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콩 간판 사이 공중전 압도적
- 테이블 위 액션 시퀀스 독창적
올해 부산국제영화제(BIFF)는 원화평 감독의 ‘엽문 외전’으로 문을 닫는다.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보게 되리라 미처 기대하지 못했던 홍콩의 전통무술영화라 놀라우면서도 반갑다. 한때 아시아 영화 산업의 중심을 이루었던 홍콩 영화가 1997년 본토 반환 이후 거의 와해되다시피 하자 홍콩 영화의 대표 장르인 무술영화도 예전의 빛을 잃은 지 오래되었다. 이제 동시대 관객들에게 홍콩 무술영화의 흔적은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친근하면서도 이국적인 어떤 변종의 액션이 되었다. 그런 중에 홍콩 무술영화의 장르적 활력을 고스란히 되살린 ‘엽문 외전’은 지난날 홍콩 영화의 영예로운 한때를 환기시키며 묘한 향수를 불러온다.
‘엽문 외전’의 히어로는 영춘권의 정통 계승자 자리를 두고 엽문과 대결을 벌였다가 패한 장천지다. 그는 단 한 번의 패배로 무술계를 떠나 불법 격투장을 전전하며 살인청부업에도 관여했지만, 지금은 모든 일에 손을 씻은 상태다. 영화는 장천지의 어두운 과거를 간략히 전한 다음, 어린 아들을 홀로 키우며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현재의 삶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 소박한 삶은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어느 날 거리에서 마약조직의 보스인 키트에게 곤경을 당하는 여인들을 우연히 구해준 일이 계기가 되어 온갖 세력 다툼에 휘말리게 된다.
‘엽문 외전’의 서사 전개와 연기 스타일을 현대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야기는 신마다 급작스러운 전환을 이루며 가파르게 전개되고, 배우들은 제 역할을 기능적으로 수행하는 전형적인 연기 스타일을 따른다. 물론 그 점이 이 영화의 치명적인 단점은 아닐지도 모른다. 무술영화에서 서사는 액션의 쾌감에 봉사하기 위한 전형적인 토대이며 무술 연기는 고도의 기능적인 퍼포먼스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엽문 외전’에는 현재 홍콩 무술 장르에서 부상하고 있는 스타 배우 장진과 이미 이 장르에서 일가를 이룬 양자경, 태국의 액션 배우 토니 자, 레슬링 선수 출신인 할리우드 배우 데이브 바티스타 등의 스타 배우들이 총출동하지만 그들에게 섬세한 리얼리즘 연기를 기대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여기서 장진의 액션 연기는 ‘엽문’ 시리즈의 견자단의 부재를 떠올리지 않게 할 정도로 화려하고 충만하다.
말하자면 ‘엽문 외전’에서 가장 현대적인 것은 무술 연출이다. 홍콩의 번잡한 거리를 가득 채운 간판들 사이로 공중전을 벌이는 시퀀스에서 그 유려하고 파워풀한 액션 연출은 가히 압도적이다. 또한 술잔과 손만을 이용하여 장진과 양자경이 벌이는 테이블 위의 액션 시퀀스는 이제껏 한 번도 보지 못한 독창적인 액션의 정수라 할 만하다.
70년대 홍콩 무술영화의 배우이자 감독으로 경력을 시작하여 ‘매트릭스’(1999) ‘와호장룡’(2000) ‘킬빌’(2003) 등 할리우드 영화에서 무술감독으로 이름을 알린 원화평의 전설이 재연되는 순간이다. “무술은 일종의 예술”이라는 원화평 감독의 말이 실감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강소원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