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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바다…인문학으로 항해하다 <16> 밥상 위의 출세어(出世魚)

모치·글거지·미렁이·댕기리… 숭어 크기·지역 따라 이름만 100개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4-25 19:18:09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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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면서 이름 바뀌는 ‘출세어’
- 日 에도 시대의 무사·학자
- 출세 후 개명하는 관습서 유래

- 새끼는 ‘껄떼기’로 불리는 농어
- 까지맥이·가슬맥이로도 불려

- 출세어 원조 스타 ‘방어’ 이름
- 출현 빈도 낮은 서해쪽은 단순
- 환동해권·남해·제주는 방언 다양
- 일본식 명칭 ‘히라스’ 등도 사용

- 해역 자유로이 다니는 물고기
- 어떻게 부르는지 명칭만 알아도
- 지역 환경·성장 단계 알 수 있어

삼면이 바다인 한반도와 바다로 둘러싸인 섬나라 일본은 예부터 수산물 소비량이 많은 곳이다. 특히 동북아해역을 공유하는 처지에서 국경을 자유로이 넘나들 수 있는 것은 어쩌면 물고기만의 특권일 것이다.
부산의 사진가 문진우가 사진으로 기록한 ‘가덕도 숭어들이’ 현장(왼쪽 사진)과 부산 공동어시장에서 방어를 위판하는 모습. 국제신문 DB
밥상에 자주 오르는 생선구이나 선술집 술안주는 철마다 다양하고 맛 또한 기가 막힌다. 밥상이나 술상에 단골로 오르는 물고기는 다양한 속담으로 표현됐다. 우리네 선조들이 풍류를 즐기며 계절마다 잡히는 물고기를 빗대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는데, 어디선가 한 번씩은 들어봤음 직한 내용이다. 1월부터 한 번 읊어보겠다.

■물고기 이름과 계절 표현

▷1월 ‘정월 도미를 먹고 죽으면 여한이 없다’ ▷2월 ‘2월 가자미 놀던 뻘 맛이 도미 맛보다 좋다’ ▷3월 ‘3월 거문도 조기는 7월의 칠산장어와 안 바꾼다’ ▷4월 ‘4월 삼치 한배만 건지면 평양감사도 조카 같다’ ▷5월 ‘보리타작한 농촌 총각 농어 한 뭇 잡은 섬처녀만 못하다’ ▷6월 ‘태산보다 높은 보릿고개에도 숭어비늘국 한사발 마시면 정승 보고 이놈 한다’ ▷7월 ‘숙주에 고사리 넣은 장어국 먹고 나면 다른 것은 맹물에 조약돌 삶은 국 맛 난다’ ▷8월 ‘8월 그믐 게는 꿀맛이지만 보름 밀월 게는 개도 눈물 흘리며 먹는다’ ▷9월 ‘전어 한 마리가 햅쌀밥 열 그릇 죽인다’ ▷10월 ‘10월 갈치는 돼지삼겹살보다 낫고 은빛 비늘은 황소값보다 높다’. 11, 12월의 경우 한겨울 생선은 모두 맛있기에 특정된 표현이 없다.

생선 중 귀족으로 일컫는 1월 도미는 주로 회로 먹고 2월 가자미는 회무침 또는 구이로 조리한다. 그리고 거문도에서 잡히는 조기도 맛있다 하여 3월 조기는 매운탕으로, 높은 가격에 팔리는 4월 삼치는 구이, 인기 많은 어촌의 효자 생선인 5월 농어와 맛좋고 포만감 넘치는 6월 숭어는 회로 주로 먹게 된다. 7월은 장어국, 8월 꽃게는 탕으로, 9월 전어는 구이로, 10월 갈치는 조림 등으로 먹게 된다. 이렇게 계절별, 생선별로 그 조리법 또한 다양하다.

■출세어(出世魚)’란?

이 가운데 5월과 6월에 언급된 ‘농어’와 ‘숭어’는 성장 단계에 따라 이름이 바뀐다. 이렇게 크면서 이름이 바뀌는 물고기를 ‘출세어(出世魚)’라 하는데 치어(稚魚)에서 성어(成魚)까지 성장 단계별로 다른 명칭을 가진 물고기를 가리킨다. 사실 출세어의 어원은 일본에서 에도(江戶) 시대까지 무사나 학자가 성인이 되거나 출세하였을 때 이름을 바꾸는 관습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 관습에 빗대 ‘성장과 함께 출세하는 것처럼 명칭이 바뀌는 물고기’를 출세어라 칭하고 ‘운수 또는 재수가 좋은 귀한 생선’으로 해석해 새로운 출발을 축하하는 자리 또는 잔치 음식에 자주 쓰였다.

■농어야 숭어야, 너의 이름은?

농어는 자라는 상태에 따라 다양한 이름을 가진 출세어이다. 바닷물고기 농어는 가을과 겨울철에 강어귀에 산란한다. 농에, 까지맥이, 깔다구, 껄떡이, 깡다구, 껄떡, 연어병치, 독도돔, 절떡이, 보껄떡이, 가슬맥이 등 지역별로 이름이 많다. 이 가운데 어릴 때에는 민물에서 살다가 첫겨울에 바다로 나간 농어 새끼를 ‘껄떼기’로 부른다.

