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형문화재 배연신굿 보유자
- 무속인 김금화 선생 최근 타계
- 관객 참여·공유 공간 중시하고
- 비물질적 관계짓기 굿으로 실현
- 동시대 예술인은 귀감 삼아야
얼마 전 우리는 현대사의 질곡과 민중의 팍팍한 삶을 고스란히 껴안고 신과 인간의 매개자 역할에 충실했던 무속인이자 예술가 한 명을 잃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82호 서해안 배연신굿과 대동굿’ 보유자 김금화 만신(萬神)이 지난달 23일 88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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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월 27일 국립부산국악원에서 새해맞이 굿 공연을 하는 김금화(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만신. 국제신문 DB |
만신은 여성 무속인을 높여 부르는 호칭이다. 김금화 만신은 17세(1948년)에 내림굿을 받고 1985년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지정됐다. 무속 의례의 문화·예술적 가치를 일찍 자각해 자신의 방대한 지식과 기예를 책으로(‘김금화 무가집’ 1995년·문음사) 냈고, 예술성을 인정받아 수많은 해외 초청 공연을 치렀다. 또한 대구 지하철 참사 희생자 진혼제, 김대중 전 대통령 진혼제, 세월호 희생자 진혼제 등을 주관해 개인과 사회의 아픔을 품고 나라만신이라 불렸다.
굿은 ‘기복(祈福)’과 ‘풀이’ 두 가지 기능이 있다. 기복은 복을 비는 것이고 풀이는 원한이나 살(煞)이라는 무의식 세계의 응어리를 춤, 노래, 사설, 공수 등 현실적 정화 작용으로 푼다. 굿은 심리적 안정과 균형을 갖게 해 삶을 보호하고 공동체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중요한 요소다. “무당은 됨됨이가 제일 중요합니다. 남의 덕을 잘 빌어 주려면, 내가 먼저 덕이 있어야 해요”라는 김금화 만신의 말에는 단절된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관계 짓기’로 단절을 해소하는 굿에서 진정성이 얼마나 중요한지가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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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 태국 예술가 리크리트 티라바니자가 관객과 음식을 함께 나눠 먹는 행위를 중심으로 미국 뉴욕에서 진행한 첫 개인전 모습. 이상헌 제공 |
20세기 말 동시대(컨템퍼러리) 예술을 기존 시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태국 출신 작가 리크리트 티라바니자는 1990년 첫 개인전 ‘무제(팟타이)’에서 관람객에게 무료 음식을 대접했는데, 물질적 형식의 작품이 아니라 참석자의 상호작용이 일시적으로 만드는 공동체 경험을 제공했다. 이런 형식의 작품을 이해하려면 새로운 비평언어가 필요했다. 프랑스 큐레이터 니꼴라 부리오는 ‘관계의 미학’(1998년)에서 이 작가를 중요하게 다루면서, 동시대 예술의 특징은 단절된 소통 경로에 잠재한 교류 욕망을 끌어내는 ‘참여’와 관조에 짓눌린 작품이 ‘참여’로 되살아나 확산하는 ‘전이성’을 갖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참여’와 ‘전이성’은 새로운 개념이 아니라 예술이 원래 지닌 속성이다. 우리 굿과 (민속)춤의 바탕에도 있다. 다만 그것을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못했을 뿐이다.
요즘 활기를 띠는 거리예술과 이머시브 공연은 관객 참여로 확산하는 작품의 의미와 공유 공간을 중요하게 여긴다. 굿 형식은 여러 공연예술에서 차용하는데, 이제 형식 측면만이 아니라 굿과 ‘관계의 미학’이 공통으로 가리키는 비물질적 ‘관계 짓기’에 눈을 돌려야 한다. 굿이 ‘관계’가 만드는 감성의 공유라면 집회, 시위, 놀이, 파티도 굿판이고 ‘관계’가 실현되는 장소다. 2016년 겨울, 100만 개 촛불이 광장을 채웠을 때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그것은 거대한 굿판이고 ‘관계의 미학’을 실현한 예술행위였다. 무대는 무한하고 춤출 이유는 끝이 없다.
김금화 만신의 구술록에 이런 말이 있다. “성수거리 같은 걸 하면, 사실 돈 몇 푼이 고작인데, 그래도 다들 즐거워하니까 나도 기뻐요. (중략)그렇게 짧게는 2박3일, 길게는 3개월, 굿하고 울고 웃고 소리하고 그랬습니다.” 예술가(무당)는 만남을 제안하고 관객은 예술작품(굿) 고유의 시간 안에서 관계 짓고 일시적인 공동체를 형성한다. ‘초단절’ 시대에 절실한 것은 물질이 아니라 비물질적 관계가 만드는 공동체 경험이다.
동시대 예술을 이해하는 한 가지 준거인 ‘관계의 미학’이 굿에 이미 담겨있었다. 굿이 정체한 과거(전통)가 아니라 동시대 예술이라는 뜻이다. 김금화 만신의 타계로 우리 문화의 소중한 아카이브가 사라진 것은 안타깝지만, 한편으로는 동시대 예술의 역할을 짐작할 오래된 본보기를 찾게 됐다. 우리 춤에서 그 가치가 살아나야 한다. 김금화 만신의 굿 사설 한 구절을 새긴다. ‘에라 만세 놀구나요’.
춤 비평가·문화기획 이상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