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사무라이 활극의 전통 변주
- 검과 악연으로 얽힌 인간군 담아
- 감독 츠카모토 신야 개성 돋보여
‘킬링’(2018)은 츠카모토 신야(塚本晋也: 1960~ )의 첫 사무라이 활극이다. 일본영화에는 사무라이 활극의 전통이 있다. 찬바라(チャンバラ)로 일컬어지는 일본 특유의 액션 장르는 ‘7인의 사무라이’(1954)와 ‘요짐보’(1961), ‘할복’(1962), ‘대보살 고개’(1966)와 같은 영화 역사에 명멸하는 명작들을 남겼으나, 전성기가 지난 오늘날에는 간간이 만들어지는 소수 작품만이 시들어가는 장르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따름이다. ‘철남’(1989), ‘동경의 주먹’(1995)과 같은 파격적인 작품을 통해 일본 독립영화의 기수로 일컬어진 츠카모토 신야는 장르의 기본적인 관습만 유지하되, 자기 색채로 재구성하고자 하는 야심을 내비친다.
영화 도입부는 강렬하다. 불길 속에서 제련한 사철을 두들겨 일본도의 형태가 잡혀가는 과정을 훑은 영화는 이윽고 완성된 칼을 쥔 사람의 손을 클로즈업한다. 감독의 이전 작품인 ‘철남’이 기계와 결합한 인간을 다뤘다면, ‘킬링’은 검과의 악연(惡緣)에 얽혀버린 인간에 관한 영화이다. 시대극으로 외양을 바꾸었을 뿐, 도구에 휘둘려 인간성을 상실한 채, 광기로 물들어가는 인간을 그린다는 점에서 츠카모토 신야라는 주사위의 또 다른 일면이다. 폭력배들에게 두들겨 맞은 상처, 칼로 입힌 자상(刺傷) 등 섬뜩하리만치 사실적인 고어 묘사 등, 작가 츠카모토 신야의 개성은 사무라이 활극의 컨벤션 안에서도 선명히 각인된다.
‘킬링’은 칼로 표상되는 폭력의 굴레에 휩싸여 육체와 정신 양면으로 병들어가는 인간 군상의 변화를 보여준다. 폭력을 반대하던 모쿠스케(이케마츠 소스케)는 종국엔 억눌린 폭력성을 해방시켜 괴물이 되고, 무력으로 만사를 해결하려던 사와무라는 아이러니하게도 스스로 자랑하던 검에 목숨을 잃게 된다. 폭력의 피해자로 망가져 버린 농부의 딸(아오이 유우)은 평온했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 영화 ‘동경의 주먹’이 ‘복싱 호러’, 구일본군의 광기를 그린 ‘노비’(2014)가 ‘전쟁 호러’라면 이 영화는 ‘찬바라 호러’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비’가 2차 대전 패전 직전을 상정함으로서 군국주의의 공포와 불안을 반영한 반전(反戰) 영화가 될 수 있었던 반면, 시대 배경의 추상화가 극에 달한 ‘킬링’에서는 전작만큼의 몰입도와 설득력, 주제의식의 명료함과 정치적 급진성은 찾기 어렵다. 장르의 전통을 변주하고자 한 의도는 성공했지만 ‘킬링’은 사무라이 활극의 계보에 더해지는 또 다른 한 편 이상의 의의를 얻지는 못했다.
조재휘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