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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리뷰]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

참혹한 역사의 파란 속에서도, 견디어 낸 삶과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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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10-11 18:50:10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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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멕시코 출신 알폰소 쿠아론 감독
- 17년만에 고국 돌아와 메가폰
- 코퍼스 크리스티 학살 등 재현
‘로마’(2018)는 알폰소 쿠아론의 필모그래피에서 손꼽을 훌륭한 작품 중 하나이며, 동시에 가장 개인적인 영화일 것이다. ‘칠드런 오브 맨’(2006)에선 절멸 직전의 근 미래를 헤매고, ‘그래비티’(2013)에서는 우주로 나아갔던 그의 카메라는 고개를 돌려 1970년대 초의 멕시코로 돌아온다. (이 영화는 ‘이 투 마마’(2001)를 작업한 이래 17년 만에 고국 멕시코로 돌아와 메가폰을 쥔 작품이다.) 이것은 기억에 대한 영화이다. 페데리코 펠리니가 작은 바닷가 마을 리미니를 추억하며 ‘아마코드’(1973)를 찍은 것처럼, 작가적 경력의 정점에 도달한 쿠아론은 자신이 성장기를 보낸 장소와 과거 역사를 돌이키며 영화에 담았다.
   
‘로마’의 한 장면.
쿠아론의 방향성은 펠리니와는 다르다. 펠리니가 자전(自傳)적 기억을 상상과 애정으로 변형한다면, 쿠아론은 무채색 흑백 화면이 그렇듯 일체의 낭만화를 거부한다. 영화의 오프닝은 개인 아파트 주차장의 바닥을 응시하는 롱테이크로 열린다. 클레오가 바닥을 청소할 때 파도처럼 유동하는 비눗물의 이미지는 주인집 가족이 베라크루즈로 휴양을 떠난 결말 즈음 파도 속을 헤치고 위험에 빠진 주인집 아이들을 구하는 장면과 겹쳐진다. 이런 의미심장한 시각화는 은연중 영화의 성격을 암시한다. ‘로마’는 거센 조류에 휩쓸리면서도 그것을 견디어낸 삶에 관한 영화이다. 쿠아론은 역사에 대한 거시적인 시야를 갖고서 그 안을 살아갔던 개인들을 바라보고자 한다.

영화는 프레임 전체를 넉넉히 채우는 와이드숏과 유려한 패닝을 중심으로 담담하고도 관조적인 화폭을 펼쳐낸다. 중산층 가정의 아파트에서 식모로 일하는 클레오는 계급과 인종의 차이가 있음에도 아이들의 정다운 양육자로서 사랑받는다. 클레오의 동선을 따라가면서 영화는 70년대 멕시코 사회의 인종과 계급, 빈부격차와 성차별, 불안감이 감도는 사회상을 한데 아우르고 담아낸다. 클레오는 전적으로 정치에 무지하지만 그가 겪는 사건들은 비극적으로 비틀린 역사의 파란과 떼어놓을 수 없다.

친구의 애인의 사촌 페르민과 관계해 임신한 클레오는 페르민을 찾아가지만, 군사훈련을 받던 그는 클레오를 매몰차게 쫓아낸다. 이 상황은 1971년 6월 10일 학생 시위대에 대한 과잉 진압으로 120여 명이 사살된 코퍼스 크리스티 학살 사건의 재현으로 이어진다. 준군사조직의 일원으로 가구점에 난입한 페르민은 클레오를 향해 총을 겨누고, 혼란한 와중에 클레오는 아이를 유산한다. 극 중의 남성-권력은 무책임하거나 가학적인 존재로 표상된다. 주인집의 가장인 안토니오는 아내와 아이들을 버리고, 페르민 역시 클레오와 맺은 관계를 부정하고 학살의 주체로 뛰어든다. 결말에 이르러 피해자로 남게 된 여성과 아이들은 계급과 인종의 차를 넘어 서로를 끌어안는다.

   
‘로마’에서 쿠아론은 역사를 쉬이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다. 단지 참혹한 시대 가운데서도 삶은 있었고, 사람은 끝끝내 살아남아 견디어냈음을, 절망 속에도 희망은 있었음을 전하고자 한다. 이것은 또 다른 버전의 ‘칠드런 오브 맨’이며, 영화가 역사를 돌이키고 기억하는 가장 성숙하고 위대한 방식이다.

조재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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