숭어는 한국에서 부르는 명칭이 100개도 넘는다고 한다. 성장에 따라 글거지, 애정이, 무근정어, 무근사슬, 미패, 미렁이, 덜미, 나무래미 등으로 불리고 이 외에도 걸치기, 객얼숭어, 나무래기, 댕기리, 덜미, 뚝다리, 모대미, 언지 등의 이름을 갖고 있다. 특히 숭어새끼를 ‘모치’라 하며 그보다 작은 것을 ‘동어’라고 부른다. 주로 강이나 해안가에 살면서 예부터 친숙한 물고기였고, 한국만큼 일본에서도 이름이 매우 다양하다. 치어 단계서부터 성장한 숭어의 명칭은 다음과 같이 다양하다.

하쿠(ハク)→오보코(オボコ)→스바시리(スバシリ)→나요시(ナヨシ)→이나(イナ)→보라(ボラ)→도도(トド).

■출세어의 다양한 변신

일본에서 숭어를 ‘이나’ 또는 ‘보라’ 그리고 가장 컸을 때 ‘도도’라 하는데 이 생선을 빗대어 표현한 형태의 속담이 많다. 성장과정을 빗대 만든 표현인데 ‘도도노쓰마리(とどのつまり)’라는 표현은 출세어인 숭어의 성장과정을 표현하면서 몸통이 가장 큰 숭어 ‘도도’가 돌고 돌아서 ‘결국에는’이라는 표현으로 쓰인다. 좋은 의미로 쓰이기보다는 나쁜 예로 사용되는데 이름이 바뀌는 물고기 숭어의 어원에서 유래한 재미난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숭어가 맛있다는 것을 재밌게 표현한 말이 있다. ‘이나노아타마산고메시(イナの頭三合飯)’라는 말이 있는데 ‘숭어 대가리만 있으면 밥을 많이 먹을 수 있다’는 비유로 숭어 대가리에 살이 많이 붙어있지 않지만 ‘대가리만 있어도 충분히 맛있다’라고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이처럼 일본에서도 숭어는 어디 하나 버릴 데가 없는 생선이다.

한국에서 숭어알로 ‘어란(魚卵)’을 만드는데 숭어는 음력 3월께 강물을 거슬러 올라온다. 이때 뛰어오르는 숭어를 잡아 일 년에 딱 한 차례 5월께에만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그만큼 귀하고 품이 많이 가는 음식이기에 임금님께 올리던 진상품 중 하나였다. 예부터 영산강과 바다가 만나는 전남 영암 지역에서 잡히는 숭어로 만든 어란을 으뜸으로 쳤다. 일본 역시 숭어알로 만드는 ‘가라스미(唐墨)’라는 음식이 있는데 우리나라 어란과 흡사하며 만드는 과정이 매우 까다롭다. ‘당묵(唐墨)’이라는 한자에서 알 수 있듯 ‘중국에서 가져온 먹’과 같이 생겼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출세어의 원조 스타 방어

농어와 숭어에 대해 설명하였지만, 출세어 원조는 ‘방어’다. 방어를 해벽어(海碧魚)라고 부르는데 지역별 방언이 다양하다. 강원도에서는 어린 개체를 ‘떡마르미’, 중간 개체를 ‘이배기’, 큰 개체를 ‘사기’라 한다. 경북에서는 10㎝ 안팎을 ‘곤지메레미’, 15㎝ 안팎을 ‘떡메레미’, 30㎝ 안팎을 ‘메레기’ 또는 ‘되미’, 60㎝ 이상을 ‘방어’라 부르고 있다. 일본에서도 방어는 크기에 따라 모쟈코(モジャコ), 이나다(イナダ), 하마치(ハマチ)등의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방어가 회유어(回遊魚)여서 자유로이 경계를 넘나드는데 여기서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동북아해역을 제집 드나들 듯 넘나드는 방어지만, 방어 이름의 개수에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방어가 서해 쪽까지는 잘 넘어오지 않기에 서해 쪽에서 부르는 방어의 이름은 매우 단순하다. 반면 환동해권 그리고 남해와 제주해 인근에서 산란기를 보내는 방어의 특성상 이쪽 지역에서는 명칭이 다양하다. 특히 일본식 방어 명칭인 야즈(ヤズ), 야도(ヤド), 부리(ブリ), 하마치(ハマチ), 히라스(ヒラス) 등도 사용된다. 이렇게 방어를 부르는 명칭만으로도 지역의 환경을 파악할 수 있다.

최근 발표된 ‘부경해양지수’에 따르면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생선 1위가 고등어라고 하지만, 녹음이 짙어가는 이 계절 ‘섬처녀가 잡은 5월 농어’나 영산강 하구에서 잡아 올린 6월 숭어 요리를 밥상 위에 한 번 올려보는 것은 어떨까.

양민호 부경대 HK 연구 교수

※공동기획:부경대 HK+ 사업단,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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