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8년 남목청 사건 당시 추정
- 선명한 총상… 병상서 찍은 듯
백범 김구 선생이 1938년 밀정이 쏜 총탄을 가슴에 맞고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뒤 의연하게 앉아 있는 사진이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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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목청 사건 때 밀정의 총탄을 맞고 수술을 받은 한 달 뒤 의료진과 촬영한 백범 김구(오른쪽) 선생. 가슴 중앙에 보이는 검은 점이 총탄을 맞은 자국으로 추정된다. 부산박물관 제공 |
부산박물관은 지난 3월 기증받은 독립운동가 서영해(徐嶺海,1902년 출생, 1956년 실종) 선생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김구 선생 사진을 발견했다고 14일 밝혔다. 서 선생은 프랑스에서 고려통신사를 설립해 일제 침략의 부당함을 알린 부산 출신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이다. 또 임시정부의 프랑스 외무행서(지금의 대사격)로 활동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구 선생 사진은 서 선생이 생전에 수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구 선생과 이승만 전 대통령의 사진이 담긴 앨범, 프랑스 언론 기고문, 임정과 주고받은 서신 등을 포함한 서 선생 유품 200여 점은 부인인 황순조 전 경남여고 교장이 보관하다 1985년 세상을 떠난 뒤 류영남 전 부산한글학회 회장의 관리를 거쳐 경남여고 역사관에 전시된 것을 지난 3월 부산박물관으로 옮겼다.
사진 속 김구 선생은 상의를 풀어헤친 채 의연한 모습으로 앉아 있다. 가슴 중앙에 보이는 검은 점은 ‘남목청 사건’ 때 밀정의 총탄을 맞은 자국으로 추정된다. 남목청 사건은 1938년 5월 7일 독립운동 세력의 합당을 논의하려고 열린 연회에서 조선혁명당원 이운환이 권총을 쏘아 김구 선생이 크게 다친 것을 말한다. 김구 선생은 중국 장사 상아병원으로 옮겨졌고, 사진은 수술과 한 달여 치료 후에 촬영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를 설명한 ‘백범일지’를 보면 김구 선생이 소생할 가망이 없어 의사들이 응급처치도 하지 않고 사망 소식을 알리는 전보를 쳤는데 4시간이 지나도 살아 있자 의사들이 치료하기 시작했다는 내용이 있다. 피격 이후 김구 선생의 모습은 글로 전해졌지만 사진 자료가 공개된 적은 없었다. 김구 선생은 사건 이후 임정 국무회의에서 내무·국방·외교 등 전권을 쥐는 주석으로 선출됐다.
부산박물관은 내년 4월께 3·1운동과 임정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을 마련해 서 선생 유품과 김구 선생 사진 등을 일반에 공개할 계획이다. 또 정상천 박사(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운영지원과장)는 내년 2월 서 선생 일대기를 다룬 ‘파리의 외교 독립운동가 서영해’를 산지니 출판사에서 낼 예정이다.
이해련 부산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서 선생 유품을 정리하던 중 김구 선생의 사진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며 “내년 특별전에서는 김구 선생의 사진과 함께 희귀한 자료가 공개돼 많은 관심을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희국 기자 kuki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