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신문 연재글 등 한권에 엮어
- 부산항 역사·문화 교양서 ‘탄생’
- 자성대·우암·용당·대풍포·1부두
- 바다서 본 부산항의 혈 5곳 선정
- 개항기 부산 외국·조선인 로맨스
- 일본식 혼탕 상륙 때의 충격 등
- 7가지 스토리텔링도 흥미진진
- “좋은 이야기 입히려 항상 고민”
그를 인터뷰하러 가는 길에 했던 ‘걱정’은 딱 하나였다. ‘내 스마트폰의 녹음기가 인터뷰를 녹음하다가 과열되거나 터져버리지는 않을까?’ 이용득(65) 부산세관박물관장을 만나 부산항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는 건 ‘녹음기 과열’을 걱정해야 할 만큼, 언제나 뜨겁고 흥겹고 길고 재미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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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득 부산세관박물관장이 부산본부세관 옥상에서 부산항 제1부두를 가리키며 그 역사·문화적 가치를 설명하고 있다.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
그가 최근 저서 ‘부산항 이야기’(유진북스)를 펴냈다. 자타공인 ‘부산항 박사’, 불철주야 ‘부산항 사랑꾼’, 40년 가까운 부산항 사료 수집과 연구, 부산항 역사·문화 콘텐츠 제안왕…. 부산항을 부산의 문화·역사 콘텐츠 황금어장으로 가꾼 주역 가운데 한 명인 이용득 관장의 명성과 이력은 널리 알려졌다. 1954년 통영에서 태어난 그는 1975년 마산세관에서 세관공무원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부산본부세관에서 근무하던 1983년 부산세관 100주년 기념 책자 발간에 참여하면서 그는 ‘부산항 공부’와 인연을 제대로 맺었다. 그때 모은 자료는 부산본부세관에 세관전시관을 설립하는 데 주춧돌이 됐고, 이는 2001년 11월 세관전시관을 부산세관박물관으로 확대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부산본부세관 3층에 자리한 세관박물관은 화려한 박물관은 아니다. 하지만, 콘텐츠가 독보적이다. 예컨대 1950년대 중반부터 1969년까지 일본 대마도와 부산항 사이에서 활개 친 ‘대마도 특공대 밀수’를 비롯해 한국 밀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전시물이 이 박물관에 많다. 밀수 관련 전시물은 대부분 당시 밀수 현장에서 세관이 입수한 실물이라고 한다.
■ 부산항 스토리의 재미와 힘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이용득 관장과 함께 전시물을 둘러볼 기회를 잡는다면, ‘밀수의 사회사’ ‘밀수를 통해 본 부산의 사회상’ 등을 상세히 들을 수 있다. 밀수가 지역의 인문·사회적 콘텐츠로, 부산 현대사의 스토리로 거듭난다. 독보적이다. 이용득 관장은 부산항 역사·문화를 알리고, 부산항 문화콘텐츠를 창출하는 기고, 방송, 강연으로 바쁜 나날을 보낸다. 부산원도심문화네트워크 회장을 오래 맡았고, 동서대 경영대학원에서 공부한 뒤 동서대 국제통상학부 겸임교수를 지냈다.
‘부산항 이야기’는 이용득 관장의 첫 단독 저서이다. 국제신문을 중심으로 여러 매체에 실은 부산항 역사·문화 이야기를 한 권으로 엮었다. 사료를 엄밀하게 다루고 근거를 최대한 밝히되, 간명하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끌고가려는 노력이 행간에서 파도친다. 세관박물관이 보유한 풍부한 사료를 중심으로 다른 전문가들이나 관련 기관에서 협찬한 시각자료까지 풍성하게 보태 흥미롭고 미더운 ‘부산항 역사·문화 교양서’가 됐다.
조봉권 기자=“지역의 정체성을 공부하다 보면, 자기 고장을 ‘재발견’하거나 사랑하게 되더라. ‘부산항 이야기’를 읽어 보니 “부산항을 ‘역사·문화적으로’ 알고 싶으신가? 그렇다면 이 책을 보시라”하고 내놓을 만한 책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저자로서 이 책의 핵심을 소개해주신다면?(이걸로 이 인터뷰에서 질문은 끝이었다. 그 뒤로는 이용득 관장의 흥미진진한 답변이 만경창파(萬頃蒼波)로 이어졌다. 그는 정말로 부산항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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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8년에 촬영한 부산항 전경. 영도대교와 부산항 부두 등이 보인다. 산은 온통 헐벗은 모습이다. 부산세관박물관 |
■ 그가 꼽은 부산항의 혈 5곳은
이용득 관장=“뭍에서 본 바다 말고, 바다에서 본 부산의 관점에서 ‘부산항의 혈(穴) 다섯 곳’과 테마별 스토리텔링 일곱 가지’를 꼽아보았다. 거기에 초량왜관 이야기를 보태면 이 책의 핵심을 대체로 간추릴 수 있겠다.” 자성대 우암(우암포) 용당(용당포) 대풍포(영도) 부산항 제1부두. 이용득 관장이 꼽은 부산항의 혈 다섯 곳이다. “자성대는 ‘부산 역사 일번지’라는 관점으로 조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산이라는 지명의 기원이 증산에 있다는 기존 ‘증산유래설’과 달리 자성대에서 유래했다는 자성대설이 최근 대두됐지요. 요즘 ‘부산항 자주 개항(1407년)’ 논의도 있는데 그때 자성대 주변에 있었던 ‘부산포왜관’을 무시할 수 없죠. 자성대 정상에는 조선 시대 국방 보루인 부산진첨사영이 있었고 바로 곁 영가대에서는 통신사가 일본으로 가기 전 해신제를 지냈습니다.”
