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책 읽어주는 여자] 긴 겨울밤도 체호프의 유쾌한 단편이면 짧아져요 /강이라

체호프 단편선 - 안톤 체호프 지음·박현섭 옮김/민음사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12-21 18:53:27
  •  |   본지 14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러시아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 안톤 체호프의 단편 10편 수록

- 인생의 단면과 부조리한 것들

- 간결하고 시니컬한 문체로 표현

- 고전은 읽기 어렵단 생각 사라져


‘고전(古典)’이란 무엇일까요? 사전적인 의미는 이렇습니다. 예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시대를 초월하여 높이 평가되는 예술작품. 그렇다면 우스갯소리로 알려진 ‘고전’의 뜻은 어떨까요. 누구나 알고 줄거리도 대충 알고 있지만 읽어본 적은 없는, 그럼에도 꼭 읽은 것만 같은 작품. 공감하세요?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전쟁과 평화 그리고 구운몽, 춘향전 등이 적당한 예가 되겠지요. 날이 부쩍 추워졌습니다. 올겨울엔 멋진 고전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요. 방은 아늑하고 의자는 푹신합니다. 따뜻한 차로 몸을 데웁니다. 부담스럽지 않게 단편집이면 좋겠고 겨울이니까 눈이 많은 나라의 소설이 어울리겠지요. 그렇다면 당연히, 안톤 체호프입니다.

   
이 책에 실린 첫 소설은 ‘관리의 죽음’입니다. 간신히 3장입니다. 너무 짧아 당황하셨나요? 줄거리랄 것도 없습니다. 오페라 공연을 보던 주인공 이반이 재채기를 하는 바람에 앞에 앉은 장군의 목덜미로 침이 튑니다. 바로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했음에도 이반은 장군이 여전히 화가 났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무실과 집으로 찾아가 계속 용서를 구하는 이반에게 장군은 불같이 화를 내고 집으로 돌아온 이반은 그만, 죽고 맙니다. “그는 관복을 벗지 않은 채로 소파에 누웠다. 그리고…… 죽었다.” 이런 황당한 결말이라니요. 그런데 이상하게 화가 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반처럼 이해받지 못해 불안했던 순간이 생각납니다. 괜찮다고 말하지만 괜찮지 않은 얼굴의 많은 사람들. 내 맘 같지 않은 타인의 마음. 인간 본성의 정곡을 찌르는 체호프식 유머는 의학 공부를 하면서 생계를 위해 유머 단편을 몇백 편씩 써야만 했던 체호프의 초기 단편들의 특징입니다. 습작 희곡을 2막이 넘도록 낭독하는 손님을 견디지 못해 죽여버리고 후련해하는 작가가 나오는 ‘드라마’도 비슷합니다. “배심원들은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라는 마지막 문장에서 우리는 주인공의 비인륜적 행위에 분노하기보다는 오죽하면 그랬겠어, 라며 체호프의 시니컬한 표현에 내심 동조합니다.

필명을 사용하던 유머 단편의 시절과 결별한 체호프는 본명으로 소설을 발표하며 현대 단편의 모범으로 불리는 걸작들을 쏟아냅니다. 허영과 어리석음의 삶을 살던 올가가 남편의 죽음 이후 뒤늦게 인생을 돌아보는 ‘베짱이’, 남녀 간의 미묘한 감정 차이를 겨울 숲을 배경으로 서정적으로 그려낸 ‘베로치카’, 슬픔을 불러일으키는 아름다움에 대한 사유를 담은 ‘미녀’를 비롯한 열 편의 단편이 이 책에 실려 있습니다. 마지막에 실린 ‘주교’는 체호프가 죽기 바로 2년 전에 쓴 작품입니다. 죽음을 감지한 체호프는 소설 속 주교의 모습에 자신을 깊게 투영합니다. 평생을 성직자로 살았지만 그 삶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로 남았는지에 대해 고뇌하고 자신의 죽음과 상관없이 이어질 남은 이들의 삶을 생각하며 생사의 유의미를 찾던 주교가 죽음에 이르러 이렇게 외칩니다. 마치 체호프처럼. “정말 좋다!”

