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투리 녹아있는 부산 배경 단편소설집
- 10~30대 인물들 삶에 두 화두 큰 영향
- 결핍이 새 결핍 낳는 인생의 연쇄작용
- 섣불리 답 찾지않고 관조하듯 바라봐
한때 문학회에서 서로의 글을 나눠 읽고 응원했던 인연으로 작가의 사인이 들어간 첫 번째 소설집을 받았다. 오선영 작가의 ‘모두의 내력’이란 단편소설집이다. 부산이라는 지역에서, 20대에 글을 매개로 인연을 맺은 이가, 꾸준히 글을 쓸 확률과 30대 후반에 자기 이름을 소설집을 낼 확률에 대해 한참 생각하게 된다. 그만큼 지역에서 젊은 작가의 등장과 작품 활동은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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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사하구 감천문화마을 전경. 오선영 소설집 ‘모두의 내력’의 배경 가운데 한 곳이다. 국제신문 DB |
또 하나 반가웠던 것은 소설의 배경이 되는 부산의 다양한 장소와 사투리다. 요즘은 세련되게 보이려고 그런지, 아니면 전국적인 작품을 염두에 두어서 그런지 지역성을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책의 작품 가운데 ‘밤의 행진’에서는 신혼부부가 집을 구하기 위해 부산의 다양한 장소를 돌아다니고 대화도 사투리로 주고받는다. 그것에 어느 정도 의미를 부여할 만한 것인지는 고민을 더 해봐야겠지만 내가 아는 부산의 풍경과 사투리 섞인 대화가 작품이나 인물의 상황에 몰입하는 데 확실히 조금 더 빠른 통로를 만들어주었다.
이처럼 지역성을 드러내는 것이 단순히 지명이나 사투리라는 외피를 차용한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해바라기 벽’에서는 오랫동안 문화마을, 벽화마을로 유명세를 타오다 어느새 부산의 상징처럼 된 감천동의 알록달록 벽화에 감춰진 이면을 감수성 예민한 소녀의 시선으로 까발리기도 한다.
이런 반가움과는 별개로 의도치 않게 책을 한참을 가방에 넣어 다니며 더디게 읽었다. 단편소설 8이 실려 있는데 작품과 작품 사이를 지나는데 다소간 여백이 필요했다. 책을 덮고서야 그 이유를 요리조리 맞추어보니 ‘가족’과 ‘가난’이라는 두 주제가 남는다. 요즘처럼 SNS 형식에 맞게 말이 짧아지고, 이미지나 영상으로 소통하는 시대에 이 두 주제는 금기어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머물러 생각하기 시작하면 헤어나기 힘든 수렁 같은 주제니까.
차라리 욕망에 기름을 붓는 이야기들이나, ‘노오력’을 요구하는 세계를 비꼬거나 청년들이 처한 세태를 자조하는 글이 넘쳐나는 시대에 ‘가족’과 ‘가난’이라니. 게다가 어떤 판단을 내리고 출구를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 아니라 작가는 담담하게 ‘가족’과 ‘가난’의 영향 속에 있는 인물들을 지켜보는 편이다. 생채기를 독기 어린 눈으로 헤집지 않고 그 가려운 부분에 대한 감각을 열어놓고 계속 응시한다.
정도는 다르겠지만, 가족과 가난이라는 주제는 누구에게나 던져질 수 있는 화두이자 장애물이다. ‘부고들’에서처럼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당장 전세금이 부족한 ‘나’가 형제들과 어머니의 재산 처리를 놓고 다투기도 하고, ‘로드킬’에서처럼 파산 뒤 사라진 아버지를 둔 나는 제대로 된 명함 하나 얻지 못하고 사라진 숱한 청춘들 중 하나가 되며, ‘칼’에서는 가부장의 권위 아래서 폭력이 되기도 하며, ‘모두의 내력’에서는 문방구 아줌마랑 바람 나서 같이 차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로 죽은 아버지를 마냥 기다려주었던 미련한 엄마를 또 반쯤은 닮아버리기도 한다.
주로 10대에서 30대로 그려지는 소설 속 인물들에게 ‘가족’과 ‘가난’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이 둘은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주어졌던 결핍이, 또 다른 결핍으로 연쇄작용하는 강력한 유산이다. 그렇다고 그 유산이 우리 삶의 궤도를 꽉 틀어쥐고 있지만은 못할 것이다. 우리 모두의(각자의) 내력을 정리하는 일 위에 다음의 이야기들이 또 펼쳐질 것이다.
기획자·청년정책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