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패 거듭한 오손 웰즈의 유작
- 영화 속 영화 다룬 메타시네마
- 전위적이고 불균질한 편집방식
- 불운과 함께한 그의 삶 느껴져
오손 웰즈(Orson Welles: 1915~1985)는 수난의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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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손 웰즈의 유작 ‘바람의 저편’ 한 장면. BIFF 제공 |
현대 영화의 모더니즘을 정립한 걸작 ‘시민 케인’(1940)을 만들었지만, 이 득의의 데뷔작이 흥행에 실패한 뒤 그의 작품들은 악전고투 속에서 만들어지거나 통제권을 빼앗기는 등 갖은 수난을 겪어야 했다. ‘위대한 앰버슨가’(1942)는 훗날 ‘사운드 오브 뮤직’(1965)을 감독하는 로버트 와이즈의 손에 넘어가 전혀 다른 영화가 되었고, ‘악의 손길’(1958) 또한 편집권을 빼앗겨 사후 1998년에 가서야 웰즈가 남긴 자료를 참고해 복원되었다. 뛰어난 배우이기도 했던 웰즈는 생애의 후년에 B급 영화와 CF에 출연하고, 그 돈을 모아 영화를 만들고는 실패하는 일을 거듭해야 했다.
미완성 유작 ‘바람의 저편’(2018) 역시 웰즈의 불운과 궤적을 같이 했다. 1970년부터 촬영을 개시한 영화는 불안한 자금 사정으로 1976년까지 촬영 재개와 중단을 반복했고, 그 와중에 웰즈는 따로 ‘거짓의 F’(1974)를 찍었다. 웰즈는 1979년 인터뷰에서 영화 작업이 96% 정도 진척되었다고 밝혔지만, 웰즈 사후 딸 베아트리스 웰즈와 웰즈의 정부였던 오야 코다르 사이의 분쟁으로 인해 네덜란드에 보관되어 있던 영화의 네거티브 필름은 한동안 빛을 보지 못했다. 넷플릭스의 복원 작업은 시간이 지나면서 작품을 둘러싼 모든 유형의 분쟁이 정리되었기에 가능했다.
‘바람의 저편’은 영화에 관련된 인물 간의 이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는 일종의 메타 시네마이다. 영화는 존 휴스턴(‘말타의 매’(1941), ‘프리지스 오너’(1985)를 만든 거장 감독)이 연기하는 가상의 영화감독 제이크 한나포드의 생일 파티 현장을 카메라에 담는다는 설정으로 파티에 참석한 여러 인물을 번갈아 포착하는 동시에 영화 속 영화를 파편화된 영상으로 삽입한다. 한 시퀀스 안에서도 컬러와 흑백, 16㎜와 35㎜ 필름을 오가길 서슴지 않는 전위적이고 불균질한 편집은 엉망이 된 파티의 혼란 속으로 관객을 끌어들이는 듯한 효과를 자아낸다. 비선형적인 전개, 메타픽션적 요소를 끌어들이는 실험성 등, 후기 웰즈 영화를 이루는 특징은 ‘바람의 저편’에서 더욱 극단화한다.
노감독 한나포드는 감독 자신의 삶을 그대로 투사한 캐릭터이다. 실제의 웰즈가 그랬듯 한나포드는 유배당하듯 유럽으로 떠나 작품 활동을 이어가다 미국 영화계 복귀작을 준비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오만하고 독선적인 성격 탓에 적을 만들고 동료들조차 지치게 하는 한편, 기존의 틀을 깨는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의욕으로 이글거리는 성격은 노인이 된 웰즈 본인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그에게 영화란 파란만장한 자신의 삶을 투영하는 예술이었던 셈이다.
‘시민 케인’이 청년이었던 웰즈 자신이 미래에 겪을 파란을 예언한 영화였다면, 이 최후의 유작은 후년의 자신에 대한 자조어린 풍자에 다름 아니다. 비록 한나포드는 상종 못할 광인(狂人)이지만, 이 풍운아의 뒤안길에는 일종의 숭고함과 비장함, 심지어 서글픔까지 감돈다. 노년의 거장은 자신이 받았어야 마땅했던 찬사와 영광을 완전히 잃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조재휘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