1904년, 희곡 ‘벚꽃 동산’의 초연을 끝낸 체호프는 장결핵으로 사망합니다.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이히 슈테르베(Ich sterbe)” 즉 “나는 죽는다”’란 독일어였습니다. 간결한 문장의 대가답게 마지막 말도 체호프답습니다.

동짓달 기나긴 밤의 한 허리를 베어 두었다가 님이 올 때 굽이굽이 펴리라던 황진이의 시처럼 올겨울은 길고 깊을 것입니다. 님을 기다리는 길고 긴 겨울밤을 채워 줄 러시아 소설을 준비해 보세요.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로 시작하기에는 좀 부담스럽겠지요. 삶이란 비극을 슬픈 희극으로 풀어내고 삶의 모순과 부조리를 직관하던 체호프의 소설이 맞춤합니다. 러시아 소설은 등장인물의 이름이 너무 길어 힘드시다고요. 걱정하지 마세요. 단편의 대가, 우리의 체호프 씨는 소설 속 인물들의 이름도- 비교적- 짧게 지었으니까요. 소설가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현금 쌓아놓고 34억 체납 지광(국제신문 대주주), 국세청 나서라”(종합)
  2. 2분당 라면 600개…농심 부산수출공장 가동
  3. 3與 부산 지역위원장 출신, 공공기관 임원 잇따라 꿰차
  4. 4국제신문 회생, 민주노총과 연대…부산 女NGO·사하구의회 힘보태
  5. 5李 ‘친노 중용’ 승부수…여권 통합·PK 공략 두 토끼 잡기
  6. 6영도 해양박물관 앞 산책로, 넉달째 쑥대밭
  7. 7지방의회 아래 선출직 주민의회…술집 개업 등 찬반 권한
  8. 8창원 제2국가산단 3년 표류 마침표?
  9. 9대원 물릴까, 10초 고뇌 끝 불길 속으로…항공기 폭발 막아
  10. 10[한 손 뉴스] 기장 문오성마을 어르신들, 트롯그룹 결성 자작곡 발매
  1. 1“현금 쌓아놓고 34억 체납 지광(국제신문 대주주), 국세청 나서라”(종합)
  2. 2與 부산 지역위원장 출신, 공공기관 임원 잇따라 꿰차
  3. 3李 ‘친노 중용’ 승부수…여권 통합·PK 공략 두 토끼 잡기
  4. 4지방의회 아래 선출직 주민의회…술집 개업 등 찬반 권한
  5. 5장외로 나간 국힘 “李, 본인 사건 특검 임명…끌어내려야”(종합)
  6. 6“주민자치회 활성 위해 獨·스코틀랜드와 같이 정책반영 기반 필요”
  7. 7與 “내란잔당 국힘 후안무치…탄핵 거론 제정신 아냐”
  8. 8국힘 “이용철, 대장동 숨은 설계자” 민주 “법조 베테랑…법무장관 적격”
  9. 9靑 국정상황실장에 울산 연고 김태근 비서관, 2기 참모진 개편 PK 전면에
  10. 10오세훈, 증시 폭락 직격... “국민연금으로 지방 선거용 주식도박"
  1. 1분당 라면 600개…농심 부산수출공장 가동
  2. 2밤바다에 핀 불꽃 8만 송이…120만 명 홀렸다(종합)
  3. 3HUG 10개월 만에 또 수장 공백…당분간 대행체제 불가피
  4. 4외국인, 올해 1~9월 부산서 카드 1조원 넘게 썼다(종합)
  5. 5정지선 훠궈, 전주 명물 칼국수…롯데百 맛집에 외국인도 줄선다
  6. 6폭락장 반대매매 막아라…신용융자 담보비율 의무 면제(종합)
  7. 7‘블루 쓰나미’ 충격 여전…美기술주 반등에도 코스피 안갯속(종합)
  8. 8국산화·지역 상생 앞세워 해상풍력 박차
  9. 9신세계 센텀 ‘라이다’ 팝업 오픈
  10. 10해군·해병대 AX 거점, 부산에 ‘둥지’
  1. 1국제신문 회생, 민주노총과 연대…부산 女NGO·사하구의회 힘보태
  2. 2영도 해양박물관 앞 산책로, 넉달째 쑥대밭
  3. 3창원 제2국가산단 3년 표류 마침표?
  4. 4대원 물릴까, 10초 고뇌 끝 불길 속으로…항공기 폭발 막아
