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교회에서는 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주일미사에 잘 참여하다가 중단한 사람들을 냉담자라고 한다. 본당 신부로 재직할 때 냉담자들을 만나 성당에 다시 나올 것을 권유하면 대부분 사정이 여의치 않아 성당에 나가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어떤 이들은 사정 때문에 성당에 나가지는 못하지만 나름의 믿음은 가지고 있다고 한다. 못 나가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스스로의 변명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나름의 믿음이 과연 참된 믿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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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남구 남천성당에서 열린 성탄미사에 참석한 신도들이 기도를 하고 있다. 국제신문DB |
구약성경을 보면 대표적인 믿음의 사람으로 아브라함을 내세우고 있다. 믿음의 사람이라고 불리는 이 사람은 자신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사람으로 뽑힌 인류 역사 최초의 사람으로 소개된다. 그리고 그의 믿음을 성경에서는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창세12, 1)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고 “아브라함은 주님께서 이르신 대로 길을 떠났다”(창세12, 4)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아무런 말도 없이 그대로 따랐다는 것이 바로 아브라함의 믿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은 바로 자기 삶의 터전이고 자리인데 그곳을 버리고 새로운 삶의 자리를 찾아 길을 떠나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이었을까? 이는 목숨을 건 결단이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실제 아브라함의 삶에서 고향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될 중요한 사건이 있었기에 아브라함이 길을 떠났겠지만, 그 구체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성경은 함구하고 있다. 칼데아의 우로에서 살던 아브라함의 아버지 테라는 가나안 땅을 향해 길을 가다가 하란에서 정착해 살게 되었다. 아브라함은 자기 아버지의 여행을 계속하려는 마음을 먹었는지, 아버지의 집을 떠났는데 성경은 이것을 하느님의 부르심 때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따라 자기가 살던 삶의 자리를 떠나는 것, 그래서 하느님이 보여주시는 새로운 삶의 자리를 찾아 떠나는 것,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의 믿음이다. 이런 아브라함의 믿음을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우리도 참다운 믿음을 가지려면 우리가 사는 삶의 자리를 떠나야 하는데 그 의미를 우리는 어떻게 알아들어야 할까? 사람은 모두가 나름의 인생관 혹은 가치관을 가지고 살고 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나름대로의 생각을 우리 삶의 자리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아브라함의 모범에 따라 생각한다면, 바로 그 나름의 생각을 버리고 하느님께서 보여주시는 땅으로 표현되는 하느님의 가르침에 따른 새로운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말로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나름의 생각을 버리고 가르침에 따른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나름의 믿음을 어떻게 참된 믿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사실 인간은 끊임없이 나름의 삶에 대한 생각을 버리고 새로운 생각, 즉 하느님의 가르침에 따라 형성되고 길러지는 생각을 가지도록 부르심을 받고 있다. 이 부르심이 구원에로의 부르심이요, 참인간다운 삶에로의 부르심이요 바로 영원한 생명에로의 부르심이다. 이 부르심에 아브라함의 모범에 따른 응답을 한다면 믿음으로 얻게 되는 새로운 삶, 구원받은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이런 믿음을 가지고 길러가기를 바라고 또 노력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부산가톨릭평화방송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