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은 수묵 한 폭
들창에 그려 놓고
바람은 부산하게
뜨락을 서성이네
새빨간
풀벌레 울음
우수수 지는 이 밤
자꾸만 자라나는
생각의 가지 끝에
어설피 홀로 앉아
지새는 하얀 불면
아침이
깨어나도록
떠날 줄을 모르네
<시작노트>
유례없이 무덥고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던 그 지겨운 여름도 가고 결실의 계절, 수확의 계절, 사색의 계절 등등 온갖 미사여구로도 표현이 모자란 청명가절 가을이 왔다. 이때쯤 여행을 가거나 무슨 일로 가족과 떨어져 달빛 곱게 스미는 한적한 객창에라도 들어 가랑잎과 함께 추락하는 바람 소리와 지치지도 않고 쉼 없이 울어대는 귀뚜라미 소리에 온갖 생각을 더하여 뒤척이다가 꼬박 밤을 새워도 가을은 가을이라서 좋다.
<약력>
1984년 ‘시조문학’ 천료. 성파시조문학상, 실상문학상 등 수상. 시조집 ‘청산의 호랑나비’ 외 6권, 동시조집 ‘깨금발 모둠발’ 외 2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