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부장제 사회서 기득권 누린 남성
- 한편으로는 ‘남성다움’의 족쇄 갇혀
- 여성 해방 이뤄야 남성 해방도 가능
- 남녀, 소통의 페미니즘 함께 이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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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부산의 한 대학에 붙은,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내용의 대자보가 누군가의 손에 훼손돼 있다.
국제신문 DB |
책 제목이 역설적이다.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이란, 평소에는 페미니즘에 별 관심 없다가 여성들이 과격한 방법을 채택하자 ‘그런 페미니즘은 이 오빠들이 허락할 수 없다’는 식으로 반응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이런 유형의 오빠에는 자칭 타칭 ‘진보 인사’도 많다. 진보 운동권에서 페미니즘과 여성 인권은 존중해야 할 마땅한 의제지만, 조직의 안전과 번영에 해가 된다면 가차 없이 내던져도 좋을 하찮은 것이었다. 해일이 일고 있는데 조개를 줍고 있어서야 되겠냐는 논리였다.
오빠들은 이런 개그도 한다. 나는 페미니즘에 반대하지 않아. 가짜 페미니즘에 반대할 뿐이야. 오빠가 말하는 ‘가짜 페미니즘’이란 무엇일까? 반만년 역사에 너무나도 공고해진 남성 중심 위계와 권위에 도전하는 페미니즘이 아닐까?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오랜 기간 억눌려왔다. 올해 출산율이 1명에도 못 미치는 여성의 출산 파업은 여성이 받는 사회·경제 대우와 무관하지 않다. 2018년 검찰이 금융권 채용비리를 조사하니 하나은행이 신입 행원의 남녀 채용비율을 4대 1로 사전에 정한 다음, 별도 합격선을 매기는 방법으로 남녀를 차별해 채용한 사실이 밝혀졌다. 국민은행은 남성 지원자 113명의 서류 심사 결과를 아무 이유 없이 여성 지원자보다 높게 평가하는 방식으로 남성을 더 많이 뽑았다.
여성 채용 차별은 민주공화국의 기본을 흔드는 악질 범죄다. 만약 350만 인구의 부산 출신 응시자에게 이런 채용 차별을 뒀다면, 부산은 시위와 농성으로 발칵 뒤집히고, 국회가 소집되고 금융감독원장이 물러나는 등 엄청난 파문이 일었을 것이다. 그런데 조용했다. 이런 여성 차별 채용비리가 은행권에서만 일어난 사건일까?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에서도 들통나지 않았을 뿐,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채용과 승진에서 최고의 스펙은 ‘남성’이라는 여성의 한탄은 그냥 시기와 질투에 찬 불평일까?
2017년 매출액 기준 국내 500대 기업 전체 임원 중 여성 비율은 2.7%로, 유럽의 10분의 1 수준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성 능력이 남성의 2.7%에 불과하지는 않을 것 같다. 여성의 승진 장벽을 뜻하는 ‘유리천장지수’는 한국이 OECD 국가 중 6년 연속 최하위다. 한 마디로 한국은 ‘남자의, 남자에 의한, 남자를 위한 나라’다. 이게 우연일까. ‘국가-남성’ 체계의 치졸하고 조직적이며 음성적인 ‘우리가 남이가’ 작전 때문이 아닐까.
한국 남성은 반만년을 이어온 ‘가부장제 국가와 사회’에서 부지불식간에 큰 혜택을 받아왔다. 그런 기득권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인지 진보 인사를 포함한 오빠들은 가부장제라는 틀을 벗어날 뜻이 전혀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들에게 가부장제는 거역할 수 없는 자연법칙이다. 그래서 오빠가 허락한 울타리 안에서 여권을 살짝 높이는 일은 가능할지언정 가부장제 울타리를 넘는 일은 허락하지 못한다.
하지만 여성해방은 남성해방이기도 하다. 한국 남자가 지켜야 할 ‘남자다움’ 정신은 남자를 옥죄는 족쇄로 변한 지 오래다. 저자는 오빠들이 가부장제 속박에서 벗어나 상호 소통하는 페미니즘의 새로운 세계로 진입한다면, 자유와 광명의 기쁨을 누린다고 말한다. 13년 전 호주제가 폐지될 때 반대자들은 호주제 폐지는 망국의 길이라고 아우성쳤다. 호주제는 폐지되었으나 나라는 멀쩡했고 이제 아무도 호주제를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페미니즘도 마찬가지로, 오빠 모두가 가부장제라는 ‘습관의 독재’에서 벗어나면 지금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에서 ‘오빠와 누이가 공생하며 소통하는 페미니즘’으로 넘어가야 할 시대가 된 것이다. 저자는 한국 현대사에서 벌어진 페미니즘 사건과 논쟁을 하나씩 들추며 우리는 이미 그런 시대에 와 있고 이제 돌이킬 수 없음을 설득력 있게 밝히고 있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