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5년까지 양산에 속했던
- 기장의 싱싱한 수산물 활용
- 노란 단풍콩잎을 따다가
- 멸치젓국 버무려 콩잎장아찌
- 된장에 담그는 된장콩잎장아찌
- 새콤 시원한 콩잎물김치까지
- 없던 입맛도 살아나는 맛
- 학창시절 도시락 단골반찬
- 양념장 샜던 일도 추억이 되다
부산은 여러 시기에 걸쳐 다양한 지역 사람들이 정착해 ‘지금의 부산’을 이룬 도시이다. 부산의 음식과 음식문화도 팔도에서 온 이주민들의 음식이 ‘부산화’되는 정착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른다. 특히 대도시인 부산의 음식과 음식문화는 그 바탕에서 이웃한 지역인 김해와 양산에서 이주해온 이들의 영향 또한 크게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부산의 강서구는 원래 ‘김해군’에 속했다가 1978년 부산으로 편입됐고, 기장군은 양산에서 분리돼 부산으로 편입된 역사를 지녔기에 더욱 그러하다.
■곡창지대 양산의 소울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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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짭조름한 단풍콩잎장아찌를 흰 쌀밥에 올려 싸먹으면 없던 입맛도 되살아 나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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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은 낙동강을 중심으로 부산과 경계가 맞닿은 지역이다. 양산시는 경상남도의 곡창 지대로 예부터 논농사가 발달했다. 게다가 낙동강을 중심으로 한 풍부한 민물 식재료가 풍부했고 1995년까지 양산군에 속했던 기장지역의 싱싱한 수산물을 이용한 음식도 풍성하게 펼쳐지던 곳이다. 기장 대변의 멸치로 젓갈을 만들어 다양한 음식과 양념으로 활용했기에 대체로 음식이 짜면서도 양념 등이 짙은 편이다. 음식의 비린내를 제거하기 위해 제피를 사용하는 음식도 많은 점이 특징이다.
이러한 양산지역의 지리 특성을 잘 반영한 음식 중 하나가 바로 ‘단풍콩잎장아찌’이다. 단풍콩잎장아찌는 경상도 전역에서 늦가을 서리를 맞아 노랗게 단풍이 든 콩잎을 따서 삭힌 뒤, 된장 또는 멸치젓갈 양념에 버무려 먹는 음식이다.
양산의 ‘단풍콩잎장아찌’는 다른 지역과 달리 콩잎을 멸치젓갈로 만든 양념으로 빡빡하게 버무려서 먹는다. 우선, 노랗게 단풍 든 콩잎을 보름여 소금물에 넣고 삭힌다. 그리고 멸치젓국을 달여 만든 맑은 멸치액젓에 고춧가루, 마늘, 파, 생강 등속을 넣은 양념장을 만들어, 콩잎마다 한 장 한 장 발라 숙성시킨다. 이때 양념은 김치양념보다도 더 많이 넣어, 양념에 콩잎을 재우듯 넉넉히 담가야 한다.
■콩나물콩잎과 메주콩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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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풍콩잎장아찌 |
단풍콩잎장아찌 재료로 콩나물 콩잎을 주로 쓰는데, 메주콩잎을 사용하기도 한다. 양산 사람들은 “메주콩잎보다 콩나물 콩잎으로 담그는 것이 입속 느낌도 좋고 더 맛있다”고들 한다.
맛이 든 단풍콩잎장아찌는 겨우내 양산 사람들 밥상 한가운데 떡 하니 자리하고는, 끼니마다 그 입맛을 돋워주는 음식이다. 뜨거운 밥에 얹어 먹거나 콩잎에 밥을 얹어 젓가락으로 도르르 감아 먹으면, 가슬가슬한 콩잎에 진하고 짭조름한 양념이 배여 늘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또한 가을에 담근 단풍콩잎장아찌는 해를 넘겨 한여름까지 먹는데, 입맛 없는 여름철 반찬으로는 더할 나위가 없다. 찬물에 밥 말아 단풍콩잎장아찌 한 장 척 얹어 입에 넣으면, 더위에 지친 입맛이 바로 되돌아오는 별미 중 별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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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콩잎장아찌 |
원래 콩잎은 멸치젓국 양념으로 담근 ‘단풍콩잎장아찌’와 된장에 박아 놓은 뒤 일정 기간 지나면 먹는 ‘된장콩잎장아찌’, 양념을 발라 발효한 뒤 새콤하게 먹는 ‘콩잎김치’ 등을 널리 먹는다. 여름철에는 입맛 없을 때 부드럽고 여린 콩잎을 풀물에 며칠 재운 ‘콩잎물김치’로도 먹는다. 콩꽃이 피기 전 연하고 어린 콩잎을 따 콩잎물김치를 담그는데, 콩잎 특유의 향과 함께 가슬가슬한 느낌이 입속에서 흔쾌하다. 특히 새콤 시원한 국물은 해장에도 좋고 국수에 말아 먹어도 좋다.
