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개막작 리뷰] 경계인 된 탈북여성의 삶, 식탁·담배·피 묻은 손 통해 들춰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10-04 19:45:39
  •  |  본지 4면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14년 만에 만난 엄마(이나영)와 아들 젠첸(장동윤)이 아침밥을 먹는다. 엄마는 아들이 어렸을 때 된장찌개를 좋아했다면서 찌개를 밥에 얹어주고 아들은 된장찌개를 싫어한다고 수저를 놓는다. ‘뷰티풀 데이즈’에 등장하는 첫 번째 식사 장면이다. 식사 장면이 반복될 때 과거와 현재, 미래에 따른 서사적 구조가 형성됨과 동시에 가족 구성원의 변화가 점층적으로 드러난다. 가장 먼저 엄마가 식탁에서 떠나고, 병든 아버지(오광록)가 사라짐으로 인해 가족에게 오랜 시간 고여 있는 슬픔과 그리움, 어둑한 공간을 지배하는 부재가 부각된다. 고요하지만, 잔혹할 만큼 차갑게 잠식해 들어오는 묵묵함은 이 영화가 관객과 마주하는 첫 번째 표정이 된다. 식탁은 반찬투정 하던 아이가 성인이 되고, 북한-중국-한국으로 떠도는 엄마의 삶이 고여 있는 사물이자, 비록 돈을 주고 산 아내지만 그녀를 사랑하고 포용하던 아버지의 회한이 짙어지거나 엄마의 새로운 가족이 젠첸과 마주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뷰티풀 데이즈’를 지배하는 적막함과 건조함, 무심한 시선과 제스처에 감춰진 감정과 조우하도록 하는 또 다른 장치는 담배이다. 영화 오프닝에서 엄마는 담배를 손에 들고 피폐한 표정을 짓는다. 이어지는 쇼트에서 아버지는 엄마의 사진과 주소를 건네면서 담배를 피우고, 아들은 바깥으로 나와 골목에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운다. 담배는 죽어버린 시간, 버려진 삶과 마주한 그들 각자의 숨죽인 탄식이나 다름없다. 뿌옇게 흐려지는 얼굴, 덩달아 희미해지는 공간, 머금었다 흐트러지는 연기처럼 이들의 여정도 어디에서 끝을 맺을지, 정말 아름답기는 한 것인지 알 수 없기에 그들의 과묵함과 무표정마저 통증처럼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피 묻은 손이다. 엄마가 나쁜 남자와 산다고 생각한 아들은 그의 뒤를 쫓아 으슥한 골목에서 각목을 휘두르고, 아내를 괴롭히는 브로커를 찾아간 남편은 그의 집 입구에서 벽돌을 내리친다. 아들을 지키기 위해 그녀는 브로커를 살해한다. 이들이 저지른 폭행의 기억과 손에 묻은 피는 아무리 닦아내도 그들 삶에 얼룩처럼 남을 것이고, 그들은 어두운 비밀을 끝끝내 떨쳐내지 못한 채 남은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모른다.

윤재호 감독은 물끄러미 응시하는 눈동자의 흔들림, 사소한 사물, 반복되고 변주되는 행동, 흐리고 어두운 풍경, 인물을 가두는 것처럼 프레임을 침범하는 인공적인 조명,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삶을 반영하듯 기울어진 앵글을 통해 겉으로 쉽게 드러나지 않는 인물의 감정을 촉각적으로 전달한다. 그리고 힘겹게 떠도는 시간 동안 표정을 잃어버린 인물,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될수록 가중되는 고통을 떠안아야 하는 인물에게서 떠들썩한 분노와 원망, 응징과 복수, 질책과 죄의식의 표정을 걷어낸다. 대신 떠나간 가족 구성원을 어떻게 용서하고 받아들일 것인지, 미약하나마 화해하는 손길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들의 모습이 사라진 후에도 들려오는 달그락거리는 소리는 이 밥상이 연약하고 위태로울지언정 쉽게 깨지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처럼 다가온다. 

