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역에 나가보면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란 팻말을 들고 예수를 믿으라고 외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그 사람을 보면 예수를 믿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그 사람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신앙에 대한 해석이 복음의 내용과는 참 다르기 때문이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모두 예수님으로 구원받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믿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하느님의 나라는 죽어서 가는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고,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는 그 사람도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가 이 세상에 왔다고 가르친다. 이 가르침에 따라 하느님의 구원을 바라는 이들은 이 세상에 온 하느님 나라를 바라고 찾아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이 세상에 오게 했는데,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사람들이 그 나라를 저세상, 내세로 보내버려서야 되겠는가.
 |
|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 성베드로 성당에서 열린 부활절 전야 미사에서 한 어린이에게 세례를 주고 있다. 국제신문 DB |
인간의 구원을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삶은 십자가 위의 처참한 죽음으로 끝이 났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의 십자가상 죽음은 끝이 아니요 새로운 시작이며, 구원이요 생명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스승의 처참한 죽음을 보고 두려움에 떨면서 예수님을 버리고 떠났던 제자들이었다. 이들은 주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고서는 자신들도 예수님의 가르침과 모범대로 남을 위해서 자신을 바치는 삶을 살기로 다짐한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들 역시 예수님을 향한 믿음 때문에 목숨을 바쳤다. 이런 제자들의 믿음을 받아들여 남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치는 삶을 생명이라고 믿으며, 그 삶을 살기로 선택한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인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교에 입문하는 예식인 세례를 받으면서 이 믿음을 고백하고 있다. 왜냐하면 세례 예식은 자신을 위해 살아온 삶은 십자가에 못 박고 남을 위해 자신을 죽이는 삶, 곧 부활한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예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례를 받은 사람은 누구나 남을 위해 자신을 죽이는 삶을 살아내야 한다.
 |
그러나 이러한 삶은 마음만 먹는다고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배우고 익혀야 한다. 남의 도움도 받아야 하고 기도도 해야 한다. 그래서 남을 위해 살겠다는 사람들의 모임에 나와서 우리 생명의 양식이 되어주신 주님의 몸을 받아먹고 자기를 죽이는 삶을 조금씩 배워가야 한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자. 남을 위해 자신을 바치겠다는 사람들의 모임, 이 공동체가 아름답지 않은가. 이런 아름다운 공동체가 비록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이 세상에 온 하느님 나라의 모습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믿음으로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은 이미 하느님 나라에 들어선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 공동체 안에서 자기를 죽이는 것을 익히는 만큼,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 하늘과 새 땅’(묵시21, 1)을 체험하게 된다. 또한 이를 통해 자신 안에 하느님의 나라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예수 천당’을 자신 있게 외칠 수 있고, 남을 위해 자신을 죽이는 성숙한 삶을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들도 이 아름다운 삶으로 초대하게 되는 것이다.
부산가톨릭평화방송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