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면 사람이냐 사람이라야 사람이지!” 이는 내가 논산 훈련소에서 훈련받을 때 한 목사님께서 연병장에 모인 훈련병들에게 피를 토하듯 반복적으로 하신 말씀이다. 40년도 더 지난 세월이기에 상세한 내용을 기억할 수는 없지만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말을 하려던 것은 분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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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질 리우에 있는 예수상. 국제신문 DB |
사람답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사람들은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지”라고 말하기도 하고 “사람이니까 그래서는 안 되지”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 그럴 수 있고 어떤 경우에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일까? 너무 자의적이고 애매모호하다. 그러면 인간다움의 확실한 기준은 무엇일까?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은 참 하느님이요, 참 인간이라고 믿고 있다. 이는 가톨릭뿐 아니라 개신교와 정교회도 마찬가지다. 설명하기가 쉽지 않은 믿음의 내용이지만, 이 믿음이 확정되기까지는 긴 세월이 걸렸다. 그사이에 많은 이단도 생겨났다. 유대교를 믿는 히브리인들의 문화에서 생겨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의 내용이 그리스 문화 세계에 전파되면서 그리스철학적으로 믿음을 설명하는 데 많은 논쟁이 있었다. 또 그리스철학적 개념으로 예수님 안에는 천주성과 인성이 완전히 결합되어 있다는 선언을 교회가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이를 어떻게 설명하는가? 아주 간단하다. 예수님에게서 하느님 아버지를 본다는 것이다. “필립보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하여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뵌 것이다.”(요한 14, 8-19)
이렇게 예수님 안에서 참 하느님을 보는 것처럼 예수님은 참 인간이라는 고백을 하면서 예수님 안에서 참된 인간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이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인간다움을 말할 때 예수님을 빼고 말을 할 수가 없게 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고 한다면 참 인간이신 예수님을 보아야 하고 그 분의 가르침을 들으려 해야 하며 그 분의 모범을 따르려고 노력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십자가상 죽음을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준 모범은 사랑과 겸손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이며, 지존하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시지만 우리와 꼭 같은 인간이 되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신을 낮추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려는 사람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과 겸손을 배우고 익히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나가야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이다. 이러한 노력 가운데 신앙인의 인격이 자라나는 만큼 인간답게 사는 삶도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신앙인의 삶은 참 인간다운 삶의 길이라고 할 것이다.
부산가톨릭평화방송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