 ‘이상한 엄마’에 실린 독특한 그림은 색다른 분위기를 내며 책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책읽는곰 제공 |
얼마 전 어린이집 통학차량에서 목숨을 잃은 아이의 뉴스를 보다가 조심해야겠다고 싶어 던진 말에 아이가 자기는 죽기 싫다며 대성통곡하는 바람에 크게 당황했다. 달래느라 아이들을 지켜주는 삼신할머니 이야기를 꺼냈지만 무엇이든지 “왜?”라고 묻는 5살 아이의 덫에서 헤어나기가 또 쉽지 않았다. 삼신할머니를 설명하느라 도깨비, 마법사를 끌어들여도 여의치 않자 아이랑 가끔 들렀던 수영사적공원의 500년 된 천연기념물 푸조나무 앞에서 종종 소원 빌던 것이 생각나서 이야기했다. “그 할머니 나무 있지? 가끔 가서 소원 빌었잖아? 그 할머니 나무도 나무에서 아이들이 떨어져도 안 다치게 해줬대. 삼신할머니도 비슷할걸. 아이들 안 다치게 하고 잘 보살펴주거든.”
그 말을 듣자마자 아이가 말한다. “아~! 이상한 엄마 말하는구나. 우리 집에 책 있잖아 이상한 엄마. 거기서 구름 타고 와서 아이를 돌봐줬잖아?” 몇 초간 말을 잃고 아이의 언어적 성장에 감탄한다. 만 4년도 안 된 아이가 이미 듣고 보고 경험한 밑천 속에 삼신할머니라는 어려운 개념이 있다는 사실도, 그 개념을 단박에 구체적인 캐릭터와 연결해내는 힘도 놀랍다.
그림책 ‘이상한 엄마’는 아이들도 좋아하지만 엄마들이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날 아이가 열이 나서 조퇴를 했다는 연락을 받은 엄마는 직장에서 부랴부랴 아이 돌봐줄 사람을 찾느라 전화를 돌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이상한 엄마에게 전화가 (잘못) 연결되고 구름을 타고 내려온 이상한 엄마는 요술을 부리듯 달걀로 요리를 하면서 방을 따뜻하게 하고, 구름을 만들고 비를 뿌려 습도를 높이기도 하면서 아이를 돌봐준다. 걱정스런 마음으로 퇴근하고 돌아온 엄마는 포근한 구름 위에 잠든 아이를 보고 안도한다.
‘이상한 엄마’는 딸아이의 통찰처럼 삼신할머니 같다. 조퇴해서 홀로 집에 온 아이를 서툴지만 정성껏 보살필 뿐 아니라, 아이로 인해 맘 졸이는 엄마에게도 포근한 존재다. 삼신할머니 앞에서는 아이뿐 아니라 엄마도 마음을 다해 점지했던 꼬물거리던 생명일 테다. 하지만 육아라는 미션을 사회가 아닌 가정에 대부분 맡기는 이 세계에서는 많은 책임과 죄책감이 가정으로, 특히 엄마에게로 떠넘겨진다. 요리 솜씨도 시원찮고 입고 왔던 옷도 두고 갈 정도로 칠칠맞지 못한 ‘이상한 엄마’에게 엄마들이 위로받는 이유는 아이로 인해 고군분투해온 스스로의 시간이 선명하고, 마음 한편에 걱정을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비단 엄마들뿐 아니라 가족에게는 가까이에서 손 내밀면 잡아줄 비빌 언덕이 필요하다. 조건에 따라 지원하는 소극적인 육아 정책이 아니라 아이를 낳고 기르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에 대한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이 곧 비빌 언덕을 만드는 일이자 삼신을 소환해내는 일일 것이다.
기획자·청년정책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