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이는 거라곤 민낯뿐인 야간열차
- 진실한 자신을 만나기 바람직한 곳
- 실망은 불행? 그건 선입견일 뿐이죠
- 실망을 수집하는 행위는 자아 찾기
남북의 화해 분위기가 무르익으며 유라시아 횡단 철도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습니다. 부산-신의주 간 한반도종단철도를 중국 그리고 시베리아횡단철도로 연결해 한반도-유럽 육로 시대를 열겠다는 뉴스에 마음이 설렙니다. 정치적 문제로 섬처럼 고립되었지만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던 기마 민족의 대륙적 기질 때문일까요. 많은 한국인의 버킷리스트에 유라시아횡단여행이 들어있다고 합니다. 그럼 부산에서 출발한 기차는 유럽의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요. 우리는 지금 서쪽의 끝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갑니다.
 |
| 동명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빌 어거스트 감독의 ‘리스본행 야간열차’ |
고문헌학 교수인 그레고리우스는 빗속에서 한 포르투갈 여자를 만납니다. 그녀를 찾으러 들른 헌책방에서 우연히 집어 든 책 한 권에 그는 마음을 뺏깁니다. 아마데우 알메이다 프라두의 ‘언어의 연금술사’. 책 속의 프라두는 말합니다.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그레고리우스는 이 한 문장에 이끌려 현실의 삶을 내버려 둔 채 프라두의 흔적을 쫓아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뛰어오릅니다. 프라두의 이지적 사색과 그레고리우스의 고독한 사유가 철로처럼 끝없이 펼쳐진 소설 속에서 야간열차의 목적지는 어디일까요.
문학을 하고 싶었지만 부모의 기대를 따라 의사가 된 프라두는 포르투갈 독재의 앞잡이, 멘지스의 생명을 구해줬단 이유로 많은 이들에게 배척당합니다. 신의를 회복하기 위해 저항운동에 뛰어든 프라두는 한 여자에게 매혹됩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오랜 친구의 연인이었습니다.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번민하던 프라두는 조직이 발각되어 여자가 제거될 위험에 놓이자 여자를 서쪽의 끝, 피니스테레로 탈출시킵니다. 떠난 사랑과 깨진 우정의 그늘 속에서 프라두는 펜을 들어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언어의 연금술사’를 읽으며 그레고리우스는 프라두의 삶과 신과 신의에 대한 깊은 성찰에 공감합니다. ‘실망은 불행이라고 간주되지만, 이는 분별 없는 선입견일 뿐이다. 실망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무엇을 기대하고 원했는지 어떻게 발견할 수 있으랴. 자신에 대해 정말 알고 싶은 사람은 실망을 수집해야 한다.’ 철학 같은 프라두의 글은 무겁고 진지하지만 한 줄 한 줄에 담긴 사유는 그레고리우스와 우리를 끝없이 각성시킵니다. 여행의 끝에서 그레고리우스는 제자리로 돌아가기로 결심합니다. 경험하지 못한 부분은 프라두의 말대로 상상력으로 채워졌으며, 떠나더라도 반드시 그의 일부분은 그곳에 남을 것이라는 걸 이제 믿기 때문입니다.
스위스 태생 작가 파스칼 메르시어의 본명은 페터 비에리. 대학에서 언어철학을 가르칩니다. 철학과 고전문헌학을 전공한 그의 해박한 인문학 지식은 이 소설의 가슴 뛰는 서사에 깊이를 더해줍니다. 책 말미에 실린 작가 인터뷰에서 메르시어는 말합니다. ‘삶에서 자유로워지려면 삶이란 상황 전체를 뒤흔들어놓아야 합니다. 누군가 갑자기 떠난다고 해도 놀라지 마세요. 그것은 자기 자신을 향한 필연적인 떠남입니다.’
그렇다면 왜 야간열차일까요? 우리는 왜 야간열차를 타고 아주 먼 곳까지 가기 바라는 걸까요? 밤 기차에서는 바깥 풍경을 볼 수 없습니다. 볼 수 있는 거라곤 어두운 차창에 비친 나의 민낯뿐입니다. 자기 인식과 깨달음을 위한 바람직한 장소인 것입니다. 또한 기차는 지리적,정치적 경계를 극복하고 국경을 넘어갑니다. 비행기와 달리 땅 위를 흐르는 기차는 내가 있는 지금, 여기를 분명히 보여주므로 우리 삶과 흡사합니다. ‘야간열차는 인생의 메타포다.’ 작가의 비유가 꽤나 절묘합니다. 오늘 밤,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몇 시에 출발할까요.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