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의 실화
- 달을 향한 집착·심리묘사 치밀
- 우주의 시각적 표현도 신선해
데이미언 셔젤(Damien Chazelle: 1985~ )이 ‘퍼스트맨’(2018)을 연출한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일각에서는 기대와 불안감이 교차했다. 분명 그는 ‘위플래시’(2014)와 ‘라라랜드’(2016)를 연달아 성공시킨 재기발랄한 신인이었지만, 음악영화의 영역을 떠나 메인스트림 대작을 능히 감당할 역량의 소유자인지는 당장은 알 수 없던 것이다. 이런 불안은 완성된 영화를 보면서 말끔히 씻겨 내려갔다. 제작자로 선뜻 나선 스필버그의 감식안은 옳았다. 셔젤은 ‘원스’(2006)의 존 카니가 ‘비긴 어게인’(2013)과 ‘싱 스트리트’(2015)를 내놓으며 걸려든 매너리즘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연출가로서 독자적인 재능을 입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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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라랜드’ ‘위플래쉬’를 만든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신작 ‘퍼스트맨’ 한 장면. |
필립 카우프만의 ‘필사의 도전’(1983)에서 론 하워드의 ‘아폴로 13’(1995)에 이르기까지 우주에 도전하는 우주비행사들의 성공과 실패를 다룬 영화는 여럿 있었다. ‘퍼스트맨’ 또한 이런 유형의 영화가 취하는 이야기의 정석을 벗어나지 않는다. 영화는 1961년부터 1966년 제미니 8호의 도킹 성공을 거쳐,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이 성공하는 시점에 도달하기까지 닐 암스트롱의 실화를 연대기 순으로 따라간다. 암스트롱은 동료들과 함께 우주비행사로 훈련받고, 준비과정에서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며, 가족의 뒷받침에 힘입어 미션을 성공시킨다.
영화에서 묘사되는 암스트롱의 성격은 미국식 가족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다정하고 가정적인 남편, 이상화된 가부장과는 거리가 있다. 어떤 면에서 ‘퍼스트맨’은 20세기 우주 개발의 시대로 시공간 배경을 옮긴, 멜빌의 ‘백경’에 대한 온건한 변주 같다. 흰 고래 모비딕을 잡겠다는 집념에 불타 선원의 목숨을 희생시키는 에이헙 선장만큼은 아니지만, 암스트롱 또한 달로 가고야 말겠다는 야망에 집착해 가족에 대한 책임을 뒤로 제쳐두는 외골수로 재해석된다. 동료를 매몰차게 면박주고, 집 밖에서 홀로 달만을 바라보는 암스트롱을 창가의 아내는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아폴로 11호의 승무원들이 달에 착륙하는 클라이막스에 이르러, 영화의 정서에 일대 반전이 일어난다. 모든 노력과 희생을 감수하고 그토록 다다르고 팠던 달에서, 암스트롱은 단지 적막과 고요와 폐허, 절대적인 무(無)와 공허만을 발견한다.
영화는 성조기를 달에 꽂는 역사적 순간마저 생략한 채 암스트롱의 시점에만 집중한다. ‘한 명의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을 내딛는 순간, 그의 사념 세계에는 한동안 외면해왔던 가족과의 소중한 기억이 오래된 필름 영상의 플래시백으로 환기된다. 목표를 향해 자신을 한계치까지 몰아넣는 ‘위플래시’의 인물은 역설적이게도 그 목적지에서, 떠나온 지구에 대한 그리움을 희구하던 ‘솔라리스’(1972)의 정서에 도달하는 것이다.
인물에 접근하는 관점의 각도를 바꾸고, 우주 공간의 시각적 표현에서도 관습적인 연출을 답습하지 않는 영민함으로 ‘퍼스트맨’은 진부해질 수 있는 우주영화의 정형화된 틀을 극복해낸다. 이 영화는 우주 소재 영화, 실화를 소재로 한 전기 영화의 또 다른 레퍼런스로 남을 것이다. 조재휘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