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무협 소설 대가인 진융(金庸)이 타계했다. 그의 소설은 중국 초중고의 국어 교과서에 두루 수록되어 있고, 진융학이라는 별도의 학문 장르가 성립되어 있기까지 하다. 알리바바의 창업주인 마윈 회장이 진융의 열성 팬으로서 ‘소오강호’의 은둔 고수 ‘풍청양’을 자기의 별명으로 삼고, 알리바바 본사의 회의실을 ‘광명정’으로 명명했다는 것은 비교적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진융은 무협 소설을 통해 불교에 대한 탁월한 안목을 드러낸 것으로도 유명한데, 마윈 회장이 심취한 ‘소오강호’가 특히 그렇다. 유명한 동방불패가 바로 이 소설의 핵심 악인으로 그는 ‘규화보전’이라는 비전의 무공을 익혀 천하제일이 된다. 그의 무공은 너무나 막강해서 주인공을 포함한 4명의 절세고수가 연합전선을 펴도 이길 수 없다. 그런데 이 규화보전은 남성이 남성을 포기할 때에만 익힐 수 있다. 그러니까 동방불패는 천하제일의 무공을 얻기 위해 자기의 남성을 포기했던 것이다. 작가는 이 점을 들어 이 무술을 악의 표징으로 해석한다. 이 세상에 없는 특별한 천하제일의 비법을 설정하고 그것에 집착하는 일을 불교에서는 ‘법집’(法執)이라 부른다. 특별한 비법이 따로 있다면 동방불패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의 이 평범한 나, 나다운 나를 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불교에서는 지금 이것의 밖에 진리가 따로 있을 수 없음을 역설한다. 동방불패는 나의 나다움을 버렸다. 그런 점에서 그는 전형적 사마외도에 해당한다. 안타깝게도 규화보전의 주위에는 자기의 자기다움을 버리고 천하제일의 무술에 집착하는 일군의 무예인들이 출몰한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들이 천하제일의 무공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자기의 모든 것을 잃고 만다.
규화보전의 상대편에 ‘흡성대법’이 있다. 흡성대법은 자신과 만나는 상대의 힘을 흡수해 빼앗는 것을 본질로 하는 무공이다. 동방불패와 원수 사이인 ‘임아행’은 이 무술을 가지고 온 무림을 어지럽힌다. 당연히 임아행은 악의 다른 한 축이 된다. 내가 만나는 것을 나의 것으로 소유하고 이에 집착하는 일을 불교에서는 ‘아집’(我執)이라 부른다. 이 아집은 가장 유치한 단계에서 가장 고급한 단계에 이르기까지 모양을 바꿔가며 살아남아 주위를 파괴하고 각자를 자아파멸의 길로 안내한다.
이 무시무시한 아집과 법집의 사이를 주인공의 ‘독고구검’이 유희한다. 이 검법은 나와 대상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지금 이것에 활짝 열리는 일로 성취된다. 은둔 고수 풍청양은 주인공에게 항상 묻는다. ‘지금 네 앞의 이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이야말로 천변만화로 변하여 들어오는 번뇌의 칼날을 연꽃으로 만드는 묘약이다. 무수히 반복 재생되는 미혹을 그대로 지혜로 만드는 선약이다. 아니나 다를까, 독고구검을 익힌 주인공은 동방불패의 규화보전에 협연을 하는 자세로 상대하고, 임아행의 흡성대법을 가지고 나의 힘을 나눠주는 데 쓴다.
최상의 법이 따로 있지 않고, 천하제일을 주장할 나가 따로 있지 않다. 나를 포함한 이 세상은 완벽하게 꾸려진 합창단이다. 각자 충실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때 아름답게 조화된 화음이 발현된다. 잊지 말자! 내 목소리만 주장하면 흡성대법이고, 화음을 위한다고 내 목소리를 죽이면 규화보전이다.
동의대 교양대학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