박인호 영화평론가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건강한 부산을 위한 시민행동 프로젝트
많이 본 뉴스 RSS
  • 종합

  • 정치

  • 경제

  • 사회

  • 스포츠

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김승강 시인의 시집 ‘봄날의 라디오’
최원준의 그 고장 소울푸드
현풍 수구레국밥
국제시단 [전체보기]
과일나무 아래 /강미정
가을밤 /박필상
글 한 줄 그림 한 장 [전체보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복식부기, 박영진가 장부를 읽는다
백제는 만월이요, 신라는 초승달이라
리뷰 [전체보기]
경계인 된 탈북여성의 삶, 식탁·담배·피 묻은 손 통해 들춰
방송가 [전체보기]
나누고 보태 한 끼 전하는 ‘푸드뱅크’ 사람들
예술의 영혼이 깃든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새 책 [전체보기]
하루키를 읽다가 술집으로(조승원 지음) 外
문명의 요람 아프리카를 가다 1, 2 外
신간 돋보기 [전체보기]
중국 전쟁영웅이 쓴 반성문
귀부인 수발 들어준 기사 이야기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따스한 햇살-김정대 作
The Echo of love-여홍부 作
어린이책동산 [전체보기]
만화로 익히는 IoT·초연결사회 外
공룡에 관한 수많은 질문과 대답 外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목탁 /전병태
강가에서 /정해원
이기섭 8단의 토요바둑이야기 [전체보기]
제29기 중국 명인전 도전1국
2017 엠디엠 여자바둑리그 5라운드
이원 기자의 Ent 프리즘 [전체보기]
부산국제영화제의 그리운 것들
물괴·협상·안시성·명당…추석 극장가의 승자는?
조재휘의 시네필 [전체보기]
삶이라는 궤적…잠시 탈선해도 괜찮을까
스물세 살 BIFF(부산국제영화제), 좀 더 넓은 부산공간 끌어안아야
책 읽어주는 남자 [전체보기]
오빠와 누이가 공생하는 페미니즘 /정광모
수십 년 삶의 흔적을 쉽고 담백한 언어로 녹인 시인 /박진명
책 읽어주는 여자 [전체보기]
“함박꽃 할머니 돌아 가셨다냥” 동네 길냥이들의 조문 대작전 /안덕자
우리는 성폭력 피해자를 어떤 시선으로 보고 있나 /강이라
현장 톡·톡 [전체보기]
냉전부터 심리·정치적 분리까지…현대사회의 분열을 이야기하다
초연결시대 광고마케팅 화두는 채널확대·기술협업
BIFF 리뷰 [전체보기]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
퍼스트맨
BIFF 인터뷰 [전체보기]
‘렛미폴’ 조포니아손 감독, 마약중독에 대한 인간적 접근…“그들도 결국 평범한 사람이에요”
감독 박배일 '국도예술관·사드 들어선 성주…부산을, 지역을 담담히 담아내다'
BIFF 피플 [전체보기]
‘국화와 단두대’ 주연 배우 키류 마이·칸 하나에
제이슨 블룸
BIFF 현장 [전체보기]
10분짜리 가상현실…360도 시야가 트이면 영화가 현실이 된다
BIFF 화제작 [전체보기]
‘안녕, 티라노’ 고기 안 먹는 육식공룡과 날지 못하는 익룡의 여행
묘수풀이 - [전체보기]
묘수풀이 - 2018년 10월 16일
묘수풀이 - 2018년 10월 15일
오늘의 BIFF [전체보기]
오늘의 BIFF - 10월 9일
오늘의 BIFF - 10월 8일
이기섭 8단의 바둑칼럼 [전체보기]
제 5회 대주배 남녀 프로시니어 최강자전
제 5회 대주배 남녀 프로시니어 최강자전
정천구의 도덕경…민주주의의 길 [전체보기]
未知其名
天人感應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