여기서 끝난다면 ‘이용득 관장님’이 아니다. 그다음은 진단과 제안. “그렇게 뜻깊은 자성대가 부산의 해양관광·해양문화 측면에선 숨을 못 쉬고 있습니다. 갇혀 버렸죠. 물길을 터주는 등 자성대의 숨통을 틔울 방안을 찾아 역사적 가치를 되찾아야죠.” 우암(牛岩)도 중요한 혈이다. 부산항에 있던 소 모양 바위다. 남구 우암동(옛날의 우암포) 지명은 여기서 왔다. “우암포에는 조선 시대에 표민수수소가 있었습니다.” 조난당해 부산으로 떠밀려온 외국인(주로 일본)을 수용했다가 귀환시키는 공간이었다.
■ 부산항을 배우고 알고 사랑하고
조난당해 떠밀려온 외국인을 받아들이고, 살려서 돌려보내는 표민수수소가 조선 시대 우암포에 있었다는 역사는 국제도시, 환대의 도시로서 부산의 정체성을 말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우암포에 일본 수출을 위한 소 검역소가 생깁니다. 해방되자 이승만 대통령은 일본과 소 수출 계약을 맺고 우암포에 막사를 짓죠.” 한국전쟁이 터져버린다. 부산으로 이북의 피란민이 밀려왔다. 소를 위해 만든 우암포 막사는 피란민들이 깃들어 삶을 이어가는 공간이 된다. 그때 이북에서 우암동으로 피란 온 피란민 가정에서 차린 식당 중 내호냉면이 있었고, 내호냉면이 처음 만든 밀면은 지금 부산 명물이 됐다. “이렇게 많은 스토리가 있죠. 우직하고 온순한 조선 소를 상징하는 조형물을 만들어 인증 샷 명소로 가꾸거나 부산항 명물로 만드는 방법은 어떨까요?”
영도 대풍포(매축으로 사라짐)와 부산항 제1부두에 관해서도 들려줄 말이 많았다. “옛 기록을 비교·검토하고 경북 울진 구산항의 대풍헌, 대마도 와니우라와 사스나의 대퐁소 등 사례를 살피면 ‘대풍포’는 ‘배가 출항하기 위해 순풍을 기다리던 곳’이었습니다. ‘부산지명총람’에는 지금도 ‘어선들이 풍랑을 피하고자 잠시 대피하는 포구’로 적혀 있는데 이는 석연치 않습니다.”
■ 부산항 제1부두를 기억하라
부산항 제1부두는 부산항 스토리텔링 끝판왕이자 최강자로 꼽힌다. 관부연락선 취항, 귀환동포 귀환, 6·25전쟁 때 최후 보루, 1952년 한국 최초로 태평양 횡단한 고려호 출항, 1957년 인도양으로 참치잡이 떠난 한국 첫 원양어선 출항, 한국 첫 연안 크루즈 팬스타 허니호가 2008년 취항…. 한국 현대사에서 상징성이 큰 이 모든 일이 부산항 제1부두에서 이뤄졌다. 그는 요즘 부산항 제1부두를 더 잘 보존하고 좋은 스토리를 입힐 궁리에 빠져 있다.
책 속의 테마별 부산항 스토리텔링도 재미있다. 1876년 개항 직후 부산해관에 부임한 네덜란드 해관원의 사냥개를 부산 사람이 대티고개에서 잡아먹은 사건, 부산에 상륙한 일본식 혼탕의 충격, 바다의 미아 조남해 씨 이야기, 상여로 옮긴 사보담 목사 아내의 피아노, 개항기 부산의 외국인-조선인 로맨스, 전기를 공급한 발전함 레지스턴스호, 1970년 최초로 부산항에 컨테이너선이 들어오던 장면 등이다.
그 이야기를 듣느라 결국, 녹음기는 과열됐다.
문화전문기자 bgjo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