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 안톤 체호프의 단편 10편 수록
- 인생의 단면과 부조리한 것들
- 간결하고 시니컬한 문체로 표현
- 고전은 읽기 어렵단 생각 사라져
‘고전(古典)’이란 무엇일까요? 사전적인 의미는 이렇습니다. 예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시대를 초월하여 높이 평가되는 예술작품. 그렇다면 우스갯소리로 알려진 ‘고전’의 뜻은 어떨까요. 누구나 알고 줄거리도 대충 알고 있지만 읽어본 적은 없는, 그럼에도 꼭 읽은 것만 같은 작품. 공감하세요?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전쟁과 평화 그리고 구운몽, 춘향전 등이 적당한 예가 되겠지요. 날이 부쩍 추워졌습니다. 올겨울엔 멋진 고전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요. 방은 아늑하고 의자는 푹신합니다. 따뜻한 차로 몸을 데웁니다. 부담스럽지 않게 단편집이면 좋겠고 겨울이니까 눈이 많은 나라의 소설이 어울리겠지요. 그렇다면 당연히, 안톤 체호프입니다.
이 책에 실린 첫 소설은 ‘관리의 죽음’입니다. 간신히 3장입니다. 너무 짧아 당황하셨나요? 줄거리랄 것도 없습니다. 오페라 공연을 보던 주인공 이반이 재채기를 하는 바람에 앞에 앉은 장군의 목덜미로 침이 튑니다. 바로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했음에도 이반은 장군이 여전히 화가 났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무실과 집으로 찾아가 계속 용서를 구하는 이반에게 장군은 불같이 화를 내고 집으로 돌아온 이반은 그만, 죽고 맙니다. “그는 관복을 벗지 않은 채로 소파에 누웠다. 그리고…… 죽었다.” 이런 황당한 결말이라니요. 그런데 이상하게 화가 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반처럼 이해받지 못해 불안했던 순간이 생각납니다. 괜찮다고 말하지만 괜찮지 않은 얼굴의 많은 사람들. 내 맘 같지 않은 타인의 마음. 인간 본성의 정곡을 찌르는 체호프식 유머는 의학 공부를 하면서 생계를 위해 유머 단편을 몇백 편씩 써야만 했던 체호프의 초기 단편들의 특징입니다. 습작 희곡을 2막이 넘도록 낭독하는 손님을 견디지 못해 죽여버리고 후련해하는 작가가 나오는 ‘드라마’도 비슷합니다. “배심원들은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라는 마지막 문장에서 우리는 주인공의 비인륜적 행위에 분노하기보다는 오죽하면 그랬겠어, 라며 체호프의 시니컬한 표현에 내심 동조합니다.
필명을 사용하던 유머 단편의 시절과 결별한 체호프는 본명으로 소설을 발표하며 현대 단편의 모범으로 불리는 걸작들을 쏟아냅니다. 허영과 어리석음의 삶을 살던 올가가 남편의 죽음 이후 뒤늦게 인생을 돌아보는 ‘베짱이’, 남녀 간의 미묘한 감정 차이를 겨울 숲을 배경으로 서정적으로 그려낸 ‘베로치카’, 슬픔을 불러일으키는 아름다움에 대한 사유를 담은 ‘미녀’를 비롯한 열 편의 단편이 이 책에 실려 있습니다. 마지막에 실린 ‘주교’는 체호프가 죽기 바로 2년 전에 쓴 작품입니다. 죽음을 감지한 체호프는 소설 속 주교의 모습에 자신을 깊게 투영합니다. 평생을 성직자로 살았지만 그 삶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로 남았는지에 대해 고뇌하고 자신의 죽음과 상관없이 이어질 남은 이들의 삶을 생각하며 생사의 유의미를 찾던 주교가 죽음에 이르러 이렇게 외칩니다. 마치 체호프처럼. “정말 좋다!”
1904년, 희곡 ‘벚꽃 동산’의 초연을 끝낸 체호프는 장결핵으로 사망합니다.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이히 슈테르베(Ich sterbe)” 즉 “나는 죽는다”’란 독일어였습니다. 간결한 문장의 대가답게 마지막 말도 체호프답습니다.
동짓달 기나긴 밤의 한 허리를 베어 두었다가 님이 올 때 굽이굽이 펴리라던 황진이의 시처럼 올겨울은 길고 깊을 것입니다. 님을 기다리는 길고 긴 겨울밤을 채워 줄 러시아 소설을 준비해 보세요.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로 시작하기에는 좀 부담스럽겠지요. 삶이란 비극을 슬픈 희극으로 풀어내고 삶의 모순과 부조리를 직관하던 체호프의 소설이 맞춤합니다. 러시아 소설은 등장인물의 이름이 너무 길어 힘드시다고요. 걱정하지 마세요. 단편의 대가, 우리의 체호프 씨는 소설 속 인물들의 이름도- 비교적- 짧게 지었으니까요.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