■박정애 시인의 ‘콩잎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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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콩잎물김치 |
청양고추를 듬뿍 넣고 끓인 ‘찐 장(가마솥 밥을 지을 때 함께 넣고 찐 뻑뻑한 강된장)’에 쌈을 싸서 먹어도 근사하다. 콩잎 두어 장에 밥을 올리고 그 위에 ‘찐 장’을 듬뿍 올린 다음 입안 가득 싸 먹는 것이다. 그리고 기장멸치로 삭힌 멸치젓국을 땡초와 함께 쌈으로 싸 먹는 ‘콩잎 멸치젓갈 쌈’ 또한 입맛 없을 때 최고의 음식이다.
어릴 적 양산군에서 자란 박정애 시인에게서 콩잎장아찌의 추억담을 듣는다. “양산 사람들은 콩잎을 참 좋아해요. 사시사철 콩잎으로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먹지요. 봄·여름에는 야들야들한 콩잎으로 새콤하게 물김치를 담가 먹고, 밥물 들어간 구수한 ‘찐 장’으로 쌈도 싸 먹어요. 가을·겨울이면 된장에 박아서 익힌 된장콩잎장아찌와 멸치젓국 양념에 버무린 단풍콩잎장아찌를 먹는데, 끼니마다 없어서는 안 될 밑반찬이었지요.”
박 시인 또한 어릴 적부터 단풍콩잎장아찌를 즐겨 먹었는데, 콩 이파리에 있는 ‘엽맥’이 질겼던지 부드러운 잎만 먹고 엽맥은 남겼단다. 그래서 밥을 먹고 난 밥상 위에는 콩 이파리 엽맥이 생선가시처럼 소복하게 쌓여 있었다고.
“학교에 갈 때 도시락을 싸서 가잖아요? 양산에는 도시락 반찬이 거의 콩잎장아찌였어요. 그래서 콩잎장아찌 ‘장물(양념국물)’이 가방 속에 넘쳐흐르는 건 일상다반사였지. 중학교 때까지는 예사로 생각했는데, 고등학교 때는 ‘장물’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부끄럽기도 하고 해서 도시락을 안 싸 가려고도 했지요.”
■밥상 위에 물든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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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산의 시장에서 만난 된장깻잎, 된장콩잎, 양념깻잎 그리고 단풍콩잎장아찌. |
박 시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양산 사람들에게 콩잎장아찌는 어릴 적 아련한 추억과 가족과 함께했던 밥상머리의 따뜻한 기억을 반추해내는 ‘양산의 소울푸드’임을 바로 알겠다. 양산 특유의 향토음식 중 하나인 ‘단풍콩잎장아찌’와 ‘된장콩잎장아찌’를 사서 밥상을 차린다.
상을 차리고 보니 늦가을 밥상이 온통 단풍이 들어 울긋불긋하다. 노란 단풍콩잎에 넉넉하게 밴 붉은 양념, 누런 된장양념 속 진녹색 콩잎, 붉으락푸르락 조선상추… 밥상에 단풍 든 가을 산을 옮겨놓은 것만 같다.
두 가지 콩잎장아찌를 번갈아 가며 고슬고슬 잘 지은 흰 쌀밥 위에 한두 잎씩 올려서 먹는다. 담백한 쌀밥에 짙은 양념이 섞이면서 짭조름하고 구수한 냄새가 확 치고 오른다. 가슬가슬하면서도 쫀득쫀득한 식감이 입맛을 제대로 살려준다. 단풍콩잎장아찌를 펴서 밥을 올리고 젓가락으로 집어 먹는다. 약간 질긴 듯 씹히는 콩잎이 씹는 맛을 배가시켜준다. 마치 소고기를 씹는 느낌이다. 잘 익은 멸치젓갈의 진한 풍미도 근사하다. 밥이 쉴 새 없이 꿀떡꿀떡 잘도 넘어간다.
된장콩잎장아찌 또한 짭짤하면서도 달곰하다. 된장콩잎장아찌는 된장에 박아놓고 일 년 내내 먹을 수 있어서 사철 반찬이기도 하다. 뜨끈한 밥과 함께 먹어도 좋겠지만 물에 말아 얹어 먹어도 좋겠다. 이러구러 먹다 보니 밥 한 그릇 뚝딱이다.
예부터 흉년이 들면 백성을 돕기 위한 구황(救荒) 작물로 널리 활용되었던 콩잎. 농업을 근간으로 하던 우리 민족에게는 어렵던 시절 가장 친숙했던 추억이 담긴 식재료이기도 하다. 요즘도 양산의 ‘출향 인사’들이 선호하는 고향 음식 또한 콩잎장아찌라 하니, 그 매력과 위세를 미루어 짐작할만하다.
음식문화칼럼니스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