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신의 바람을 꽃으로 표현한
- 박은지의 춤사위 가슴 ‘뭉클’
- 공간을 기억이 스민 장소로 바꾼
- 박정윤 작품 기획의도 잘 드러나
- 박소희는 연극적 요소 도입 눈길
지난 5일부터 7일까지 부산 민주공원에서 ‘제25회 신인 춤 제전-젊고 푸른 춤꾼 한마당’(이하 ‘젊춤’)이 열렸다. 설렘 가득한 이 무대에 신인 6팀을 포함해서 가려 뽑은 16팀이 올랐다. 대부분 작품은 정체성 찾기와 세상을 보는 시선을 다루었다. 어떤 이는 이야기를 어떻게 꺼낼지 몰라 주춤거리고, 다른 이는 할 말이 많아 재잘거리며 수다를 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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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소희가 안무한 ‘당신은 어떠신가요’ 중 한 장면. 사진가 박병민 제공 |
‘젊은 춤’과 ‘푸른 춤’으로 나누어 펼친 공연에서 박은지와 박정윤의 이름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부산에서 10년 이상 활동한 두 춤꾼의 춤이 뭉클하다. 파란 잎사귀인 양 스카프를 두른 박은지의 ‘흙에서 피는 꽃’ 프롤로그는 아련하다.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춤은 마음을 사로잡고, 눈길에 실린 호흡은 꽃향기와 대지의 숨결이 된다.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꽃의 일생은 춤으로 시작해서 춤으로 맺고 싶은 자신의 바람일 것이다. 춤꾼의 무르익은 맛을 보여준 작품이다.
박정윤의 ‘eight on eleven’은 공공적 ‘공간’을 개인의 기억이 스민 ‘장소’로 바꾼다. ‘공간’을 ‘장소’로 바꾸는 장치는 발길과 말(대사)이다. 뒤샹의 변기에 빗대어 설명한 부분이 사족(蛇足) 같았지만, ‘움직이고 있는 현재를 통해 공간의 가능성과 의미를 재발견해 보려 한다’는 작품 의도는 잘 드러났다.
매몰된 개인의 정체성을 찾는 성유빈의 ‘H:Factory’,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관계 만들기에서 중요하다는 김소정·강하영의 ‘같지만 다른’, 꿈을 잃어가는 아쉬움을 반어적으로 표현한 이인우의 ‘슈퍼맨이 될 줄 알았던 아이’는 듀엣과 군무 연출에 힘을 쏟았다. 개인의 상처와 실수를 익명의 이야기로 만든 송민지·이효은의 ‘You say you’re not, But…’, 독립을 원하면서도 고립될까 두려워하는 심정을 그린 이혜리의 ‘그것만이 내 세상’, 획일화에 매몰되지 말고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라는 이보미·장의정의 ‘찾았어?’는 소품으로 주제를 직접 드러낸다. 이들 작품은 주제를 전달하려는 노력이 돋보이지만, 소품 사용과 군무 형태에 신경 쓰다가 움직임이 매끄럽지 못하거나, 기계적으로 보이는 면이 있다.
수면 부족 상태로 일상에 내몰린 사람들의 움직임을 다룬 신유진의 ‘수(睡)취인 불명’과 소심함도 긍정적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안현민·임성은의 ‘골칫거리’는 춤을 비중 있게 내세운 작품이다. 두 작품 모두 밀도가 높고, 작은 모티브를 확장하는 형식이다. 신유진은 다양한 호흡과 춤으로 흐름을 이끄는 힘이 있고 움직임을 밖으로 끌어내는 솜씨도 예사롭지 않다. 안현민·임성은의 작품은 이야기 표현방식을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이 있다. 이들의 2인무는 대비와 대립, 긴장과 이완을 섞는 완급 조절이 뛰어날 뿐 아니라 움직임이 흥미를 돋운다. ‘소심한 사람들에게 잠깐의 희망과 위로를 전할 수 있기 바란다’는 안무 의도가 위트와 치밀함 속에 잘 녹았다.
박소희의 ‘당신은 어떠신가?’는 연극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상자에 올라선 사람이 단어를 내뱉으면서 주제인 ‘권태’의 의미가 쌓여간다. 권태로운 상황에서 모든 것을 귀찮아하고 냉소적으로 대하는 것처럼 대사와 움직임이 자연스레 연결되기보다 툭툭 끊기듯 이어진다. 가로로 확산하는 움직임에 높낮이를 더해 공간의 양감을 풍부하게 만들고, 위아래 상황을 대비시킨다. 춤에 도입한 대사 때문에 실패한 사례들에 견주어 가능성 있는 작품이다.
해마다 ‘젊춤’을 볼 때 드는 생각이 있다. ‘젊춤’이 새내기 춤꾼의 등용문이라는 점에서 우리 춤판의 가장 중요한 공연이라는 것과 자신의 춤 언어를 갖는 일이 외롭고 힘겨운 과정이라 해도 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춤을 잘 추려면 먼저 춤을 잘 추어야 한다. 다른 길은 없다.
춤 비평가·문화기획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