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대표적 중견작가인 방정아(51)는 일상과 한국 여성의 삶을 담담한 풍자와 은유로 풀어낸다. 작품은 해학적인 재미가 있지만, 그 저변에는 작가의 씁쓸하면서도 예리한 현실 인식이 섬세하게 존재한다. 작가는 한국 현대사의 흐름과 당대 중요 사건·사고, 더 나아가 최근에는 원전, 환경, 전쟁 등의 주제까지 섭렵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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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전시를 열고 있는 방정아(사진 왼쪽) 작가와 작품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
부산시립미술관은 올해부터 동시대 한국미술의 흐름에서 주목해야 할 작가를 소개하는 ‘한국현대미술작가조명’전을 연다. 첫 번째 순서로 방정아 작가를 선정했다. 작가는 1993년 첫 개인전 이래 지금까지 회화를 기반으로 작업해 왔으며 1980년대 민중미술 2세대로 리얼리즘 회화, 여성주의, 부산형상미술 등에서 호명돼 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회화, 영상, 설치 등 120여 점의 작품을 통해 작가의 작업 세계를 총체적으로 선보인다.
전시는 ‘믿을 수 없이 무겁고 엄청나게 미세한’이란 부제 아래 5개의 섹션으로 이뤄졌다. 첫 번째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는 1990년대부터 한국 현대사의 흐름과 당대의 중요 사건·사고를 소재로 한 작품을 볼 수 있다. 세월호 사건을 소재로 한 ‘피에타’(2015), 전쟁의 공포를 그린 ‘폭격’(2018), 원전 문제를 다룬 ‘원전에 파묻혀 살고 있군요’(2017) 등의 작품을 볼 수 있다. 마주보기 힘든 직설적인 장면이 아닌 은유적인 표현이 더 와닿는다. 방 작가는 핵 발전소의 위험을 알리기 위해 모인 한일 예술인 단체 ‘핵몽작가모임’의 일원으로, 한반도의 현재 상황이 겹쳐지는 반전·반핵을 주제로 한 작품도 다수 그렸다.
두 번째 ‘치열하였다, 그리하였다’ 섹션에서는 1995년부터 근래에 이르기까지 작가 본인의 삶의 궤적을 그린 작품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보여준다. 첫 아이를 품에 안은 작가의 모습을 그린 ‘얼떨떨했어요’(1999), ‘튼살’(2001), ‘춘래불사춘’(2002) 등 여성, 엄마로서의 삶을 담은 소소한 일상은 거창한 발언보다 더 진하게 다가온다. 1991년부터 1996년까지의 작품은 민중미술과 맞닿으며 현실의 기록을 보여준다. 매맞는 여성을 주제로 한 ‘급한 목욕’(1994), ‘집 나온 여자’(1996)가 대표적이다. 무겁고 어두웠던 역사의 단편은 작가만의 유희적 형상과 삶의 서사로 구현됐다.
‘불편하게 다독이는’ 섹션은 예술가라는 존재를 관세음보살의 형상으로 표현했으며, ‘없으면 됐고요, 있으면 좋고요’는 사람들의 삶에서 포착된 일상을 제목처럼 유머러스하게 담아냈다. 마지막 섹션인 ‘확장된 세계’에서는 개인과 삶, 일상을 다루던 작가의 시선이 자연, 환경으로 확장된 것을 볼 수 있다.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에 대한 비판과 물의 생명력, 자연의 회복성에 대한 의지가 함께 존재한다. 이번 전시를 위해 그린 가로 7m에 달하는 대작 그림 ‘그녀가 손을 든 순간’(2019)은 전시장을 실제 그림 속 배경처럼 구성해 관객이 그 공간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대표작이다. 작가는 “‘지금 여기의 삶’이 가장 큰 관심사이자 작품의 화두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시대적 상황에 대한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 불안한 사회에서도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희망을 그렸다”고 말한다. 전시장 중 일부는 목욕탕처럼 꾸며 작가의 영상 작업, 드로잉을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전시는 6월 9일까지.
정홍주 기자 hjeye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