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왕’(2018·사진)은 두 갈래의 욕망이 한데 어지러이 뒤엉켜 있는 영화다. 부산의 마약왕 이황순의 실화로부터 모티브를 얻은 감독은 1970, 1980년대 한국 근현대사를 되짚어 다루는 사회파 영화를 추구하는 한편으로는, ‘스카페이스’(1983)와 같은 과거 갱스터물의 로망을 한국영화의 자장 안에서 재현하려는 욕망 또한 놓치지 않으려 한다. 짐작건대 이 영화는 한 범죄자의 성공과 몰락에 관한 범죄 서사시를 유신 시대라는 배경에 투사하며 정치적 이슈와 장르의 스타일을 동시에 가져가겠다는 의도의 소산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극의 리얼리즘과 장르물의 오페라적 과장 사이를 오가던 영화는 스스로 갈 길을 잃고 미궁에 빠지고 만다.
범죄자의 돈과 유착한 국가 권력의 부패를 그리며 ‘내부자들’(2015)에서 피력한 기득권 카르텔의 역사적 대응물을 찾고자 함인가, 아니면 인생의 상승곡선을 그리며 승승장구하던 범죄자가 자신이 구축한 왕국과 함께 파멸하는 피카레스크 로망(Picaresque Roman: 악인의 일대기를 그리는 통속 소설)을 표방함인가? ‘마약왕’의 지향점은 전혀 다른 곳에 있어 보인다. 우민호 감독의 관심은 인물과 시대에 대한 해석보다는, 이야기를 핑계 삼아 배우와 미장센의 이미지들을 ‘전시’하며 장르의 외양을 과시하려는 자아도취적 페티시즘에 방점이 찍혀있다.
윤태호의 만화 원작에 기댄 ‘내부자들’에서는 적어도 이야기의 한 단락을 분명하게 매듭짓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서사의 계단을 점층적으로 쌓아가는 안정감이 있었다. 그러나 ‘마약왕’에서 감독은 최악의 수를 둔다. 내용의 대략을 전달하는 기능만 간신히 유지하는 선에서, 인물의 동기와 내적 변화의 묘사를 대거 축소하고 편집해 들어내 버린 것이다. 컷의 연결은 매끄럽지 못하고 극의 인과와 감정선은 대충 얼버무리고 널뛰기를 거듭한다. 우리는 이두삼이 기업형 범죄자로 변모하며 군사정권과 밀월관계를 맺는다는 내용의 전말은 알 수 있지만, 설득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이러한 식의 스토리텔링을 쉬이 납득하긴 어렵다.
남은 건 연기하는 배우의 얼굴과 현란한 미장센이지만, 서사의 핍진성과 논리가 망가진 상태에서 배우의 열연과 몇몇 장면의 기술적 세공력은 도리어 응집력을 잃고 겉도는 느낌을 준다. ‘마약왕’의 근본적인 문제는 이미지들이 의미의 심도, 명료한 주제 의식을 조형하는 데 헌신하지 못하고 단면적인 구경거리로서만 ‘낭비’된다는 데 있다. 우리는 송강호가 열연하고 있다는 사실을 목격할 수는 있지만, 정작 그가 연기하는 이두삼이 어떤 인물이며 그가 함축하는 시대성이 무엇인지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유신정권의 종식을 알리는 시위 현장은 단지 암살 장면을 장식하는 혼란스러운 배경, 잠시 스치는 ‘풍경‘으로서만 기능할 뿐, 어떠한 정치적 상징성도 담보하지 않는다. 배우의 얼굴, 재현된 역사의 공간 이미지는 그저 일차원적 수준의 연출과 오락을 위해 억울하게 끌려 나와 착취당하고 있을 뿐이다.
배우의 연기와 근사한 이미지의 전시가 서사의 방만함과 연출의 결함을 메울 수 있다는 그릇된 믿음을 밀고 나간 결과는 사유도, 영화적 성취도 담기지 않은 채 소비되는 텔레비전 드라마의 140분 어치 총집편에 지나지 않는다. ‘내부자들’에서부터 전조를 보인 이미지의 ‘낭비’, 소재에 대한 해석의 빈곤함은 종국에 극대화되어 ‘마약왕’이라는 재앙을 낳았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