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방·산업화 거치며 부산 정착한 이주민
- 고향의 식재료·조리법으로 설 음식 장만
- 떡국 육수도 지역·출신별 각양각색
- 경남 출신은 멸치, 내륙 출신은 고기로
- 쌀 귀했던 이북 만둣국 먹던 전통 이어져
- 산적 재료도 돔배기·군소·전복 등 다양
우리 민족 고유의 명절을 꼽으라면 대표적으로 설날과 정월대보름, 추석, 동지 등이 있다. 그 절기에 따라 무병장수와 발복, 풍성한 수확을 기원하는 것인데, 명절 때마다 각각의 계절에 맞는 음식을 만들어 함께 나눠 먹는 풍습이 전해져 왔다.
■떡국, 식재료·지역 따라 천차만별
설날에는 떡국, 정월대보름에는 묵은 나물에 복쌈, 추석에는 햅쌀밥과 과일, 동지에는 팥죽 등이 있겠다. 각각의 음식에는 그 계절의 영양 측면을 고려하기도 했지만, 기복(祈福)과 벽사(辟邪)의 의식 또한 가볍지 않게 깔려 있었다.
새해 첫날인 설날에 먹는 떡국 또한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음식이다. ‘동국세시기’의 기록에 의하면 ‘떡국(餠湯)’은 ‘멥쌀가루를 쪄 떡판 위에 놓고 떡메로 무수히 찧어 길게 늘여 만든 흰떡을, 얇게 동전 같이 썰어 장국에다 넣고 쇠고기나 꿩고기로 끓인 후 고춧가루를 쳐서 먹는 음식’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 하여 첨세병(添歲餠)이라 부르기도 했다.
떡국의 재료인 가래떡은 길게 이어진 떡이라 무병장수를 기원하고, 희고 깨끗한 떡(白餠)으로 만들어 먹기에 새로운 한 해를 정결하게 맞이하는 음식이며, 떡을 동전처럼 썰어 먹음으로써 새해에도 재복을 기대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팔도마다 조리법이나 식재료들이 조금씩 다른 떡국은 충청도의 ‘날떡국’, 전라도의 ‘닭장떡국’, ‘두부떡국’, 강원도의 ‘만두떡국’, 경상도의 ‘굴떡국’ 등이 대표적이다. 지역에 따라 떡국 대신 만둣국을 먹는 곳(이북 지방)도 있고, 떡국과 만두를 함께 넣어 먹는 곳(강원도 지방)도 있다.
설날에 먹는 음식이라면 떡국 외에도 전, 산적, 강정, 수정과와 단술 등이 있다. 지역마다 음식의 종류는 크게 다를 바 없지만, 그 조리법과 식재료는 다양하다. 부산의 설날 음식 또한 그렇다. 게다가 그 조리법과 식재료는 거의 전국의 설음식을 다 망라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떡국만 하더라도 가래떡을 동전처럼 동그랗게 썰어서 준비하는 집과 타원형으로 길쭉하게 썰어 준비하는 집이 있다. 육수도 소고기를 중심으로 진하고 감칠맛 나게 장만하는가 하면, 멸치나 해산물로 시원하고 깔끔하게 내는 집도 있다. 소고기 육수는 경북, 중부 이북 지역이, 멸치는 경남 남해안 지역의 집들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맹물에 장국으로만 간을 내는 집도 더러 있다.
전국 각 지역의 특산 식재료를 넣어 함께 끓여 먹기도 하는데, 서부 경남의 굴과 전라도의 매생이 등을 넣어 ‘굴 떡국’‘매생이 떡국’ 등으로 먹기도 하고, 낙동강 하구에 연한 강서지역에는 김으로 ‘김 떡국’을, 기장지역에는 미역으로 ‘미역 떡국’을 먹는 집들도 있다.
■이북 피란민들은 만둣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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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날 떡국 |
산적 또한 지역별 식재료가 다 모였다. 영남 내륙 ‘상어 돔배기’, 경상도 해안지역 ‘문어’, 부산 ‘군소’, 제주도 ‘전복’, 전라도 ‘가오리’, 강원도 ‘명태’ 등이 있겠다. 강정 또한 쌀, 콩, 땅콩, 깨, 호박씨 등 다른 지역에 비해 다양한 종류를 망라하고 있다.
특히 이북 피란민들이 부산에 정착하면서 뿌리내리거나 파생한 이북 음식들 또한 부산에서는 중요한 음식문화로 남아 있다. 냉면과 밀면, 돼지 수육과 돼지국밥, 만두와 빈대떡 등이 그것이다.
함경남도 문천(원산 부근)에서 한국전쟁 때 피난 내려온 김충진(77) 서양화가를 만나 이북의 설날 음식에 대해 들어보았다. 그는 명절에 빠지지 않는 음식으로 만둣국, 돼지고기 수육, 빈대떡을 꼽았다. 이북에는 쌀이 귀해 떡국 대신 만둣국으로 설음식을 대신한다고. 그 때문에 손님이 찾아오면 만둣국을 대접하고 돼지고기 수육, 빈대떡 등으로 술상을 차리고, 콩으로 만든 강정과 단술, 수정과 등으로 다과상을 차려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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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북의 설날 음식 만둣국 |
특히 만둣국은 겨울이면 늘 먹는 주식 중 일부였단다. 그 때문에 한 번에 가족이 두어 달 먹을 정도의 만두를 미리 만들어 두는데, 김 화백의 집에서는 한 번에 150여 개 정도를 만들었다고. 만두를 만들 때는 온 식구가 모여서 만드는데, 홍두깨로 반죽을 밀어 만두피를 만드는 일은 주로 남자들이, 소를 넣어 만두를 빚는 일은 여자들이 담당했다. 만두소는 두부, 배추, 숙주나물, 돼지고기, 꿩고기 등을 다져서 넣고, 육수는 장국에 돼지고기, 꿩고기, 닭고기 등을 넣어 장만했다고 한다.
김 화백 가족은 지금까지도 이북에서의 음식문화를 계속 이어오고 있다. 음식 조리법은 큰며느리에서 큰며느리로 계속 이어져 오며 전수받아야 할 가문의 음식문화 유산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전국 설음식의 부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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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삿밥 |
이처럼 부산의 설음식은 전국의 다양한 설음식들이 한데 어우러져 한 상 가득 차려지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이는 ‘부산’이 전국 각 지역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이주민의 도시’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때문에 부산은 다양한 지역의 생활관습과 문화가 혼재하면서도 서로 통용되는 ‘다양성의 사회’이기도 하다. 그러하기에 음식 또한 여러 지역의 문화를 반영하여 발현되고 있다. 각 지역 전통의 음식이 부산식으로 변화, 현지화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해방공간, 한국전쟁, 산업화 시대를 지나며, 부산으로 이주하여 정착한 현재의 ‘부산 사람’들이, 고향의 음식들로 차려놓은 ‘푸짐한 밥상’이 현재 우리의 ‘부산 음식’인 것이다. 하여 부산의 음식을 들여다보면 전국에 모든 음식의 원형을 유추해 볼 수가 있다. 그러하기에 부산의 명절 음식 또한 다양하기도 하거니와 그 식재료나 조리법 또한 이주 지역의 음식문화에 따라 다양하게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부산은 바야흐로 ‘미식의 도시’로 한 발 더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최원준 음식문화칼럼니스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