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별들의 고향·무릎과 무릎사이 등
- 한국영화사에 새바람 불어넣어
- 일흔 넘긴 나이에도 왕성환 활동
- 지금까지의 작품 재상영 회고전
- “70·80년대 어두운 시절엔
- 은유적 표현으로 메시지 담아
- 관료적 사고가 망쳤던 BIFF
- 전 멤버들 다시 끌어안아야”
19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를 거치며 한국영화를 대표했던 이장호 감독의 회고전이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이하 BIFF)에서 열리고 있다. 그는 데뷔작 ‘별들의 고향’(1974)으로 단관 개봉 시대였던 당시 서울에서만 46만 관객을 동원하며 일약 흥행 감독으로 주목받았고, 1980년대 초엔 ‘바람불어 좋은날’(1980) ‘어둠의 자식들’(1981) ‘과부춤’(1983) ‘바보선언’(1983) 등 한국 사회의 소외된 계층을 바라보는 리얼리즘 영화로 한국영화에 새바람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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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BIFF 한국영화회고전의 주인공 이장호 감독. 그는 “제 영화 중 관객들에게 사랑받았으면 했는데 못 받은 작품이 아쉽다”고 솔직히 말했다. BIFF 제공 |
이후 1980년대 중반에는 ‘무릎과 무릎사이’(1984) ‘어우동’(1985) 등 에로티시즘과 사회·역사를 결부시킨 영화로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또한 이현세 작가의 히트 만화를 영화화한 ‘이장호의 외인구단’(1986)과 작가 이제하 원작 소설을 영화로 만든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1987) 등 상업영화와 예술영화를 넘나들어 80년대를 뜨겁게 관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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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일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핸드프린팅 행사에 참가한 이장호(왼쪽) 감독과 전양준 BIFF 집행위원장. BIFF 제공 |
나이는 숫자일 뿐,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새 작품에 매진하는 이 감독을 지난 7일 해운대그랜드호텔에서 만났다.
-지난 5일 해운대 노보텔 앰배서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한국영화 회고전의 밤’ 행사에서 의자를 번쩍 들며 “내가 어리다고 생각했는데 회고전을 열게 됐다”고 말했다. BIFF에서 회고전을 갖는 느낌은 어떤가?
▶그날 의자를 든 것도 ‘내가 젊은데 왜 회고전이냐’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웃음) 지금도 이전에 BIFF에서 회고전을 했던 감독님들에 비하면 어리다고 생각한다. 물론 오래간만에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것은 기분 좋다.
-‘별들의 고향’을 시작으로 많은 작품을 연출했다. 그중 특히 애정을 갖는 작품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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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들의 고향(1974) |
▶제 영화들 중에 관객들에게 사랑받았으면 했는데 못 받은 작품이 아쉽다. 그중 ‘시선’(2014)은 어렵게 만들었는데 차가운 반응을 받았다. 시기적으로 세월호가 가라앉은 날 개봉해서 그런 사정을 감수해야만 했다. ‘시선’은 사람들이 오래도록 두고두고 보는 영화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번 회고전에 ‘시선’이 상영되지 못할 뻔 했는데, ‘어제 내린 비’(1975)를 희생하고 ‘시선’을 넣었다.
-안성기, 이보희 씨 등 당시 신인 배우들과 작업을 많이 했다. 그들이 스타가 됐다.
▶저는 톱스타와 영화를 만든 경험이 별로 없다. 신인 배우와 작업하면서 제 생각과 그의 생각을 의논해 만들어가는 것에 익숙하다. 안성기, 이보희, 김명곤 등이 그렇다. 다만 신성일 씨만 톱스타인데 저와 영화를 많이 했다. 제가 조감독 시절 신성일 씨와 이야기를 많이 나눴기 때문이다.
-70, 80년대 작품을 보면 사회적 메시지가 담긴 영화가 많았다. 특히 은유적 표현을 많이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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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불어 좋은 날(1980) |
▶(군부독재사회에서) 제약이 많아 돌파는 해야 하는데 두려움은 있으니 어떻게 해야 하나 전념하다 보니 그런 방법이 생겼다. 누군가 나를 해치려고 쫓아온다면 필사적으로 도망갈 텐데, 그때 초인적 능력이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다.
-BIFF가 올해 ‘정상화 원년’을 외치며 개막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초창기 집행위원장을 지내셨는데, 지난 3년간 BIFF의 상황에 대한 견해는 어떤가?
▶BIFF는 탄탄하게 잘 나가는 것 같았는데 ‘다이빙벨’ 문제로 갈등이 시작됐다. BIFF를 애써서 키워왔는데 관료적 사고가 이렇게 만들었다고 본다. 또 (BIFF는) 김동호 전 이사장과 강수연 전 집행위원장을 다시 끌어안아야 한다. BIFF를 키운 강력한 힘이 김 전 이사장인데, 다시 BIFF에 애정을 갖게 해야 한다.
이원 기자 latehop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