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누리카드 불용액 연 10억
- 문화재단, 사용처 넓히려 고민
- 사용액 적은 3300명 개별연락
- 고등어축제서 쓸 수 있도록 교환
- 어르신들 3일동안 400만 원 써
- 영화·도서 구매에만 쏠린 사용처
- 지역 경제까지 살릴 가능성 엿봐
“고등어를 먹어야겠어!” 토요일이던 지난 20일 부산 서구 송도해수욕장에서 열린 제11회 고등어축제(지난 19~21일)에 가면서 했던 생각은 당연하게도 ‘고등어’였다. 송도해수욕장 가까이 사는 나는 ‘축제든 문화행사든 역시 집 근처에서 해야 이렇게 마실 가듯 쉽게 가볼 수 있지’ 하는 생각을 하며 타박타박 걸어서 갔다. 과연! 송도는 온통 고등어였다. 고등어, 사람, 바다, 딱 세 가지밖에 안 보였다. 그런데 잠깐, 저게 뭐지? ‘제11회 부산고등어축제 문화누리카드 쿠폰 교환처’? 눈길을 끈 한 부스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문화누리카드가 고등어축제에 왜 왔지? 호기심이 펄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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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1일 부산 서구 송도해수욕장을 찾은 시민들이 제 11회 부산고등어축제를 즐기고 있다. 박수현 선임 기자 parksh@kookje.co.kr |
문화누리카드는 “기초생활수급 계층과 차상위 계층을 대상으로 한 문화예술·여행·체육 분야 향유 지원으로 삶의 질 향상 및 계층 간 문화 격차 해소를 위하여 발급하는 카드”(문화누리 홈페이지)이다. 요건을 갖춘 사람이 문화누리카드를 발급받으면 1년에 7만 원까지 공연·전시·영화·책·여행·체육 등 영역의 가맹점에서 쓸 수 있다. 요즘 문화누리카드 용도가 영화 관람이나 책 구매 쪽으로 쏠렸다는 소식을 들은 터라, 고등어축제에서 만난 문화누리카드는 좀 뜻밖이었다.
‘문화누리카드 쿠폰 교환처’ 부스로 가봤더니 부산문화재단 문화공유팀 김희경 씨가 반갑게 맞아준다. 그에게 묻자 궁금증이 좀 풀린다. 사연은 이렇다. 부산에서 문화누리카드를 발급받은 사람은 현재 13만8000명 정도란다. 한 해 쓸 수 있는 금액을 총액으로 따지만 97억 원 정도인데, 부산의 문화누리카드 사업을 맡은 부산문화재단이 애써 홍보해도 10억 원 이상 ‘불용액’이 발생한다고 한다. 불용액은 주로 저소득층 어르신 등 정보에 어둡거나 문화나들이가 쉽지 않은 이들에게서 생기는 것으로 파악된다. 카드를 발급받아놓고도, 언제 어디서 써야 할지 모르거나 영화관이라도 가려해도 엄두가 안 나니 1년 내내 쓰지 않는 것이다. 재단은 이를 조금이라도 개선하고 싶었단다. 그래서 문화누리카드를 쓸 수 있는 문화관광축제로, 서구에서 열리는 부산고등어축제를 떠올렸다.
부산문화재단 문화공유팀은 부산 서구·중구·사하구의 카드 소지자 중 올해가 다 가도록 여전히 사용 금액이 많지 않은 3300명을 파악해 “고등어축제에 가시면 문화누리카드를 쓸 수 있다”는 안내 문자를 돌렸다. 이 문자를 보고 걸려온 문의전화에 일일이 응대하고 안내했다. 문화누리카드로 축제 현장에서 각종 고등어 식품 등 축제 물품을 사는 데 쓸 수 있도록 일종의 ‘지역화폐’ 개념도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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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어축제 현장의 문화누리카드 쿠폰 교환처. |
설명하자면, 다양한 액수의 쿠폰(3000원·5000원·1만 원·2만 원 쿠폰)을 마련하고 현장에 부스를 차려 문화누리카드를 소지한 어르신 등이 오면 원하는 액수만큼 쿠폰으로 교환해준 것이다. 이 쿠폰은 오로지 사흘간 고등어축제에서만 쓸 수 있으니 현장에 부스를 차리고 물품을 판매한 업체에도 도움이 됐다. 고등어축제를 주관하는 서구문화원, 현장에 부스를 차린 업체들 그리고 공정여행사 핑크로더 등과 협의하고 협력했다. 결과는 좋았다. 시작할 때 “축제 사흘 동안 문화누리카드 사용 금액이 100만 원을 과연 넘길까” 예상했는데, 실제 사용금액이 약 400만 원에 이르는 호응을 받았다.
비록 작은 사례지만, 이번 시도는 뜻깊은 시사점을 몇 제공한다. 첫째, 문화행정이나 문화정책은 규정을 마련하고 틀을 짜 현장에 ‘던져’놓는다고 다 잘 풀리는 게 아니며, 실행과정을 세심하게 챙기고 빈틈을 보완하면 취지를 훨씬 잘 살리는 ‘과정의 예술’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둘째, 문화누리카드 사용처가 영화 관람과 책 구매에 쏠린다고 분석되는데 이는 사회적 문화향유권을 지원한다는 장점이 있음에도 지역문화·경제에 별 의미는 갖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자칫 ‘사장’됐을 수 있는 약 400만 원이 지역 문화관광축제 현장에서 쓰인 작은 사례에서 이를 개선할 작은 실마리나마 찾을 수 없을까.
셋째, 현재 문화누리카드는 오로지 ‘카드 사용을 통한 소비’로 구조가 일원화돼 있다. 자연스럽게 영화 관람 등에 쏠린다. 이를 예전의 제도처럼, 담당 기관이 자체 기획사업을 통해 지역문화계가 참여하는 문화상품을 만들고, 문화누리카드 이용자가 이용하도록 권유해 ‘문화누리카드-지역문화계’의 협력·상생 구조를 만들 수는 없는가. ‘고등어축제에 간 문화누리카드’는 작은 사례다. 하지만 문화의 일이란, 마당에 낙엽 한 장 뒹구는 것을 보고 천지에 가을이 왔음을 아는 눈이 필요할 때가 많다.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