  5. 5[한 손 뉴스] 기장 문오성마을 어르신들, 트롯그룹 결성 자작곡 발매
  6. 6부울경 비 내리며 기온 뚝(종합)
  7. 7고령면허 자진반납땐 최대 30만 원…7534명 ‘응답’
  8. 8광안동 인도 돌진 벤츠 운전자 2심 법정구속
  9. 9탐방 허용-자연보전 통제 ‘절묘한 균형’…100년 지킨 원칙
  10. 10오늘의 날씨- 2026년 11월 9일
  1. 1“국제신문 골프대회, 아마추어 골프 발전의 든든한 버팀목 되길”
  2. 2가을이 물든 필드…아마골퍼 300여 명 ‘열정·화합의 샷’
  3. 3남자부 A조 어정우 씨 “뜻밖의 우승…양산과의 인연 감격”
  4. 4여자부 우승자 황은경 씨 “매번 새로워…건강하게 오래 즐기고파”
  5. 5남자부 B조 홍정삼 씨 “퍼트 감각 빛나…목표는 A부 우승”
  6. 6‘승률 98.6%’ 배드민턴 안세영,사상 첫 2시즌 연속 11승
  7. 7삼성, 12년 만에 한국시리즈 정상 탈환…통산 9번째 우승
  8. 8승부는 원점…‘홈런 공장’ 대구서 거포들의 전쟁
  9. 9페이즈 신들린 블로킹 9개…읏맨, 시작부터 웃었다
  10. 10태권도, 北 전통무술로 각인될라
우리은행
얼굴에 담긴 이야기
자연에는 길흉이 없다
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여수 ‘돌산 갓김치’와 갓김치 음식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노동 운동부터 계엄까지…예술로 사회문제 비추다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김민우의 인서트 [전체보기]
비밀이 사라진 섬, 농담으로 건네는 회한
응원하고 함께하는 마음
문화레시피 [전체보기]
재일동포들 고국 그리며 전승한 예술, 부산서 원없이 펼쳤다
‘부산 커넥티드’…9.5 대 1 뚫은 신인 작가 10팀 한자리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알쏭달쏭 한자어 오독 소동 外
아이마다 다르게 자라는 이유 外
박현주의 책 이야기 [전체보기]
노력과 성공은 비례하는가…현대사회 씁쓸한 이면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참사…더 심각해진 기후 재난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변대용-The Flowers’ Stroll
장 마리 해슬리-Gymnopedies(짐노페디)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극락암 벚나무 /홍종원
곰 두 마리 /황인숙
주말 영화 박스오피스 [전체보기]
누적 250만 넘은 ‘치이카와’ 4주째 1위…브래드 피트 ‘하트 오브 비스트’ 2위
‘치이카와’ 3주째 정상…관객 200만 돌파 올해 열 번째 영화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6년 11월 9일 (음 10월 1일)
오늘의 운세- 2026년 11월 5일 (음 9월 26일)
오늘의 BIFF [전체보기]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4일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3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단풍잎이 봄꽃보다 붉다고 읊은 당나라 두목의 시
깊어가는 가을에 밤하늘 별을 읊은 이덕무의 시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