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정·예산·인맥에 가로막힌
- 기성 무용계에 대한 아쉬움
- 거리마다 넘쳐난 춤으로
- 생동감 느끼고 위로 받아
- 새해 건강한 공동체를 위해
- 서로 손잡고 발전해나가길
황금돼지해라 그런지 온몸에 금칠한 돼지 사진이 여기저기서 날아든다. 이미지에서 잠시 위안을 얻고 싶을 만큼 팍팍한 현실을 역설적으로 알리는 것 같아 웃다가도 서글픈 마음이 든다. 풍족한 세상에서도 그것을 누리기 힘든 춤판이 황금돼지의 웃음에 가려진 기해년에는 어떨지 걱정스럽다. 새해 전날 12월 31일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책임규명 이행 종합보고회’를 할 것이라며 급하게 예술인을 불러 모았다. 해를 넘기지 않고 일을 마무리하겠다는 문체부의 일방적 의도만 확인하였고,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열 일 제치고 뛰어간 예술인들은 좌절과 분노를 느꼈다. 기해년은 그 틈에 찾아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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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9월 8일 부산 동래문화회관 야외공연장에서 열린 야외 춤 공연 ‘춤으로 거닐다’를 통해 선보인 김소정 안무의 ‘찌질이들의 세상’.
사진가 박병민 제공 |
지난해 부산 기성 무용계는 늘 그렇듯 몇 개 연례행사를 치렀다. 제27회 부산무용제, 제14회 부산 국제무용제, 제11회 부산 국제 즉흥 춤 축제, 제22회 새 물결 춤 작가전 등이다. 한참 더위가 기승을 부린 7월 국립부산국악원은 영남춤 축제를 한 달 동안 개최했다. 이 행사들은 상대적으로 많은 예산과 조직을 소비하지만, 그 효과에 대해서는 어떤 검증도 없다. 예를 들어 올해 부산무용제 경연에 단지 세 팀이 참가했는데, 이 상황의 심각성에 대해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또 한 가지, 지난해 처음으로 부산문화재단은 개인 춤 공연을 뽑아 지원했다. 여덟 개 작품이 선정됐고 지원금은 편당 400만 원이다. 여덟 편 중 여섯 작품을 보았고, 이 중 세 작품에 대한 리뷰를 썼다. 여섯 작품 모두 예산이 400만 원을 훌쩍 넘었다. 어렵게 얻은 공연 기회에 춤꾼들은 개인 돈과 인맥을 있는 대로 동원하고 작품에 온 힘을 쏟아부었다. 돈과 인맥은 모두 빚으로 고스란히 남는다. 이런 노력의 뒤에 작품에 대한 비평이나 평가가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에서는 e나라 시스템이 400만 원에 대한 정교한 정산을 요구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정산 과정에 실수가 있으면, ‘행정 점수가 깎인다’는 답이 돌아온다. 부산 기성 무용계의 2018년은 변함없이 안정적이고 고요했고, 개인의 눈물겨운 분투는 달라지지 않았다.
정체한 기성 춤판과 달리 거리 춤과 춤의 현실 참여는 단연 활기를 띠었다. 몇 년 전부터 예술적 개념으로 정리해서 제시하지 못하고 자연과학에서 급하게 빌려 온 융·복합, 다원이란 유령이 예술계에 떠돌기 시작했다. 융·복합과 다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공연예술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무대에서 실패한 것을 무대 밖에서 어찌해보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공연예술의 시작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저잣거리였다. 공연예술이 극장으로 들어간 것은 전체 공연예술의 역사 중 최근 일이다. 그러니 거리로 나온 것은 사실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덕분에 부산 곳곳에 춤과 음악이 흘렀다. 사람들은 우연히 춤과 음악을 만나 기꺼이 머물렀다. 함께 노래하고 덩실거리고 손뼉 쳤다. 무대 공연에서 일어나기 힘든 풍경이다. 거리로 나온 춤이 흥을 돋우기만 한 것은 아니다. 날씨와 환경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회 쟁점이 된 현장에서 현실의 모순을 드러내 보는 이들을 고민하게 했다. 슬픔의 이유를 묻고 아픔을 나누어주었다. 아직 거리 춤에 대한 개념을 정확하게 잡지 못한 경우가 보이지만 거리의 춤, 참여의 춤은 기성의 다른 편에서 춤의 외연을 조금씩 넓히고 있다.
부산은 거리 춤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부산 춤을 대표하는 동래와 수영야류(들놀음)는 거리의 춤이다. 거리 춤은 일상의 공간을 연희의 공간으로 탈바꿈시켜 삶과 놀이와 예술이 본디 하나임을 깨닫게 한다. 거리에서는 실재가 아닌 것의 결이 쉽게 드러나고, 현실의 안팎에서 작동하는 장치의 거친 모습이 백일하에 밝혀진다. 건강한 공동체는 이렇게 드러난 모순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하지만, 우리 현실 곳곳에는 공동체의 건강을 해하는 억압이 가득하고 모순은 미로처럼 꼬여만 간다. 현실의 얽힌 미로에서 벗어나게 할 아리아드네의 실은 무엇일까. 해답은 역시 춤이 아닐까 싶다.
기성의 안정과 거리의 활력이 손잡고 춤추는 기해년을 위하여!
춤비평가·민주주의사회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