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남매 중 막내인 아버지와
- 50명에 달하는 사촌형제
- 고향마을 ‘소식통’ 어머니…
- 소중한 문학자산이자 소설 뿌리
- 농촌마을 어르신들의 삶 이야기
- 그래서 ‘동네 사람’ 모두가 주연
옆집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 다 알면서 살던 시절이 있었다. 좋은 일 궂은 일에 온 동네 사람이 다 나서서 겪어낸 시간이 있었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현실적 관계였다. 성격 별난 사람, 하는 일마다 잘 풀리는 사람, 기구한 사연을 품은 사람, 바람 잘 날 없는 집에서 넉넉하고 인심 많은 집까지 모두 어울려 살았다. 함께 기뻐하며 웃고, 흉도 보고, 소문도 나고, 작은 실수에도 동네 창피하다며 스스로를 삼가던 그때 그 시절 ‘우리 동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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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시 장안구 정자동 서호천변 산책로에서 김종광 작가는 “사촌형제만 50여 명”인 고향 이야기를 들려줬다. |
사는 재미가 오글오글한 사람들 이야기 ‘놀러 가자고요’를 쓴 김종광 소설가를 만났다. 경기도 수원에 사는 그는 “부산에서 여기까지 오시다니…”라며 몇 번이나 말했다. 수원시 장안구 정자동 북수원도서관 앞에서 만난 그는 청년 같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도서관 앞 건널목을 건너면 그가 사는 아파트가 있다. “북수원도서관은 아들과 자주 들러 책을 빌리는 곳이죠. 대략 계산해보니, 우리 세 식구가 십수 년 동안 북수원도서관에서 대출한 책이 3000권쯤 되더라고요. 2005년부터 수원에 사는 동안 가장 많이 간 곳이에요.”
도서관 옆 동남보건대 운동장은 아들과 야구 하는 곳, 그 옆 서호천은 산책하는 곳이다. 도서관, 운동장 가, 서호천을 김종광과 걸었다.
■ 고향 어머니가 펼친 ‘레이더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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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러 가자고요- 김종광·2018·작가정신 |
김종광은 1971년 충남 보령시 청라면에서 태어났다. 초중고를 고향에서 마쳤다. 대천고 다닐 때는 집에서 1시간 버스 통학을 했다. “백일장 같은 것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중2 때부터 글쓰기에 관심을 가졌어요. 고교 때 공부하다 머리 아프면 노트에 소설을 썼어요. 주변 생활 이야기를 쓴 소설이었죠.”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소설 쓰겠다고 고향과 서울을 오가는 동안 새벽 5시부터 일을 시작하는 아버지 뵙기가 민망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글 쓰는 아들을 응원했다. “아버지께서 글만 쓰라고 보령 시내에 방도 구해주셨지요.”
그는 1998년 계간 ‘문학동네’로 등단했고,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희곡이 당선됐다. 소설집 ‘경찰서여, 안녕’ ‘모내기 블루스’ ‘놀러 가자고요’, 중편소설 ‘71년생 다인이’ ‘죽음의 한일전’, 청소년 소설 ‘처음 연애’ ‘조선의 나그네 소년 장복이’, 장편소설 ‘야살쟁이록’ ‘율려낙원국’ ‘별의별’ ‘조선통신사’, 산문집 ‘사람을 공부하고 너를 생각한다’ ‘웃어라, 내 얼굴’ 등을 발표했다. 김종광 소설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청라’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고향과 고향 사람들, 어머니 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에 닿아 있다.
그에게는 사촌 형제만 50여 명이 있다. 아버지가 8남매의 막내인 덕분이다. 사촌 이야기만 써도 소재가 넘쳐나겠다 싶은데, 고향 사람들도 있다. 소설이 사람 사는 이야기라고 할 때, 그들 모두 김종광의 문학적 자산은 아닐까. “어릴 적부터 고향에서 보고 들은 것, 우리 가족 이야기가 작품에 배어 있지요. 요즘은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고향 내려가면 밀린 이야기보따리가 풀리고, 전화를 걸어도 고향 마을에 어떤 일이 생겼는지 이야기해주셔요. 맞장구치면서 재미있게 듣다가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이 있으면 다시 묻고, 그럼 폭포수처럼 이야기가 쏟아져요. 한 문장으로 물어보면 열 문장으로 이야기해주시는 어머니가 저의 문학 가이드입니다.” 소설가 아들을 둔 어머니가 본능적으로 세상을 향해 레이더망을 펼쳐두는 모습이 연상됐다.
■ 청산유수 구구절절 … 모두 주인공
소설집 ‘놀러 가자고요’에도 사람 사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제 소설이 담은 고향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고향 이미지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의 현장입니다. 그 무대가 농촌마을인 겁니다.”
표제작 ‘놀러 가자고요’는 동네 사람을 모아 야유회를 떠나기 위해 전화로 동행 여부를 확인하는 이야기다. 갈 수 있다, 갈 수 없다를 알기 위해 통화하는 동네 사람들의 대화는 저마다 한정 없이 길어진다. 놀러 가자는 주장을 읽어보자, “농사철에 일정 잡았다고 걱정하셨는데요. 노인분들이 농사철 아니면 움직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잖아요. 추우면 추워서 안 되고 더우면 더워서 안 되고 먼지 많아도 안 되고 바람 많이 불어도 안 되고 비 맞아도 안 되고 딱 이맘때밖에 없어요. 괜히 옛날부터 사오월에 놀러 가는 게 아니라고요. 석가모니 부처님도 하필이면 사월 초파일에 딱 맞춰 태어나신 것도 다 까닭이 있다고요. 농사철 중에도 논갈이 끝나고 못자리하기 전에 좀 한가하잖아요. 그래서 딱 그대로 정한 거라고요. 그것도 회장님 혼자 정한 게 아니고 회의에서 여러분이 정한 거라고요.”
누가 이렇게 놀러 가자고 유혹해준다면 못 이긴 척 따라나서고 싶다. 놀러 가지 못하는 이유를 대는 게 더 힘들겠다. 그래도 왜 못 가는지 사연도 구구절절, 애초 이 통화를 왜 시작했는지 목적 상실의 대화들에 웃음이 터진다. 그런데 그 대화 속에 사람들이 이 순간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가 훤히 드러난다. 어디가 아픈지, 집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시시콜콜 보인다. 누군가 이야기 들어줄 사람을 기다린 걸까. 덕분에 전화를 걸고 있는 ‘노인회장 마누라’는 온종일 전화기를 붙들고 있느라 목이 아파올 지경이다.
소설집 속 작품들은 동네 사람들이 번갈아 주연과 조연을 맡는다. 누군가의 인생을 이야기하는 소설에서 슬쩍 등장했던 사람이 다음 소설에서는 당당히 주인공이 돼 자기 이야기를 펼친다. 소설을 읽고 있으면 온 동네에 골고루 뻗어있는 김종광의 시선이 보인다. 그의 소설 안에서는 모두가 돌아가며 한 번은 주인공이 된다. 그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우리가 놀러 온 세상이다.
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